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장 없는데 압력 시달리는 공수처

2024-03-19 13:00:20 게재

“이종섭 출국 허락한 적 없다” 밝히자

대통령실 “대단히 부적절” 공수처 맹공

공수처장 지명 지연 … 수사차질 우려

해병대 채 상병 순직사건 수사 외압 의혹의 핵심 피의자인 이종섭 주호주 대사의 출국 논란과 관련해 대통령실과 여당의 압박을 받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가 어떻게 수사를 전개해나갈지 주목된다. 국민적 관심사로 떠오른 만큼 지휘부의 판단이 중요하지만 공수처장 자리는 두 달 가까이 공석인 상태다. 차기 공수처장 후보자 역시 친여 성향의 인사들이어서 새 수장이 임명돼도 제대로 수사가 이뤄지겠느냐는 의문이 제기된다.

19일 법조계에 따르면 지난 1월 20일 김진욱 초대 공수처장이 임기만료로 물러난 이후 공수처장 공백사태가 이어지고 있다. 공수처장 후보추천위원회가 지난달 29일 오동운·이명순 변호사를 새 공수처장 후보자로 추천했지만 윤석열 대통령이 인사검증을 이유로 최종 후보 1명을 지명하지 않고 있어서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 2022년 12월 추천위의 추천이 있은 지 이틀 만에 김 처장을 지명한 것과 대비된다. 차기 공수처장 인선이 늦어지는 동안 여운국 차장의 임기가 끝나고 김선규 수사1부장도 사직서를 제출하면서 공수처는 ‘대행의 대행의 대행’이라는 기형적인 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수장이 비어있는 사이 공수처는 이 대사의 출국과 관련한 논란의 중심이 됐다. 전날에는 대통령실과 정면 충돌하는 양상까지 보였다. 대통령실이 “법무부에서만 출국금지 해제 결정을 받은 게 아니라 공수처에서도 출국 허락을 받고 호주로 부임한 것”이라는 입장을 내놓자 공수처가 “출국을 허락한 적이 없다”고 반박했고, 대통령실이 다시 언론을 통해 “대단히 부적절하다”며 재반박에 나선 것. 대통령실은 “이 대사가 출국 전 자진 출석해 조사를 받았고 다음 기일을 정해주면 나오겠다 했다. 공수처에서 다음 수사 기일을 정해 알려주겠다고 했다”며 “사실상 출국을 양해한 것 아니냐”고 했다.

대통령실은 특히 이 대사 임명은 정당한 인사였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이 대사에 대한 검증 과정에서 고발 내용을 검토한 결과 문제될 것이 전혀 없다고 판단했고, 공수처도 고발 이후 6개월간 소환 요청을 한 번도 한 적이 없다”고 밝혔다.

채 상병 순직사건 수사 외압 의혹의 주요 피의자인 이 대사의 고발 내용에 대한 대통령실의 판단을 밝힌 것으로 일종의 수사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것으로 읽히는 대목이다.

공수처는 여당으로부터도 압박을 받는 모습이다. 앞서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15일 ‘공언(공수처와 언론)유착’ 의혹을 제기하며 “만약 공수처가 의도적으로 수사 기밀을 흘리고 있다면 매우 심각한 범죄일 뿐 아니라 민주주의를 흔드는 선거개입”이라고 했다.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은 17일 “공수처가 즉각 소환하고 이 대사는 즉각 귀국해야 한다”며 공수처의 신속한 수사를 요구했다.

공수처가 이번 사건 강제수사에 나선 것은 지난 1월 김계환 해병대 사령관과 유재은 국방부 법무관리관, 박진희 전 국방부 군사보좌관 등을 압수수색하면서다. 공수처는 현재 압수물 분석을 진행 중이다. 통상 압수물을 분석하고 아랫사람부터 수사해 사실관계를 확인한 뒤 윗선을 불러 진술을 받아내는 수사과정을 모를 리 없는 한 위원장이 이 대사에 대한 즉각 소환을 요구하자 공수처는 당황스러워 하는 분위기다.

어느 때보다 수장이 나서 공수처의 중심을 잡아가야할 상황이지만 대통령실의 공수처장 지명이 늦어지면서 의도적으로 힘을 빼려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수장이 없더라도 일상적인 수사는 진행할 수 있겠지만 사건처리 방향 등 중요한 결정을 내리기는 어렵다”며 “수장이 없는 상태에서 공수처가 얼마나 신속하게 수사를 할 수 있을지 미지수”라고 말했다.

새 공수처장이 임명돼도 수사가 제대로 이뤄질지에 의문이 제기된다. 후보자 2명 모두 여권 추천 후보인 탓이다.

여권 위원들의 지지로 일찌감치 후보로 꼽힌 오 변호사의 경우 판사 출신으로 수사 경험이 없다는 것도 단점으로 꼽힌다.

역시 여권 추천을 받은 이 변호사는 윤 대통령과 함께 ‘우검회(우직한 검사들의 모임)’라는 친목모임을 함께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우검회에는 윤 대통령뿐 아니라 한 위원장, 이원석 검찰총장 등도 속했다고 한다. 이 후보자는 언론을 통해 근무 이력이나 경력이 윤 대통령과 다르고 우검회 해체 후 가까운 사이를 유지한 것도 없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법조계 안팎의 우려가 적지 않다.

참여연대는 “윤석열정부에서 반복되고 있는 윤 대통령의 검사 출신 ‘내 편’ 임명이 공수처에서조차 반복되어서는 안된다”며 “공수처 출범 취지에 입각해 공수처의 공정성과 중립성을 담보할 수 있는 후보를 지명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구본홍 기자 bhkoo@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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