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 양당, 위성정당 비례후보 선출에 ‘노골적 개입’

2024-03-05 13:00:22 게재

민주당·국민의힘, 위성정당 후보 직접 선출 공식화

21대 총선 직후 선거법 ‘민주적 선출 규정’ 삭제

‘불편한 민주적 절차’ 제거 후 ‘모 정당’ 역할 자임

거대양당 비례위성정당들의 비례대표 후보 선출을 놓고 ‘민주적 절차 시비’가 다시 불거졌다. 준연동형비례대표제 도입 이후 처음 치렀던 21대 총선때와 같은 양상이다. 하지만 거대양당은 이러한 논란을 피하기 위해 21대 총선 직후 공직선거법을 바꿔 ‘구체적인 민주적 절차’ 규정을 없앴다. 합법적으로 거대양당의 통제 안에 들어가 비례위성정당의 독자적 정당 운영을 차단하고 공천에 직접 개입할 수 있게 만든 셈이다.

5일 친명계 민주당 모 중진의원은 “민주당에서 비례연합정당인 더불어민주연합 공천 심사에 적극 관여할 것”이라면서 “4년 전에 민주당이 주저하면서 비례의원들에 대한 검증을 제대로 못해 낭패를 봤다”고 했다. 이어 “민주당이 갖고 있는 도덕성 등 공천심사기준에 대해 동일하게 비례대표 후보들에게도 적용할 것”이라며 “민주당이 추천하는 인사뿐만 아니라 새진보연합이나 진보당에서 추천한 인사나 국민비례후보 등에 대해서도 민주당이 재차 검증에 들어갈 것”이라고 했다.

더불어민주연합 윤영덕 공동대표(왼쪽)가 3일 대표 수락 연설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민주당은 비례연합정당의 비례후보에도 직접 관여하겠다고 공개 선언했다. 진보진영의 비례연합을 만들기로 합의하면서 처음부터 민주당에서 직접 후보들을 추천하겠다는 의지를 반영했다. 합의문에 “각 정당이 추천하는 후보자와 시민사회가 추천하는 국민후보를 제외한 (가칭)민주개혁진보연합 비례대표 후보자는 더불어민주당이 추천한다”고 했다. 더불어민주당과 더불어민주연합은 분명히 개별적인 독립 정당인데도 민주당이 직접 더불어민주연합 비례의원 공천에 관여하겠다는 선언이라고 할 수 있다.

국민의힘 위성정당인 국민의미래 조혜정 대표가 인사말을 하고 있다.연합뉴스

국민의힘 역시 비례위성정당인 국민의미래 공천 기준 등을 제시하는 등 공천 개입 의지를 명확히 했다. 장동혁 국민의힘 사무총장은 지난달 29일 “여성, 청년에 대한 배려는 남은 공천과 국민의미래가 진행해나갈 비례대표 공천에서 감안해 나갈 사정들”이라고 했고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 역시 “(정치)신인 문제는 저희가 비례대표나 이런 점에서 많이 보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지역구에서 경선 통과나 승리를 하기 어려운 분이라도, 그 부분을 보완하기 위해 필요한 분들을 국민의미래에서 잘 추려내고 국민에게 제시해야 한다는 생각”이라고 했다. 지난 23일 국민의미래 중앙당 창당대회에서 한 위원장은 “국민의미래를 통해서, 국민 눈높이에 맞는, 우리 국민의힘의 이름으로 전혀 부끄럽지 않을 사람만을 사심없이 엄선해서 국민에게 제시할 것”이라고 했다. 여야 모두 비례위성정당의 공천에 적극 개입하겠다고 나선 셈이다.

여야는 이에 앞서 논란이 됐던 공직선거법을 없앤 바 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지난해말 비례대표 국회의원 후보자 선출을 위한 민주적 절차와 방식을 법제화하려고 했으나 실패하고 ‘선언적 규정’을 넣는 데 그쳤다. 정당법에 새롭게 들어간 비례대표국회의원 후보자 추천 규정은 ‘정당은 당헌·당규 등에서 정한 민주적 절차에 따라 공직선거의 후보자를 추천한다’는 내용뿐이었다.

국회 행안위에 따르면 애초 공직선거법은 제47조제2항 등에서 정당의 비례대표국회의원선거 후보자 추천 절차에 대해 구체적으로 정해놓고 있었다. 정당의 비례대표 추천의 투명성과 신뢰성을 확보하고 당내의 민주적 의사결정을 촉진하기 위한 취지로 2019년 12월 27일 국회의 의결을 통해 제도화됐다. 하지만 21대 총선과정에서 ‘위성정당 비례대표 후보 선출의 비민주성’이 지적되면서 “후보자 추천은 자율적 결사체인 정당이 공적 책임을 갖고 진행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과 “해당 규정을 ‘정당법’에 옮겨 규정하다는 것이 적절하다는 지적” 등에 따라 공직선거법상 ‘절차’ 규정이 삭제됐다. 이에 따라 현행 ‘공직선거법’은 정당의 비례대표국회의원 선거 후보자 추천 절차에 대하여 정하고 있지 않다. 21대 총선 직후에 비례대표후보 선출과정을 담은 규정을 삭제하고는 지난해말 정당법 개정 과정에서도 ‘선언적 규정’ 외에 기존 공직선거법에 있었던 구체적인 방안은 담지 않았다는 얘기다. 거대양당이 ‘불편한 민주적 절차’를 없애기 위해 담합했다는 평가가 나오는 대목이다.

기존에 공직선거법에 있었던 내용을 보면 ‘정당은 민주적 심사절차를 거쳐 대의원·당원 등으로 구성된 선거인단의 민주적 투표절차에 따라 추천할 후보자를 거쳐야 한다’는 규정 외에도 ‘비례대표국회의원선거의 후보자 추천절차의 구체적인 사항을 당헌·당규 및 그 밖의 내부규약 등으로 정’하도록 하면서 ‘비례대표국회의원선거의 후보자 추천절차의 구체적인 사항을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서면으로 제출하고,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정당별로 후보자 추천절차의 제출여부와 내용을 홈페이지에 게시’하도록 했다. 또 ‘후보자등록을 하는 때에 비례대표국회의원선거의 후보자 추천 과정을 기록한 회의록 등 후보자가 추천되었음을 증명할 수 있는 자료를 후보자명부에 첨부해야 한다’며 ‘관련 서류를 갖추지 아니한 후보자등록신청을 수리할 수 없다’고도 했다.

중앙선관위는 “비례대표국회의원선거 후보자 추천 절차에 관한 공직선거법 개정 취지 등을 고려해 비례대표국회의원선거 후보자추천 절차에 대한 등록수리 거부와 등록무효 사유를 법정화하는 것은 입법정책적으로 결정할 사안”이라고 했다.

이해식 의원, 이은주 의원, 김영배 의원, 남인순 의원 등은 정당법 개정안을 각각 대표발의하면서 “대한민국 헌법은 정당의 목적·조직과 활동이 민주적이어야 하며, 국민의 정치적 의사형성에 참여하는데 필요한 조직을 가져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는 점을 환기시키며 2019년에 도입한 ‘비례대표 선출의 공정하고 투명한 절차’의 재도입을 제안했지만 거대양당은 이를 수용하지 않고 ‘선언적 의미’만 규정했다.

박준규 기자 jkpark@naeil.com

박준규 기자 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