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경제는 어디로? 상충되는 신호들

2024-03-13 13:00:04 게재

경제지표 상반 … 다시 떠오르는 해인가, 지는 해인가 ‘잃어버린 30년’ 갈림길

일본 증시의 대표 주가지수인 닛케이225 평균주가(닛케이지수)가 지난 4일 개장 초 4만 선을 돌파한 가운데, 도쿄 시내 주가 시황 전광판 앞을 행인이 지나가고 있다. 연합뉴스
최근 일본경제 지표들이 전문가들조차 갈피를 잡지 못할 정도로 상반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일본이 저성장 저출생과 초고령화 등으로 인한 ‘패러다임 대변환’을 겪으면서 그 미래를 쉽사리 예측키 어려운 미지의 길로 들어섰다는 분석이 나온다.

일본 증시 대표 지수인 닛케이225 평균(닛케이지수)은 지난 4일 사상 처음으로 4만선을 돌파했다. 일본의 소비자 물가지수(CPI)는 22개월 연속으로 일본은행(BOJ) 목표치인 2%대를 유지했다. 반면 지난해 3분기와 4분기 일본의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각각 -3.3%와 -0.4%를 기록했다. 일본경제는 독일에 세계3위 자리를 내주면서 4위로 밀려났다. 일본은 다시 떠오르는 해인가, 아니면 지는 해인가?

일본은 1968년 서독을 누르면서 세계2위 경제대국으로 올라섰다. 소니의 전자제품과 도요타・닛산의 자동차와 니콘・캐논의 카메라 등 일본산 제품들이 세계 시장에서 날개돋친 듯 팔렸다. 20년 가까이 승승장구하던 일본에 급제동을 건 것은 1985년 ‘플라자 합의’였다. 미국과 영국 프랑스 독일 일본의 재무장관과 중앙은행장들은 그해 9월 22일 미국 뉴욕의 플라자호텔에 모여 달러 약세와 엔화 강세를 유도하기로 합의했다.

이후 엔화의 가파른 절상과 함께 일본 기업들의 해외수출은 큰 타격을 받기 시작했다. 1990년대로 들어서면서 부동산과 증시의 거품 붕괴까지 겹쳤다. 보다 근본적으로는 저출생과 고령화가 급속히 진행되면서 일본경제의 힘을 뺐다. 일본은 ‘잃어버린 30년’이라는 디플레이션의 늪으로 점점 빠져들었다. 2010년 일본은 세계2위의 경제대국 자리를 중국에게 내준다.

역대 일본정부는 디플레이션과의 전쟁을 벌여왔다. 특히 아베 신조 전 총리는 2012년 집권과 함께 대대적인 양적완화 정책을 펼쳤다. 그는 과감한 금융완화와 적극적인 재정정책, 큰 폭의 감세 및 규제완화 등 이른바 ‘3개의 화살’을 앞세운 아베노믹스를 밀어붙였다. 중앙은행인 일본은행(BOJ)은 제로금리를 넘어 마이너스금리까지 내렸다. 2년 사이에 통화량을 두배로 늘렸다.

점차 증시가 회복되고, 수출이 늘고, 외국인 관광객도 몰려들기 시작했다. 그러나 기업의 경기는 회복되었지만 가계의 수요는 살아나지 않았다. 더군다나 아베노믹스는 코로나19의 직격탄을 맞았다.

기시다 총리의 ‘새로운 자본주의’

아베 전 총리의 뒤를 이은 기시다 후미오 총리는 분배를 중시하는 ‘새로운 자본주의’를 내놓았다. 기시다 총리는 “경제적 과실이 제대로 분배되지 않으면 소비와 수요가 살아나지 않고, 다음 성장도 바랄 수 없다”는 입장을 내세웠다. 임금인상을 통해 수요를 자극하는 소득주도 성장으로 노선을 바꾼 것이다. 복지 확대로 사회안전망을 강화하는 정책도 함께 내놓았다.

기시다 총리의 소득주도 성장은 그 효과를 나타내기 시작했다. 지난 1월 일본의 소비자물가지수는 2.2%를 기록했다. 22개월 연속으로 2%대를 유지한 것이다. 임금도 꾸준히 상승세를 기록하고 있다. 일본언론들의 보도에 따르면 일본정부는 23년 만에 디플레이션 탈출 선언을 검토하고 있다. 일본은행이 3월이나 4월 마이너스금리 정책을 해제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외신들도 일본의 디플레이션 탈출 징후들을 주목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최근 보도를 통해 일본이 인구감소 국면에서도 디플레이션에 훌륭하게 대처했다고 평가했다. “1991~2019년 일본의 시간당 노동생산성은 한해 평균 1.3% 올랐다. 이는 미국보다는 느리지만 캐나다 프랑스 독일 영국과는 비슷한 수준이다. 2019년 이후 일본 경제활동 가능인구의 생산량은 5% 증가했다. 이는 7% 증가한 미국보다는 낮지만 2%에 그친 유로존이나 0%를 기록한 영국보다는 월등한 수치다.”

