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좁고 가파른 언덕길 전용차량으로 모셔요

2024-03-13 13:00:04 게재

종로구 창신동 골목에 ‘돌봄카’

노년층 주민들 콜택시처럼 이용

“운동 삼아 나가는 거예요. 볼일 보고 시장 들렀다가 5시 전에는 들어와야지.”

종로구가 서울에서 손꼽히는 대중교통 사각지대인 창신동 골목을 오가는 어르신 돌봄카를 운행, 주민들 호응을 얻고 있다. 사진 종로구 제공

1988년부터 서울 종로구 창신2동에 살고 있다는 손주길(87)씨. 점심 이후에는 운동을 겸한 나들이에 나선다. 지하철 1·4호선 동대문역 근처에서 산보를 하다가 두세시간 뒤에 귀가하는 일상을 되풀이한다. 손씨는 “오토바이가 많이 다녀서 위험한데 요새는 집 앞에서 동대문역까지 편하게 움직일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종로구에서 지난해 시범운영을 거쳐 올해 서비스를 확대한 ‘어르신 돌봄카’ 덕분이다.

13일 종로구에 따르면 대중교통 사각지대인 창신2동과 창신3동 골목을 오가는 ‘어르신 돌봄카’가 주민들 호응을 얻고 있다. 지난해 10월부터 승용차 한대를 활용해 시범사업을 했는데 하루 평균 50~60명, 많게는 80명까지 이용했다. 석달 시범사업 기간 이용한 주민만 2900여명에 달한다. 인근 동네까지 입소문이 나서 창신동뿐 아니라 숭인동과 혜화동에 거주하는 주민들까지 돌봄카를 기다릴 정도다.

한양도성을 이루는 서울 내사산 중 한곳인 낙산 중턱과 정상부에 위치한 창신2동과 창신3동은 대표적인 대중교통 사각지대다. 가파른 언덕까지 구불구불 비좁은 골목이 이어져 마을버스도 운행이 어렵다. 보도와 차도 구분이 없는 길에 승용차는 물론 택배 청소 등 각종 차량이 뒤섞이기 일쑤다. 특히 소규모 봉제업체를 오가는 오토바이가 차량과 보행자 사이에서 곡예운전을 하는 통에 위험천만한 상황이 일상적으로 펼쳐진다.

지하철역이 있는 평지까지 이어지는 대중교통은 주민들 오랜 숙원이다. 낙산 정상부에서 50년을 거주하고 있는 김영일(84)씨는 “20년 전부터 마을버스를 연장 운행해 달라고 요구했는데 방법이 없다는 답만 들었다”며 “승강기를 놔달라고 했는데 그것도 안된다고 하고 주민들이 자체적으로 봉고차를 운행하려고 시도했는데 중턱에 있는 시장 상인들이 반대해 무산됐다”고 말했다.

종로구는 구와 함께 공유차량 사업을 하는 업체와 협약을 통해 해법을 찾았다. 민간 회사에서 운전자를 채용해 정해진 구간을 차량이 오가는 방식이다. 65세 이상이면서 스스로 거동이 가능한 주민들은 누구나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지난해에는 차량 한 대가 평일 오전 9시부터 저녁 6시까지 골목을 오갔는데 올해는 한대를 더 투입해 주말까지 운행한다. ‘동대문역 1번 출구’ ‘덕산파출소’ ‘창낙경로당’ 등 승·하차 지점이 정해져 있지만 주민들은 사실상 콜택시처럼 이용한다. 지난해 시범사업부터 운전대를 잡고 있는 기사 정윤택(67)씨는 “무거운 짐이 있는 경우 집 앞까지 모셔다드리는데 차량에 탑승한 분들도 그러려니 하고 기다려주신다”며 “통상 70세 이상이 이용하시는데 거동이 불편해 보이면 좀 젊어 보여도 타시라고 권한다”고 말했다.

실제 정씨가 운행하는 차량에 동승해 동대문역 1번 출구부터 낙산 정상부를 오갔는데 시골 완행버스 느낌이었다. 시속 20~30㎞ 정도로 운행을 하면서 평소 차량을 이용하던 주민이 눈에 띄면 “모셔다 드리겠다”고 먼저 인사를 건넨다. 시장 언저리에서 장기를 두는 노인들은 “집에 안들어가시냐”는 물음에 “조금 있다가 타겠다”고 화답하기도 했다.

종로구는 내년 복지재단 설립과 함께 돌봄카 사업을 이관해 보다 안정적으로 운영할 방침이다. 주민들 요구를 반영한 노선 확대 등도 고심 중이다.

정문헌 종로구청장은 “어르신 누구나 편안하고 안전하게 돌봄카를 이용할 수 있도록 지속적인 서비스 개선을 도모하고 만족도를 높이겠다”고 말했다.

김진명 기자 jm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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