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 ‘변호사 전성시대’ 저무나…‘변론 공정했냐’ 쟁점 부각
성폭력·사기·흉악범 가해자 등 변론 내용 따지기 시작
매번 총선에서 가장 많은 후보 내 … “기회비용 적어”
입법조사처 “이념갈등 심화·변호사 집단 이익 대변”
정치입문하려면 교수직을 내놔야 하는 규정(국공립대)이 만들어지면서 정치권의 교수 진입이 크게 줄어든 것처럼 낙선해도 고소득이 보장되는 ‘변호사’들에게도 같은 잣대가 드리워질 전망이다. 변호사 시절 부를 축적하기 위해 약자에게 피해를 입힌 범죄자를 변호했다면 정치 입문에 큰 걸림돌이 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정당 입장에서 앞으로 변호사를 영입할 때 변론 사건과 내용을 챙겨볼 수밖에 없는 여건이 만들어졌다.
1일 중앙선관위에 따르면 22대 총선 후보자 952명 중 국회의원(177명), 정치인(346명)을 뺀 후보들 중 가장 많은 직업군이 변호사로 76명에 달했다. 지역구 후보로 57명, 비례대표후보로 19명이 나왔다. 그 뒤로는 교육자가 70명이었고 약사 의사가 17명으로 회사원(17명)과 같았다.
정당들의 변호사 선호는 일관됐다. 20대 총선 후보 1102명 중 국회의원(194명)과 정치인(373명)을 빼고 나면 변호사가 84명으로 가장 많았고, 교육자(70명), 상업(27명) 의·약사(21명) 회사원(21명)이 뒤를 이었다.
21대 총선 후보 1430명 중에서도 국회의원(185명), 정치인(526명) 외에는 단연 변호사가 75명으로 맨 앞에 있었고 교육자(74명), 상업(61명), 회사원(52명), 의·약사(34명) 순이었다. 이미 국회의원과 정치인의 수에 ‘법조계’가 상당수 들어와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전체 후보 중 법조인이 차지하는 비중은 크게 늘어날 것으로 추정된다. 입법조사처 보고서에 따르면 20대와 21대 국회의원 중 각각 16.3%(49명)와 15.3%(46명)가 법조계 출신이다. 21대 총선에 출마한 법조계 출신 후보자는 117명으로 당선율이 39.3%에 달한다.
입법조사처는 “판사·검사·변호사 등 법조인은 의원으로 충원되는 비율이 매우 높은 편”이라며 “그 이유로는 법률전문가로서 교육과정과 실전경험이 의원에게 요구되는 입법 전문성과 직결된다고 평가하는 정당과 유권자들의 기대를 들 수 있고 출마에 따른 경력단절의 기회비용이 적다는 점도 중요한 요인”이라고 설명했다. 정당과 유권자들은 변호사가 입법전문성이 있다는 점에서 매력적이고 변호사 입장에서는 출마해서 낙선되더라도 변호사 영업을 계속 할 수 있다는 점에서 도전하는 데 따른 부담이 다른 업종에 비해 적다는 얘기다.
◆변호사들에게도 들이대는 ‘정의’ = 하지만 정당입장에서 무턱대로 변호사를 영입하기 어렵게 됐다. 유권자들이 변호사들에게도 ‘정의로운 변호’였는지를 묻기 시작했다. 흉악범이나 성폭력범, 사기범 등을 변호할 수는 있지만 거액의 수임료를 받고 맡았던 변호에 대해서는 변론 내용을 따져봐야겠다는 얘기다.
헌법에 따라 모든 사람이 변호 받을 권리가 있다 하더라도 이들의 형량을 줄여 약자인 피해자의 피해구제를 차단하거나 변론과정에서 오히려 2차 가해를 보였다면 국회의원 자질과는 거리가 있다는 지적이다. 변호를 통해 ‘돈벌이’를 했을 수도 있지만 권력까지 욕심내선 안 된다는 주장이다. 국회의원을 하려 한다면 변호도 가려서 해야 한다는 얘기가 된다.
