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지도 저러지도 '속타는 여당'

2024-04-03 13:00:01 게재

대통령과 거리 두려니 자중지란·여당프리미엄 포기 비판

가까이 가려니 정권심판 휩쓸릴라 공포 … 메시지 혼선도

22대 총선을 일주일 앞두고 여당의 속이 까맣게 타들어간다. 정부와 연계해 굵직한 정책을 내놓을 수 있다는 점이 여당만 누릴 수 있는 프리미엄이지만 정권심판론 바람이 거셀 때는 그마저도 기대하기 어렵다. 섣불리 정부·대통령실과 밀착했다가는 같이 휩쓸려가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무작정 거리를 두기도 어렵다. 당정일치에 무게를 두는 경향이 강한 보수정당 특성상 ‘자중지란’ ‘내부총질’ 비판이 나오기 때문이다. 최근 국민의힘 내 일각에서 제기된 대통령 사과론과 탈당론이 바로 진압된 배경이다. 게다가 총선 이후 책임론은 물론 당내 주도권 향방을 염두에 둔 복잡한 역학관계 탓에 여당은 지금 그야말로 살얼음판이다.

3일 내일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국민의힘 국회의원 후보들은 정부·대통령실과 거리를 두지도, 안 두지도 못하는 애매한 상황에 처했다. 윤석열 대통령에게 비판적인 유권자가 많으니 거리를 두는 게 전략적으로 옳다고 보면서도 여당 프리미엄을 스스로 포기하느냐는 당내 비판을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다고 한다.

실제로 격전지에서 싸우는 일부 후보들의 대통령을 향한 쓴소리는 금방 ‘극언’으로 치부되며 파묻혔다. 서울 마포을 함운경 국민의힘 후보는 대통령의 의료개혁 담화 후 “탈당하라”고 주장했다가 하루 만에 “성급했다”며 물러섰다.

부산·경남 낙동강 전선에서 격전 중인 경남 김해을 조해진 국민의힘 후보는 지난 주말 내각 총사퇴 등을 주장하며 대통령에게 “무릎 꿇으라”고 했지만 이후 침묵 중이다.

친윤석열계로 분류되는 권성동 의원은 2일 페이스북 글에서 “당내에서 ‘대통령 탈당’ ‘내각 사퇴’와 같은 극언이 나오고 있다. 강력하게 경고한다. 자중하라”고 두 사람을 저격했다. 권 의원은 “모든 선거는 유불리를 떠나 주어진 조건 위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라면서 “선거 이후의 사전포석을 염두에 두는 발언을 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했다.

당의 공천취소로 탈당 후 무소속 출마하긴 했지만 여전히 친윤으로 분류되는 장예찬 무소속 후보도 3일 CBS라디오 인터뷰에서 국민의힘 내 대통령 거리두기에 대해 “(여당 후보는) 여당 프리미엄을 잘 활용해야 한다”면서 “정부에 대해 정도 이상의 공격을 해버리면 프리미엄을 스스로 훼손하는 것이다. 아무리 격전지에서 뛰더라도 자중하고 국민들에게 안정감을 줘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와 거리를 두느냐 마느냐를 놓고 일각에선 메시지 혼선도 감지된다.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부산 지역 유세에선 정부와 거리를 두는 발언을 했다가 하루 뒤 충청 지역 유세에선 “다 제 책임”이라고 한 점이 그렇다.

정권심판 민심이 얼마나 강한지를 매순간 느끼는 후보자들의 마음도 복잡하다. 최근 격전지 후보들이 당 색깔인 빨간색 점퍼를 잠시 접어두고 하얀색 점퍼를 입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선거운동원들의 빨간 색 점퍼와 구별하기 위해 하얀 색 점퍼를 입는다는 후보도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정권심판론의 거센 바람을 최대한 인물론으로 돌파하려는 몸부림이다.

야당세가 강한 수도권 지역에 출마한 국민의힘 후보는 2일 내일신문과 통화에서 “아직 빨간색 점퍼를 입고 다닌다”면서도 “명함 안 받아주는 지역주민을 보면 점퍼 색깔 때문인가 싶은 생각도 들긴 하더라”고 말했다. 한편으로는 거리두기나 차별화 시도의 실효성에 대한 회의감도 나온다.

이 후보는 “하얀색 점퍼 입는다고 야당 후보 되는 거 아니지 않냐”면서 “선거 막판으로 갈수록 유권자들의 균형심리가 발동하기를 바랄 뿐”이라고 말했다. 정권심판 또는 정권견제의 민심이 강하지만 너무 한쪽에 치우친 일방통행 국회도 원하지는 않으리라는 마지막 희망이다.

타정당들은 여당 후보들의 거리두기 전략을 경계하고 나섰다.

개혁신당 정인성 부대변인은 2일 최근 국민의힘 상황에 대해 “배가 기울면 쥐가 먼저 뛰어내리고, 세가 기울면 사람이 떠난다고 한다. 국민의힘 상황이 그렇다”면서 “급기야 한동훈 위원장은 정부의 부족한 책임이 자신한테 있는 건 아니라고 하며 선을 긋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K팝 가사를 인용해 “태양을 피하고 싶어서 아무리 달려 봐도 태양은 계속 여러분 위에 있을 것이고, 윤 대통령을 너무 잊고 싶어서 아무리 애를 써도, 아무리 애를 써도 대통령은 여러분 안에 있다”면서 “너무 애쓰지 말라. 국민들은 속지 않는다”고 말했다.

김형선 기자 egoh@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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