WSJ는 그러나 “일본경제의 문제를 디플레이션 탓이라고 입증하는 일은 쉽지가 않다”면서 “디플레이션은 문제의 원인이 아니라 증상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WSJ는 1990년대 초반 일본의 노동가능연령 인구가 감소세로 돌아섰다는 사실과 일본 기업들이 낮은 임금을 찾아 후진국으로 공장을 이전하기 시작했음을 주목했다.

뉴욕타임스(NYT)도 일본경제의 상충되는 신호들을 짚었다. NYT는 “일본 기업들은 사상 최대의 수익을 올리고 있다. 주식시장은 달아오르고 있다. 실업율은 낮다”면서도 “그러나 경제활력의 양대 요소인 소비지출과 기업투자는 지지부진하다”고 전했다.

미쓰비시 UFJ 리서치 앤 컨설팅의 수석 이코노미스트인 고바야시 신이치로는 NYT와의 인터뷰에서 일본의 물가상승이 경제양극화를 불러왔다고 분석했다. 고바야시는 기업 이윤이 늘고 물가도 올랐지만 임금은 오르지 않으면서 소비자들이 지출을 꺼리고 있다고 진단했다. 고바야시는 올해 일본경제의 향배는 노동자들의 임금인상 여부에 달려 있다면서 “공은 이제 기업 쪽으로 넘어갔다”라고 말했다.

패러다임 대변환 맞은 일본

일본은 다시 세계 경제3위 자리에 올라설 수 있을까, 아니면 성장세가 무서운 인도에게 4위 자리마저 내줄까?

골드만삭스 애널리스트이자 옥스포드대 일본학 전문가인 데이비드 앳킨슨의 저작 ‘위험한 일본경제의 미래’는 거시적 안목의 통찰을 담고 있다. 앳킨슨은 일본이 지금 인구감소와 고령화에 따른 패러다임 대변환을 맞이하고 있다고 분석한다. 그는 “인구 증가라는 패러다임에서 만들어진 경제시스템이 인구 감소와 고령화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에서 제대로 작동할 리 없다”면서 “당장 대책을 강구하지 않으면 일본은 가까운 미래에 개발도상국으로 전락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새로운 패러다임에서는 양적완화나 제로금리, 재정건전화, 외국인 노동자의 적극적인 수용 등 미시적이고 지엽적인 기존의 정책들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앳킨슨은 1992년 이후 일본의 GDP가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기업의 이익은 늘어났음에 주목한다. 디플레이션 국면에서 기업들이 임금과 투자와 연구개발(R&D)를 줄이는 ‘저차원 자본주의’로 이행하면서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분석한다.

그러면서 일본이 실행해야 할 정책을 명확하게 제시한다. “먼저 소득을 지속적으로 올리는 것이다. 그 효과로 생산성이 높아진다. 여기에는 조건이 필요하다. 기업의 규모를 키워야 한다. 그러면 수출이 활발해 질 것이다. 신기술의 보급도 원활해진다. 소득이 늘기 때문에 세수도 늘어난다. 주가도 오르고 재정도 개선된다. 요컨대 지금의 악순환을 선순환으로 바꿔야 한다.”

기시다 총리의 ‘새로운 자본주의’는 앳킨슨의 처방에 부응하는 방향에 선 것으로 보인다. 기시다 총리는 기업들이 임금을 올리면 정부가 매칭펀드형식으로 보조금을 주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일본 노동자들도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일본 최대 노동조합 조직인 렌고(連合, 일본노동조합총연합회) 산하 노조들은 올해 춘계 임금투쟁(춘투)에서 30년 만에 최고 수준인 5.85%의 임금인상을 요구하고 나섰다. 일본정부는 디플레이션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물가상승을 웃도는 임금상승이 중요하다며 기업을 압박하고 있다. 일본 기업들이 어떤 태도를 취하는지에 따라 ‘새로운 자본주의’의 성패가 갈릴 것으로 보인다.

한국경제 “일본꼴 날라”

“일본 꼴 날라!” 이미 오래전부터 우리나라 경제를 걱정하는 이들의 입에서 터져 나오는 걱정이다. 특히 최근 고금리・고유가・고물가 등 이른바 ‘3고’ 상황이 지속되면서 저성장・저고용・저소득의 ‘3저’ 현상이 깊어지고 있다.

한국의 성장률은 지난 2011년 이후 지속해서 떨어지고 있다. 지난해 한국의 경제성장률은 25년 만에 일본에 뒤졌다. 한국은행이 올 1월 발표한 지난해 우리나라 실질 GDP 성장률은 1.4%로, 이는 일본보다 0.5%p 밑도는 수준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올해 한국의 잠재성장률을 2.004%로 전망했다. 한국의 잠재성장률은 지난 2011년 3.8%를 기록한 이후 단 한차례의 반등도 없이 계속 떨어지고 있다. 이런 나라는 OECD 38개국 중 한국이 유일하다.

게다가 한국도 일본처럼 저출생과 고령화가 가파르게 진행되고 있다. 지난해 우리나라 합계 출생률은 0.72명으로 세계 최저이자 역대 최저를 기록했다. 한국이 일본의 ‘잃어버린 30년’을 답습할 수 있다는 우려를 더하는 대목이다. 우리 정부는 지금 어떤 대책을 세우고 있을까?

박상주 칼럼니스트 지구촌 순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