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사비 인상 갈등, 주택공급망 구멍

2024-04-16 13:00:01 게재

성남은행주공 3198가구 재건축사업 계약 해지 … 정부는 실효성 없는 표준계약서 대책만

공사비 인상으로 주택공급망에 구멍이 뚫렸다. 민간아파트부터 공공주택까지 공사현장이 멈춰섰지만 정부가 권장하는 표준계약서는 효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뒤늦게 정부가 재건축·재개발 속도를 높여 주택공급을 늘리겠다고 밝혔지만 공사비 갈등으로 시공계약이 해지되는 재건축 현장만 늘어나고 있다.

16일 주택정비업계에 따르면 경기 성남시 최대 재건축사업장인 은행주공아파트 재건축조합은 임시총회를 열고 GS건설·HDC현대산업개발 컨소시엄과의 시공사 선정 계약을 해지했다.

조합과 시공사 컨소시엄은 공사비를 두고 장기간 협의를 진행했지만 입장차를 좁히지 못했다. 컨소시엄은 공사비를 기존 3.3㎡ 당 445만원에서 659만원으로 인상해줄 것을 요구했다. 하지만 조합은 공사비 인상폭이 50%에 달해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한 것으로 전해졌다.

공사비 미지급으로 공사가 중단된 서울 은평구 대조동 대조1구역 주택재개발 현장 입구에 공사 중단 안내문이 걸려 있다. 연합뉴스

은행주공아파트 재건축은 성남시 중원구 은행동 일대에 39개동, 3198가구를 조성하는 초대형 정비사업이다. 2018년 입찰 당시 GS건설·HDC현대산업개발 컨소시엄이 대우건설과 경쟁 끝에 수주했지만 5년 만에 시공계약이 해지됐다. 해지금액은 GS건설과 HDC현대산업개발 각각 4185억원씩 총 8370억원이다.

이처럼 대부분 재건축사업장은 착공 직전 공사비 계약으로는 사실상 사업진행이 어려운 처지에 몰렸다. 서울 송파구 잠실진주아파트 재건축사업장은 지난해말 시공단이 조합에 3.3㎡당 공사비를 기존 660만원에서 898만원으로 증액하고 공사기간도 9.3개월 연장해 줄 것을 요구했다. 조합은 공사비로 2168억원 이상 늘어나 조합원 가구당 평균 1억~2억원의 분담금을 더 내야 한다며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내비쳤다.

공사비를 두고 조합 내 내홍을 겪던 서울 노원구 상계주공5단지재건축조합도 지난해말 GS건설과 시공계약을 해지했다. GS건설은 3.3㎡당 공사비 약 650만원을 제시하자 주민들은 추가 분담금이 과도하다며 수용하지 않았다.

정부가 재건축·재개발 속도를 높여 주택공급을 확대하겠다고 강조했지만 건설현장 분위기는 오히려 공기지연 등으로 공급일정에 차질을 빚고 있다. 공사비는 원자재 가격 오름세가 멈췄지만 금리 인상 등에 따라 상승세가 지속되고 있다.

정부는 공사비 인상에 대한 대책으로 민간 건설공사 표준계약서 개정을 내놨지만 강제성이 없는 권고 수준으로 이미 갈등이 깊어진 현장에서는 제대로 효과를 내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앞서 윤석열 대통령은 8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주재한 ‘도시주택공급 점검회의’에서 “최근 고금리, 공사비 상승 등으로 주택 공급 여건이 녹록지 않다”며 “잘못된 주택 규제를 완전히 걷어내고 주택 공급이 최대한 활성화되도록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때”라고 말했다.

김성배 기자 sb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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