민변 출신의 민주당 조수진 후보는 아동 성폭력 가해자 변호과정에서 미성년자인 피해아동에게 2차 가해 발언을 한 게 드러났고 성범죄 가해자의 집행유예 판결을 끌어낸 사실을 홍보한 블로그 게시물이 논란을 일으키면서 여성계와 당내 사퇴 압박에 몰렸다.
조국혁신당 비례대표 1번인 박은정 후보의 배우자이면서 검사장 출신인 이종근 변호사가 ‘1조 원대 다단계 사기 사건’의 업체 대표를 22억 원의 수임료를 받고 변호해 논란이 됐다. ‘전관예우’라는 비판과 함께 자신이 검찰에서 주로 수사해온 업계의 변호를 맡았다는 이해충돌 논란도 제기됐다.
더불어민주당은 강원 춘천·철원·화천·양구갑 김혜란 후보, 인천 부평을 이현웅 후보, 대전 서갑 조수연 후보, 울산 남갑 김상욱 후보, 서울 양천갑 구자룡 후보, 대구 달서갑 유영하 후보를 언급하며 “성범죄 가해자를 앞장서 대변해 온 후보들이 국민의 대표가 돼선 안 된다”고 했다. 이들은 ‘알바생 강간 사건’ ‘지적장애인 여중생 집단 성폭행 사건’ ‘미성년자 성폭행’ 등의 가해자를 변호했다. 법률플랫폼에 아동 청소년 상대 성매수자 변호 이력과 성과를 홍보하기도 했다. 변론과정에서 “성범죄 피해자의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가 준강간 범행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다”라고 하는 등 2차 가해까지 서슴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또 조직적인 작업대출 사기 사건의 주범에게 법률서비스를 제공하거나 변호사 수입 축소 신고, 갭 투자 등으로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이들은 “흉악범도 법률 지원을 받을 권한이 있고 변호사는 그러할 의무가 있다”는 취지로 해명했다. 하지만 정치를 하려면 법률지원도 제한적으로 ‘국민의 눈높이’에 맞춰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가해자 편에서 변호를 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가해자 범죄를 최소화하면서 피해자의 아픔을 외면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모 변호사는 “변호사가 돈도 벌고 정치로 입문해 권력까지 탐하는 것은 욕심이며 시대정신에 맞지 않다”면서 “정치를 하려는 변호사는 사건 수임도 골라서 해야 한다”고 했다.
◆입법조사처 “최대한 다양한 사회집단들이 대표될 수 있어야”= 국회 입법조사처 전진영 정치의회팀장은 ‘국회와 주요국 의원의 직업적 배경 비교:법조계 출신 의원을 중심으로’ 보고서를 통해 변호사들이 과도하게 국회로 들어오는 게 ‘득’보다는 ‘실’이 많다고 봤다.
전 팀장은 “우리나라 국회를 대상으로 한 경험적인 연구에서 법조인 출신 의원은 사법 관련 입법활동에서는 비법조인 출신 의원과 차이를 보이지만, 법안발의나 가결율 등 전반적인 입법활동의 성과 측면에서는 차이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면서 “한국 정치의 양극화가 심화되면서 법조계 출신 의원이 국회의 전문성을 강화하는 역할을 하기보다는, 양대 정당의 이념적 갈등을 심화시킨다는 비판도 제기된다”고 했다. 또 “변호사 집단의 이해관계와 상반되는 내용의 법안(변리사·법무사 등 다른 전문자격사간의 이해갈등 법안)은 법조인 출신 위원이 다수를 차지하는 법제사법위원회를 통과하기 어렵다”며 “이로 인해서 법사위가 국민의 이익이 아닌 변호사의 이익을 수호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국회가 최대한 다양한 사회집단들이 국회에서 대표될 수 있도록 각 정당의 후보자 공천과정에서부터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며 “미국과 영국의 경우 과거에 비해서 법조계 출신 의원비율이 감소하는 추세인 반면, 공무원이나 선출직 공직자 출신이 증가하고 있는데, 이는 ‘정치의 영역’이 전문적인 영역으로 인정받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해석할 수 있다”고 했다. 박준규 기자 jkpark@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