내일시론

정말 코스피 PBR을 높이고 싶다면

2024-03-05 13:00:01 게재

정부가 기업가치 올리기에 시동을 걸었다. 금융위원회가 지난 1월 28일 상장사의 기업가치 개선을 위한 ‘기업밸류업 프로그램’ 도입 계획을 내놓은데 이어, 2월 26일에는 금융위원회와 한국거래소 등 유관기관이 공동으로 지원방안을 제시했다. 기업가치 제고 계획의 수립과 이행을 지원하고 우수기업에 대한 투자를 유도한다는 등의 방안이 담겨있다. 이에 따라 기업이 스스로 기업가치 현황을 평가하고 이를 높이기 위한 계획을 세워 공시해야 한다. 공시된 계획의 이행 여부도 밝혀야 한다.

정부의 이런 방침은 일본의 도쿄증권거래소가 자본효율성을 높이고 주가제고 방안을 마련해 지난해 3월부터 시행해온 것을 눈여겨본 결과다. 덕분에 일본증시는 요즘 폭발하고 있다. 지난 1년 동안 주가가 37% 상승했다. 1980년대 거품기의 주가를 돌파한 기업도 속출하고 있다.

코스피 PBR, 미국 상장주나 일본 닛케이225보다 훨씬 낮아

한국의 밸류업 프로그램에서 가장 중요한 목표로 거론되는 것은 낮은 주가순자산비율(PBR)을 끌어올리는 것이다. 주가를 주당순자산으로 나눈 PBR이 1보다 낮으면 보유중인 순자산 대비 주가가 낮은 것으로 여겨진다. 쉽게 말해 불필요한 자산이 많아 이익창출과 주가상승을 가로막는 것이다.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코스피 PBR은 2023년 말 기준으로 1.05배에 그쳐 미국 상장주 평균 4.6배는 물론, 일본 닛케이225지수의 1.4배보다도 상당히 낮다. PBR 1배를 밑도는 상장사는 코스피 526개(65.8%), 코스닥 533개(33.8%)를 헤아린다. 대형종목이 많은 코스피의 경우 절반이 넘는 것이다.

낮은 PBR은 오랫동안 한국 주식시장의 발목을 잡아왔다. ‘코리아디스카운트’를 유발하는 큰 요인의 하나로 지목돼 왔다. 이제 정부가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나섰으니 주식시장의 기대도 커졌다. 소외되던 ‘낮은 PBR’ 주식이 올 들어 주목받으면서 주가가 들썩였다. 증권사들도 ‘낮은 PBR’ 종목을 열심히 찾아낸다.

재벌의 지주사나 사실상 지주사로 인식되는 기업들이 우선 꼽힌다. 삼성물산 LG SK 롯데지주 CJ 한화 LS 등을 가리킨다. 이들 지주사의 지난해 4분기 말 PBR은 대체로 0.5배 안팎에 머물렀다. 이는 재벌 지주사가 거느리고 있는 계열사와 자산 가운데 상당수가 낮은 수익성으로 고전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우량 계열사가 창출하는 부가가치를 도리어 좀먹는다고 할 수 있다. 이는 무차별적인 문어발 확장의 산물이 아닌가 한다.

업종별로는 자동차 은행·보험·증권 철강 석유화학 유통업종 등의 종목이 낮은 PBR주로 꼽힌다. 이들 업종의 기업들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저마다 고질적인 약점을 지니고 있다. 석유화학은 워낙 투자된 고정자산이 많은 반면 시황에 민감한 범용제품의 비중이 높다. 그런데 요즘 심각한 업황부진에 시달리고 있다. 일부 업체는 과도한 투자의 후유증으로 재무구조가 상당히 나빠진 상태다. 그러니 ‘낮은 PBR’종목이라는 낙인을 지우기가 어렵다. 철강도 이와 비슷하다. 게다가 잦은 산업재해로 인한 조업중지 등으로 역대 최저수준의 PBR로 추락한 기업도 있다.

자산가치가 높은 것으로 평가되는 유통업도 마찬가지이다. 재벌의 백화점이나 대형마트를 늘리기 위해 목좋은 곳의 땅을 사들이고 점포를 지었지만 수익성이 충분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일부 지역에서는 점포개설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 투자라기보다는 ‘부동산 투기’의 성격이 짙은 경우도 있다.

재벌 체질개선과 지배구조 개혁 함께 추진해야 실효성 있어

한국경제의 선진화를 위해서 낮은 PBR을 초래한 요인들을 파악하고 개선해 나가는 것은 시급하고도 절실한 과제다. 그렇기에 정부가 밸류업 프로그램을 도입하기로 결심한 것은 시의적절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이번에도 대부분 ‘자율’에 맡겨 실망감이 크다. 기업가치 목표를 설정하고 이행하지 않은 기업에 대한 벌칙 같은 강제수단은 없다. 우수기업에 대한 인센티브도 보잘 것 없다. 기업가치 상승에 대한 기대로 오름세를 탔던 일부 기업의 주가는 다시 내림세로 돌아섰다. 이는 정부가 기업가치 상승을 위해 보다 적극적으로 움직여주기를 시장은 고대하고 있다는 뜻이라고 할 수 있다.

게다가 미시적인 개선조치만으로 PBR이 높아질 수는 없다. 낮은 PBR에는 한국경제의 고질적인 병통, 특히 재벌 중심 경제구조의 적폐가 집약돼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재벌의 체질개선과 지배구조 개혁도 함께 추진돼야 실효를 거둘 수 있을 것이다.

차기태 본지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