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경기 불황…‘중산층에 인기’ 피아노 판매 급감
부동산·증시 침체에
소비 심리 얼어붙어
한때 중국 중산층에게 부와 사회적 지위의 상징이었던 피아노가 그 매력을 잃어가고 있다. 경기 둔화로 인해 가계 소비력이 떨어지면서 나타난 결과다.
블룸버그는 지난달 29일 중국악기협회를 인용해 지난해 중국내 전체 피아노 생산량이 19만대로 4년 전 생산량의 절반 수준으로 급감했다고 보도했다. 중국 최대 피아노 제조업체 중 한 곳은 판매량 감소율이 두자릿수를 기록했다.
피아노 판매 감소의 주요 원인에 대해 블룸버그는 경기 둔화, 주택 가격 하락, 주식시장 침체 장기화로 인한 소득 감소로 많은 가구가 불필요한 고액 구매를 줄이게 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중국 시난대 금융경제학과와 알리페이의 조사에 따르면 2023년 10월부터 12월까지 3개월 동안 중국 가계 자산과 소득이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조사에서 2024년 경제 전망이 악화될 것으로 예상하는 가구의 비율은 1분기 약 13%에서 4분기 약 22%까지 늘어났다.
호주&뉴질랜드은행의 싱 자오펑 중국 수석 전략가는 “자동차, 가전제품 등 다른 내구재와 마찬가지로 피아노 판매도 소득 기대치와 자산 효과에 영향을 받는다”고 말했다.
중국의 피아노 사랑은 수십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60년대 문화대혁명 때는 부르주아 계급의 상징으로 비난을 받았지만 경제 개혁과 국가 개방의 흐름 속에 피아노는 중산층을 위한 저렴한 사치품이 됐다. 2000년대 접어들며 중산층의 팽창과 함께 피아노는 더욱 널리 퍼졌다. 상하이음악원의 피아노 수석 교수인 팡 바이리는 2021년 중국에서 피아노를 배우는 사람이 6000만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했는데 이는 전세계에서 가장 많은 수치였다.
중국시장이 확대되면서 세계의 유명한 피아노 제작업체들도 중국으로 눈을 돌렸다. 미국 뉴욕에 본사를 둔 스타인웨이 앤 선스 CEO 론 로스비는 2020년 중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중국은 스타인웨이의 가장 큰 시장이자 전 세계적으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시장 중 하나”라고 말했다.
중국내 생산량도 증가했다. 중국악기협회에 따르면 연간 피아노 총 생산량은 최소 2003년부터 2019년까지 꾸준히 30만대를 넘었다. 이달 초 신화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왕스청 협회장은 피아노의 급격한 판매 감소는 소비자들 사이에서 비필수품에 대한 수요 감소로 인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피아노 판매업체들은 소비를 끌어내기 위해 가격을 크게 낮췄지만 가격 인하만으로는 잠재적 구매자를 유인하기에는 역부족인 모습이다. 블룸버그가 지난달 초에 방문한 베이징 쇼룸의 일부 피아노는 30%나 가격이 할인됐지만 매장은 텅 비어 있었다. 이 매장의 직원은 “업계에서 10년 넘게 일하면서 이런 수준의 할인은 처음 본다”면서 “2023년 매출이 팬데믹 기간보다 더 나빴다”고 밝혔다.
중국 전체 생산량의 약 절반을 차지하는 주강피아노와 하이룬피아노는 최근 수익 급감에 대한 경고를 발표했다. 국영기업인 주강은 오는 3월 실적 발표 때 지난해 순이익이 거의 없다고 발표할 것으로 예상된다. 하이룬은 2023년 최대 8000만위안의 순손실을 예상하고 있는데, 이는 800만위안 이상 이익이 증가했던 2022년과는 완전히 반전된 수치다.
피아노의 인기 하락은 중국 중산층을 짓누르고 있는 암울한 고용시장과 부동산 붕괴의 영향이 크다. 중국은 부동산 소유가 순자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다른 나라에 비해 높기 때문에 블룸버그 이코노믹스는 주택 가격이 5% 하락할 때마다 19조위안의 자산이 사라지는 것으로 추정한다.
나티시스 SA의 아시아태평양 수석 이코노미스트 알리샤 가르시아 헤레로는 “가계는 주택 가격 하락으로 인해 자신의 재산이 매우 부정적인 영향을 받았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당연히 소비 심리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밝혔다.
박소원 기자 hopepark@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