잇따른 어선 사고 이어 화물선도 전복…지금 바다는 비상

2024-03-22 13:00:04 게재

해경·해양교통안전공단 4월까지 특별대책기간 선포

되풀이되는 ‘사고 후 대책’ … 집행력·실효성 높여야

부산 소재 해운회사의 화학제품 운반선이 지난 20일 일본 시모노세키시 앞바다에서 전복된 사고로 배에 타고 있던 한국인 2명(선장, 기관장)을 포함 9명이 숨지고 1명이 실종됐다. 구조된 인도네시아인 선원 1명은 생명을 건졌다. 배에는 한국인 2명, 인도네시아인 8명, 중국인 1명 등 모두 11명이 타고 있었다.

잇따른 어선 사고에 이어 일본에서 출항해 한국(울산)으로 오던 화물선이 일본 해상에서 전복되는 사고로 인명 피해가 발생하자 당국도 긴장 수위를 높이고 있다.

강도형(앞줄 가운데) 해양수산부 장관은 경남정치망수협 부산시수협 대형기선저인망수협 등 5개 수협 조합장과 어업인 부산시 해양경찰청 등과 함께 21일 부산공동어시장에서 열린 어선사고 예방을 위한 안전캠페인에 참석했다. 사진 해양수산부 제공

강도형 해양수산부 장관은 21일 부산공동어시장에서 열린 어선사고 예방을 위한 안전캠페인에 참석, 어업인들에게 안전수칙을 반드시 준수해달라고 당부했다. 이날 캠페인에는 경남정치망수협 부산시수협 대형기선저인망수협 등 5개 수협 조합장과 어업인 부산시 해양경찰청 등에서 참석했다.

해수부와 해양경찰청 한국해양교통안전공단(KOMSA)은 해양안전을 위한 특별대책기간을 선포하고 사고예방 대응에 들어갔다. 해양경찰청은 18일부터 다음달 30일까지 해양안전 및 안보 특별경계기간을 발령했다. 해수부는 19일 어선안전 특별위기경보 '경계'를 발령, 사고 예방을 위한 관계 기관들의 유기적이고 광범위한 협력을 강조했다. 이에 따라 해양교통안전공단은 20일 해양안전 특별 대책본부를 가동했다. 대책본부는 다음달 말까지 운영할 예정이다.

◆4월말까지 사고예방, 사고 후 구조태세 강화 = 해경은 특별대책기간 동안 각종 해양사고에 대비해 24시간 비상 출동태세를 유지하고 순찰을 강화하는 등 사고 발생에 신속히 대응할 수 있는 태세를 갖추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경비함정·파출소·구조대·중특단·해상교통관제센터(VTS)·상황실 등에서는 다중이용선박 항로대, 조업선박 분포해역 주변해역에 대한 집중안전관리와 구조태세를 강화한다.

강도형(앞줄 가운데) 해양수산부 장관은 경남정치망수협 부산시수협 대형기선저인망수협 등 5개 수협 조합장과 어업인 부산시 해양경찰청 등과 함께 21일 부산공동어시장에서 열린 어선사고 예방을 위한 안전캠페인에 참석했다. 사진 해양수산부 제공

해양교통안전공단은 사고 예방에 집중하고 있다. 공단은 △근해 연승·통발어선 등을 대상으로 복원성에 영향을 미치는 각종 구조설비 집중점검 △최고 경영진이 직접 참여하는 권역별 현장 안전점검 및 선주단체 간담회 등을 진행하기로 했다.

1차 집중 점검 대상 선박은 오는 5월까지 선박검사 시기가 도래한 선박과 전복 위험이 큰 낚시어선 등 다중이용 선박이다. 법정 선박검사 외에 △어획물 적재가이드 제공 △구명조끼, 소화기 등 안전물품 보급 △해양사고 예방교육 및 안전 수칙 리플릿 배포 등을 집중 실시할 예정이다. 어획물 적재 가이드는 선박 복원성을 확보하기 위해 중요하다. 선박별로 어획물 어구 등의 적재 중량과 만재흘수선(건현) 등을 쉽게 확인할 수 있는 안내문이다. 만재흘수선은 선박에 화물을 최대한 실을 수 있는 한계를 표시한 선으로 선체에 페인트색으로 구분해 놓았다.

나홀로 조업 어선 등 안전에 취약한 어선을 대상으로 팽창식 구명조끼와 소화기도 보급하고 있다. 원거리조업에 나서는 연근해 어선에 안전물품 보급도 늘린다. 기상특보가 발령되면 조업을 자제할 것을 안내하는 안전 수칙 리플릿 1만부도 새롭게 제작해 이달까지 전국 조업 현장에 배부하기로 했다. 어선 뿐만 아니다. 전국 내항여객선 특별 안전 점검도 추진한다.

공단 운항본부는 해수부·관계기관과 함께 전국 운항관리센터를 중심으로 짙은 안개 기간 연안여객선 안전운항 전수 점검과 노후 연안여객선 집중점검에 나선다. 또한 전국 사고다발 항로에 대해 지능형 CCTV, 항공·수중 드론 등을 활용한 항로 상 위해요소 집중 관리도 실시할 예정이다.

