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윈세대 전용공간

도서관에서 만들기하고 작곡하며 창작 활동 즐깁니다

2024-03-28 13:00:00 게재

서울 영등포구 선유도서관 '사이로'에서 다양한 콘텐츠로 경험 쌓고 새로운 관계 형성 … 지역 12~16세 수요 조사 통해 탄생

서울 영등포구 선유도서관에 트윈세대를 위한 전용 공간 ‘사이로’가 개관했다. 트윈세대란 어린이와 청소년 사이에 끼어 있는, 초등학교 5학년부터 중학교 3학년 또는 해당 연령대를 말한다. 사이로는 메이킹존 사진존 게임존 무비존 스토리존 베이킹존 음악존을 갖췄다. 선유도서관 회원이면 누구나 자유롭게 이용하며 원하는 것을 만들고 작곡하며 책을 읽을 수 있다. 사이로 개관 이후 하루 평균 30명 이상이 방문하며 재방문율이 높다. 해당 연령대의 도서관 회원 가입도 늘고 있다.

“요즘엔 도서관에 자주 와요. 와서 만들기하고 게임도 하고 글도 쓰고 책도 만들어요." 22일 오후 방문한 서울 영등포구 선유도서관 트윈세대 공간 ‘사이로’에서 만난 초등학교 5학년 최준영양과 홍채원양의 말이다. 이날 사이로에서 어린이 청소년들은 친구와 함께, 혹은 혼자 자신들만의 작업에 몰입하고 있었다.

서울 영등포구 선유도서관 사이로 전경 사진 이의종

사이로는 선유도서관이 리모델링을 한 이후 2월 재개관하면서 신설된 공간으로 12세에서 16세를 위한 공간이다. 트윈세대들이 다양한 콘텐츠를 접하고 자유롭게 활동하면서 새로운 세계를 발견하고 넓혀갈 수 있는 도서문화재단씨앗의 ‘도서관 속 트윈세대 전용공간 프로젝트(Space T)’의 하나로 만들어졌다.

도서문화재단씨앗은 프로젝트 기획, 공간 설계 및 시공, 콘텐츠 기획을 담당하고 기금을 투입했으며 영등포구는 공간 제공을 비롯해 콘텐츠 준비, 전담 운영 인력 배치 등을 맡았다. 두 곳은 사이로 개관 이후 2년 동안 협업을 이어간다. 트윈세대 전용 공간은 전국 6번째, 서울엔 처음으로 조성됐다.

22일 선유도서관 사이로 스토리존에서 한 학생이 책을 읽고 있다. 사진 이의종

◆무엇이든 만들 수 있는 재료와 도구 갖춰 = 트윈세대는 공공도서관에서 만나기 어려운 세대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까지만 해도 부모 손을 잡고 공공도서관에 방문하던 어린이 청소년들은 성장하면서 학업에 바빠 공공도서관을 방문하지 못한다.

사이로 게임존 무비존 등 전경 사진 이의종

그렇지만 트윈세대들이 학교와 학원 이외 친구들과 혹은 혼자 창작 활동을 하고 싶거나 휴식을 취하고 싶을 땐 막상 갈 만한 곳이 별로 없다. 사이로 개관 준비 과정에서 트윈세대에게 설문조사를 했을 때 트윈세대들이 가장 많이 방문한다고 한 곳은 편의점이었다.

이하민 선유도서관 사서는 “어른이 안전한 공간에서 자신을 지켜주고 친구들과 돈을 지불하면 먹고 싶은 것을 먹으면서 떠들 수 있는 공간이 편의점”이라면서 “그렇게 트윈세대들이 편하게 올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보자고 시작한 곳이 사이로”라고 말했다.

사이로는 복층 구조로 도서관 2층과 3층에 위치해 있다. 2층에 메이킹존 사진존 게임존 무비존을, 3층에 스토리존 베이킹존 음악존을 갖췄다. 메이킹존에는 수십종의 미술용품과 다양한 종이들은 물론 종이컵 빨대 등 30가지 재료들을 갖춰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만들며 창작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조성했다. 옆에는 니퍼 망치 등 다양한 공구들도 갖추고 있다. 특히 재료들을 갖춘 곳을 재료바(재료bar)라고 하는데 해당 재료들로 활동할 수 있는 동사들을 붙여놓아 트윈세대들은 재료를 활용할 방법을 스스로 탐색한다. 예컨대, ‘빨대’라면 ‘구부리다’ 등의 동사를 붙여놓는 방식이다. 그 옆에는 어린이 청소년들이 영감을 얻을 수 있도록 엄선된 책들을 비치했다. 사진존에는 원하는 사진을 마음껏 찍을 수 있도록 폴라로이드 카메라 등 다양한 종류의 카메라들이 비치돼 있다.

메이킹존을 지나면 별칭 ‘이래도 되나’존이 나온다. 이곳에는 보드게임 수십종, 닌텐도 플레이스테이션 게임을 즐길 수 있는 게임존과 함께 DVD 800종과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를 볼 수 있는 무비존이 있다. 또 다양한 어린이 청소년 도서들이 진열된 동글탕과 네모탕이 마련돼 있다. 이곳에서 어린이 청소년들은 게임을 즐기며 휴식을 취하고 마치 목욕탕처럼 움푹 파인 공간에서 뒹굴거리며 책을 읽을 수 있다. 천장에는 철봉이 있어 간단한 운동도 즐길 수 있다.

