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이재성 교수의 웰컴투 AI

알파 세대 위한 전공 선택 가이드

2024-03-13 13:00:02 게재

지난달까지 중앙대 AI학과장으로 재직하며 학과를 홍보할 기회를 여러 차례 가졌다. 이때 흔히 받는 질문 중 하나는 AI학과와 컴퓨터공학과 차이점에 관한 것이었다.

컴퓨터공학은 기본적으로 장비 활용 및 비용의 관점에서 컴퓨터를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방법에 중점을 둔다. 쉽게 말해 200만원짜리 컴퓨터를 어떻게 하면 최대한 활용해 이득을 극대화할지에 대한 방법을 고민한다. 컴퓨터가 멈추지 않고 24시간 내내 돌아가게 만들기 위해, 또한 동일한 작업이라도 더 빨리 완료할 수 있도록 한치의 오차도 없이 주어진 작업의 수행을 ‘강제할’ 방법에 집중한다.

완벽함 추구하는 컴퓨터공학과, ‘다소 틀려도 괜찮다’는 AI학과

AI학과에서는 컴퓨터를 얼마나 효율적으로 쓰느냐에는 관심이 없다. 비용이 얼마가 들어가든 컴퓨터로 어떤 묘기를 부릴 수 있는가에 더 관심이 많다. 예를 들어 계산 도구인 컴퓨터를 사용해 사과와 귤을 구분할 수 있다면 이것이 실생활에 더욱 도움이 되지 않겠느냐는 식이다.

그런데 실생활에 도움이 되려면 구분을 잘해야 할 텐데? 연구 분야마다 다르고 설정된 실험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이미지를 구분하는 문제에서 인공지능이 95% 이상의 정확도를 보여줬다는 결과가 많이 보고됐다. 인공지능 분야는 현실에서의 효용성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다소 틀려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쉽게 말해 사과와 귤을 95%의 정확도로 구분해도 실생활에서 쓸모가 있다면 5%의 오류쯤이야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식이다.

심지어 실생활에 쓸모가 있다는 전제하에 컴퓨터공학처럼 정답을 ‘찾을 수밖에 없는’ 완벽한 방법을 증명까지 하는 수고를 들이기보다는 적당히 95% 이상의 확률로 정답을 찾을 수 있다면 그것이 증명되지 않은 경험칙이라 할지라도 적당히 쓰면 된다는 식이다.

칼럼의 목표가 AI학과 진학을 희망하는 이들을 위한 가이드인데 굳이 두 학과의 차이점을 이야기한 이유는 자녀의 진로를 고민하는 학부모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어서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인공지능이든 컴퓨터공학이든 기본적으로 컴퓨터에 관심이 있어야 한다. 두 분야 모두 컴퓨터를 활용해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이 목표이므로 컴퓨터에 관심이 없다면 이 분야들이 적합하지 않다.

여기서 강조하고 싶은 건 아이가 컴퓨터 게임을 잘하는지 못하는지, 인터넷을 잘하는지 못하는지는 크게 상관없다.

물론 컴퓨터를 많이 사용하면 컴퓨터에 대한 친화력도 높을 테지만 그건 정보화 사회를 지나 지능화 사회로 나아가는 시대에 태어난 아이들에게는 너무 당연한 일이다.

지식능력 SW로 현실문제 해결에 관심 있다면 AI 고려

그보다는 컴퓨터를 자기 뜻대로 제어하는 것에 기쁨을 느끼는지 아닌지를 살펴봐야 한다. 예를 들어 소프트웨어 설치에 실패했을 때 스스로 고민하고 컴퓨터의 설정이나 내부 장치를 바꾼 뒤 소프트웨어를 다시 설치해 실행한 것을 기뻐한다면 이는 아이가 컴퓨터에 소질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실마리다. 반면 컴퓨터를 내 입맛에 맞게 바꾸는 걸 귀찮아하고 컴퓨터를 그저 도구로만 쓰기 원하는 아이들은 컴퓨터공학이나 인공지능 분야에 적합하지 않다.

자녀가 컴퓨터에 관심 있는 게 확실하다면 그다음 확인할 것은 관심의 방향이다. 자녀가 컴퓨터라는 기계 자체에 관심을 갖고 이 기계를 효율적으로 또는 자신의 의도에 맞게 움직이도록 만드는 소프트웨어에 관심이 있는 건 아닌지 살펴봐야 한다.

예를 들어 자녀가 컴퓨터로 해외의 누군가와 통신하는 과정에서 더욱 효과적으로 정보를 전달하는 방법에 관심이 있거나 RC카(무선조종 자동차) 내부의 운영체제나 소프트웨어를 바꿔 동작방식을 변경하는 등 자신이 만든 논리 흐름을 통해 하드웨어를 제어하는 방법에 집중하고 성취했을 때 희열을 느낀다면 그 아이는 컴퓨터공학과 진학을 고민해보는 것도 좋다. 컴퓨터라는 기계 자체, 나아가 어떤 장비를 제어할 방법, 프로그래밍의 핵심인 자신만의 논리를 짜는 데 관심이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한편 아이가 하드웨어를 제어하는 방향이 아니라 더욱 심화된 소프트웨어에 관심이 있다면 인공지능 분야가 더 적합할 수 있다. 특히 인간이나 자연의 지능적인 행동을 모방하는 프로그래밍에 관심이 있다면 AI학과 진학을 고려 해봐도 좋을 것이다.

수학을 활용해 프로그램의 동작을 수식으로 정의할 수 있다면 금상첨화다. 간단히 말해 컴퓨터와 프로그래밍에 관심이 있는 학생 중 컴퓨터 자체에 더 관심을 보이는 경우에는 컴퓨터공학과를 고려하는 것이 좋고 컴퓨터를 이용해 인간처럼 느껴지는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데 관심이 있다면 AI학과를 고려하는 것이 좋다.

이재성 중앙대 AI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