선박 소유자와 선사 등의 자율적 안전관리를 위해 지난해 구축한 ‘우리 선박(선사) 관리’ 서비스 홍보도 강화한다. ‘우리 선박 관리’ 서비스를 통해 선박 소유자들이 선박 진수일·총톤수·길이·승무정원·항해구역 등 선박 제원 정보는 물론 엔진·발전기 등 주요 설비 개방정비일자까지 간편하게 볼 수 있어 자율적인 안전관리에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사고 후 대책 제대로 집행 안 돼 = 해수부는 최근 잇따른 어선사고 원인을 분석한 후 안전조업대책을 보강해 발표할 예정이다. ‘사고발생 → 대책발표’는 되풀이되고 있지만 제대로 집행하면서 현장의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은 여전하다.

해수부 중앙해양안전심판원이 발표한 ‘2023년 해양사고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해양사고는 3092건으로 2022년에 비해 229건, 8.0% 증가했다. 특히 어선사고는 2047건으로 19.2%(329건) 증가했다.

해수부는 지난해 2월 전남 신안군 임자면 대비치도 서쪽 16.6㎞ 해상에서 발생한 청보호 사고(사망 5명, 실종 4명) 후 어선안전조업 시행계획을 수립·시행한다고 발표했지만 집행속도는 더디다.

당시 사고원인을 조사한 청보호 사고 수사본부에 따르면 과적으로 인한 해수유입이 사고원인으로 드러났다. 인천선적 24톤급 통발어선 청보호에 1개당 3~5㎏인 통발이 평상시보다 1000여개 많은 3000개가 실린 것으로 추정됐다.

경찰 조사과정에서 어구적재함의 불법증축도 적발됐다. 통발을 더 실은 탓에 선체 무게중심이 위로 쏠리면서 복원성을 상실한 것이 사고 원인으로 지목됐다.

해수부는 6가지 실행계획을 담은 ‘어선 안전관리체계’를 만들었다. 어선건조단계부터 선제적 안전관리, 어선 안전장비 개발·보급, 어업인 안전조업교육 내실화, 자가점검·단속을 통한 선제적 안전관리 시스템 구축, 법·제도 개선을 통한 선제적 안전관리 시스템 구축, 의식개혁을 통한 안전문화 확산 등이다.

하지만 예산부족, 이해관계자 의견수렴 등을 이유로 대책은 제대로 집행되지 못한 상태다.

우선 ‘어선건조 단계부터 선제적 안전관리’를 하겠다며 △안전성 중심의 어선 건조를 위해 건조업 자격요건 마련 및 진흥단지 조성을 통해 관련 시설 집적화 추진 △안전복지형 표준어선 대체건조 자금 지원 △섬유강화 플라스틱(FRP, 점유율 96.5%) 선체의 문제점을 해소할 대체 신소재(HDPE) 개발 등을 추진하겠다고 했지만 대체 신소재 개발 외에는 지지부진하다.

진흥단지 설계는 당초 동·서·남해 권역별로 1곳씩 조성하는 안도 검토했지만 전남 고흥에만 우선 조성하는 것으로 축소했고, 올해 실시설계에 들어가 단지 조성은 내년에 착공할 예정이다. 조성기간은 3~5년으로 예산 확보 규모에 따라 속도는 달라진다는 게 해수부 설명이다.

‘어선 안전장비(통신·조업 등)를 개발·보급’하는 일도 먼바다로 나가 조업하는 근해어선 5000척 중 2000척을 대상으로 올해 상반기까지 보급하는 계획으로 시행 중이다.

그물을 걷는 양망기 사고를 예방하기 위한 긴급정지장치에 무선원격 조정기능을 추가한 양망기 무선원격제어장치 기술개발 및 보급도 예산 문제로 시작을 못했다. 해수부 관계자는 “지난해 하반기에 보급하려 했지만 예산문제로 못했고, 내년도 예산에 반영해서 진행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어업인 안전조업교육을 내실화’하겠다고 했지만 교육효과는 미미하다. 해경이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어선사고 원인은 기상악화나 선박 재질불량같은 요인보다 관리소홀 안전부주의 운항부주의 정비불량 화기취급부주의 등 인적과실 요인이 압도적이다.

해경이 집계한 지난해 어선사고 4058건 중 기상악화로 발생한 사고는 131건, 관리소홀 정비불량으로 발생한 사고는 각각 413건 1199건이다. 운항부주의도 1334건에 달한다.

수산업계 관계자는 “어선주들이 사고예방에 관심을 기울일 수밖에 없는 경제적 동기를 강화하는 방안도 필요하다”며 “자동차사고가 나면 보험료율이 오르는 것처럼 어선 사고가 나면 보험공제율을 적정 수준으로 높이는 방안도 검토할 때가 됐다”고 지적했다.

정연근 기자 ygju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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