◆시간을 들여 천천히 탐색하는 공간 = 내부 계단을 통해 3층으로 올라가면 스토리존이 나온다. 10대 작가가 쓴 책을 모아놓은 ‘10대 서가’, 간단한 문장을 바로 출력할 수 있는 ‘짧은 글 출력기’ 등을 만날 수 있다. 이곳에는 어린이 청소년들이 쉽게 책에 다가갈 수 있도록 10개의 주제로 분류된 서가가 놓여있다. 일반 공공도서관의 도서 비치는 어린이 청소년들에게 ‘어디에 무슨 책이 있는지 모르겠다’는 반응을 얻는 데에서 착안한 도서 분류법이다. 10개의 주제는 △나 성장 변화 △사랑 비밀 △관계 △취미덕질 등이며 대주제 아래 소주제별로 책을 따로 분류해 뒀다. 영등포구 트윈세대들의 수요가 많았던 ‘취미덕질’ 관련 책은 별도 공간으로 분류해 보다 많은 책을 선보이고 있다.

스토리존은 다양한 읽기를 바탕으로 트윈세대에게 쓰기를 권유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각종 종이와 필기도구 등 다양한 재료와 도구는 물론, 종이를 묶을 수 있는 각종 제본 기기들을 갖췄다. 어린이 청소년들이 작업 중인 시와 장편소설 등이 보관돼 있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음악존은 CD 320종과 LP 175종을 갖췄다. 디지털 피아노는 물론, PC에 작곡 프로그램을 갖춰 누구나 쉽게 음악을 만들 수 있다. 그 옆에는 베이킹존이 위치했는데 오븐 등을 갖춰 담당 사서들이 직접 베이킹 강좌를 열 예정이다. 베이킹존 역시 영등포구 트윈세대의 요구를 반영해 만들었다.

각 공간들은 독립적으로 구분돼 있으면서도 벽으로 구획되지 않아 다른 트윈세대들이 무엇을 하는지 자연스럽게 볼 수 있게 돼 있다. 서로가 어떤 활동을 하는지 보면서 자신이 원하는 활동을 찾아나가고 함께 활동을 해 보기도 한다.

다만, 트윈세대들은 이곳에서 검색을 통해 원하는 책 CD DVD를 찾을 수는 없다. 검색이 아니라 주제별 분류 혹은 가나다순 분류를 기반으로 자신이 원하는 책이 어디에 있는지 천천히 찾아 나가야 한다. 시간을 들여 원하는 것을 찾으면서 그 주변의 다양한 콘텐츠들까지 탐색할 수 있도록 유도했다.

◆“안전함과 안정감, 풍족함 느끼는 공간” = 선유도서관과 도서문화재단씨앗은 사이로 개관을 위해 2022년 8월부터 트윈세대를 만나 일기 수집, 개별 심층면담, 250여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등을 진행했다. 이를 기반으로 마치 집 같은 공간, 밝고 자연적인 느낌을 갖춘 지금의 공간을 완성했다. 사이로라는 이름 역시 트윈세대와 함께한 네이밍워크숍을 기반으로 결정했다. 이후에도 선유도서관 사서들과 도서문화재단씨앗은 ‘콘텐츠 기획 학교’를 1년여 동안 진행하며 운영을 준비했다. 개관 이후에도 담당 사서들은 트윈세대들의 공간 이용을 기록하며 필요한 콘텐츠들을 고민하고 있다.

트윈세대는 이곳에서 ‘사이러’ 혹은 ‘작가님’이라고 불린다. 도서관 밖에서 혹 있을 수 있는 부정적인 관계가 사이로 안에서의 활동에 영향을 주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비롯한 운영 방식이다. 이를 바탕으로 트윈세대들은 사이로에서 새로운 정체성과 관계를 형성할 수 있다. 이곳을 담당하는 사서들은 ‘매니저’라고 불린다. 선생님이 존재하지 않고 평가받지 않는 이곳에서 트윈세대들은 자존감을 높이고 성취감을 느끼며 자신만의 정체성을 찾아나간다.

이날 이곳에서 만나 게임을 하며 친구가 된 중학교 3학년 청소년들을 만날 수 있었다. 박동환군은 “게임을 하며 둘이 친해졌다”면서 “피아노 치고 작곡을 하기도 하고 철봉에 매달려 힘을 키우며 영화보기, 게임 등도 즐긴다”고 말했다. 임재현군은 “개관 전 철봉 위치 등에 대한 의견을 냈고 네이밍워크숍에도 참여해 의견을 냈다”면서 “처음 봤을 때 조명이 포근해 보이고 생각보다 넓어서 너무 좋았고 사진을 찍으러 자주 온다”고 말했다.

이현아 선유도서관 관장은 “사이로는 책과 다양한 콘텐츠를 기반으로 경험을 넓혀갈 수 있도록 촉진하는 공간”이라면서 “트윈세대들이 이곳에 오면 안전함과 안정감, 풍족함 등을 느낄 수 있는 공간으로 잘 정착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송현경 기자 funnyso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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