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의료 질 개선
약물-만성질환 관리 부실하고 불필요한 입원 많아
개인 전담의사 부재 속 과다진료·약물 오남용 횡행 … “환자 건강권과 존엄한 노후 적극 보장해야”
우리나라 보건의료의 질은 그동안 개선돼 왔다. 하지만 높은 수준의 의료서비스를 국민들이 누리기에는 아직도 갈 길이 멀다. 의료의 질(Quality)은 ‘의료서비스가 개인과 인구집단에 바람직한 건강결과를 가져오는 정도 및 최신 의학지식에 일치하는 정도’로 흔히 풀이된다. 효과성ㆍ효율성ㆍ적합성ㆍ의학적 기술 수준 등으로 구성된다. 대기시간, 검사ㆍ진단 장비의 적절한 활용, 의사ㆍ간호사 등 의료인력 비율, 진료 후 환자의 차도, 사망률, 합병증 발생률, 재입원율 등이 평가 요소가 된다. 2023 OECD 회원국 '의료의 질' 보건의료통계에 나타난 총 7개 영역 △급성기 진료 △만성질환 입원율 △외래 약제처방 △정신보건 △환자경험 △통합의료 △생애말기돌봄 현황을 분석한 결과, 우리나라는 모든 영역에서 과거와 비교해 개선됐다. 특히 불필요한 만성질환 입원과 외래 항생제 총처방이 감소 추세를 보인다. 응급환자 대응력도 높아졌다. 하지만 아직도 개선해야 할 지점들이 있다. 더욱이 현재 정부의 지역필수의료 개혁이 중증·응급환자 위주로 추진되고 있다보니 의료의 질을 전반적으로 높이는데 보완할 부분들이 있다. OECD의 우리나라 보건의료 평가지표와 국내 전문가들의 분석과 의견을 듣었다.
16일 보건복지부와 2023 OECD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의료 질 지표는 과거와 비교해 개선된 것으로 나타난다. 특히 만성질환 입원율과 외래 항생제 총 처방량에서 계속 감소세를 보였다. 하지만 국민·환자의 건강한 삶과 질환 예방·회복을 위한 공적 영역의 대응이 보다 더 적극적으로 진행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의사·간호사 인력 부족 외 △주치의적 일차의료 미약으로 인한 약물 오남용 △행위별 수가제와 병상 수 미관리 등 경쟁 유발 환경에서 빚어지는 불필요한 입원과 과다 외래진료, 3분 진료 현상 △지역사회 연계진료와 방문진료 부실로 높은 재입원율과 존엄하지 못한 생애말기 등은 해결해야 할 과제로 거론된다.
◆75세 이상 노인 5개 넘게 약 복용 64.2% = 2023 OECD 보건의료통계에 따르면 장시간 지속형 벤조디아제핀계 약제 처방과 75세 이상 환자의 다제병용 처방 등이 OECD 평균보다 높았고 정신보건 영역의 질 수준이 OECD 평균보다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흔히 신경안정제로 알려진 벤조디아제핀계 약물은 과도한 진정 작용으로 인해 낙상 등 환자안전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가능성이 높아 주의를 요한다.
김주경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에 따르면 다제병용처방이란 성분이 다른 5개 이상의 약제를 90일 이상 또는 4회 이상 처방받은 경우를 말한다. 다제병용처방은 약물 상호작용에 의해 약효를 떨어뜨리거나 부작용을 높이고 사망률을 높이는 것 등과 상관관계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국민건강보험 자료를 이용한 다제약물 복용자의 약물 처방 현황과 기저질환 및 예후에 관한 연구’에서는 65세 이상 노인이 5개 이상 약물을 복용하면 1~4개의 약물을 복용할 경우에 비해 입원 위험이 18%, 사망위험이 25% 증가하는 것으로 분석했다.
김 조사관은 “일반적으로는 만성질환자나 노인이 다제약물복용자일 가능성이 높다. 전 세계적으로는 급속한 인구 고령화를 겪고 있는 아시아권 국가들에서 다제병용처방률이 높다"고 밝혔다.
다제약물복용자의 경우 전담의사(주치의)가 환자에게 처방된 약물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중복처방을 줄이고 약물간 상호작용이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것을 미리 걸러줘야 한다. 또한 다제약물복용자에게는 꼼꼼한 복약상담지도가 요구된다. 노인주치의제도가 약제비절감 등 건강보험재정을 보호하고 약물남용 및 부작용을 줄이는 대안으로 제시되는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국민건강보험공단 자료에 의하면 2023년도 상반기에 10종 이상의 약을 60일 이상 처방 받은 만성질환자는 129만명으로 전년도 117만명에서 12만명이나 증가했다.<내일신문 3월 26일자 ‘건보공단, 다제약물관리 “필요한 약만 안전하게”'>내일신문>
2021년 기준 75세 이상 노인이 5종 이상의 약물을 복용하는 비율은 64.2%로 OECD 국가 중 3위다. OECD 평균은 50.1%다. 국내 연구 결과에 의하면 5종 이상의 약을 처방받은 노인이 적절하지 않은 약을 받을 확률은 47%로, 그렇지 않은 노인(13.8%)에 비해 높다. 10종을 초과하는 약을 복용하는 노인의 사망위험은 1.54배 입원위험은 1.45배 증가한다고 한다.
한주성 건보공단 의료이용관리실 과장은“개인적으로 약국에서 구매해 먹는 약과 건강보험 적용이 되지 않는 비급여 약까지 포함하면 더 많은 국민이 10종 이상의 약을 복용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외래 진료 횟수, OECD 최다 = 우리나라는 정신보건 영역에서, 양극성 정동장애(조울증)와 조현병 환자의 초과 사망비(일반인 사망률과의 비교치)는 각각 4.2, 4.6으로, OECD 평균(2.3, 3.5)보다 높다. 또한 정신질환자의 퇴원 후 1년 내 자살률이 인구 1000명당 7.0%로 OECD 평균(3.8%)보다 높게 나타났다.
김현수 명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중증 질환자의 지역사회 관리 및 재활의 부족이 반영된 것”이라며 “특히 퇴원 후 지역사회와의 연결이 필요하다. 퇴원 환자를 위한 병원-지역사회 연계 시스템을 재점검·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 조사관은 “급성기 입원치료 이후 퇴원한 정신질환자에게 복약관리와 외래치료를 유지할 수 있도록 하는 서비스가 연속적으로 제공돼야 한다”며 “정신과 입원치료를 거친 환자의 경우, 퇴원은 증상을 일으킨 원인이 있는 가정ㆍ일터ㆍ인간관계 등이 그대로 있는 환경으로 되돌아가는 것이 된다. 추가적인 중재가 없으면 재발하기 쉽다”고 지적했다.
만성질환 입원율 영역에서 천식 및 만성폐색성폐질환 입원율(인구 10만 명당 99.7건)과 울혈성 심부전 입원율(인구 10만 명당 79.1건)은 OECD 평균(천식 및 만성폐색성폐질환 129.1건, 울혈성 심부전 205.6건)보다 적었으나, 당뇨병 입원율은 인구 10만 명당 196.1건으로 OECD 평균(102.4건)보다 많았다.
임종한 인하대의대 교수는 “천식과 만성폐쇄성폐질환, 울혈성 심부전의 관리는 잘 이뤄지는 편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고혈압 혹은 당뇨의 조절률은 낮은 편이다. 특히나 당뇨 유병률은 계속 증가되고 당뇨로 인한 입원율도 높은 편이다. 당뇨 등 인구집단에서 유병률도 높은 흔한 질환에 대해 일차의료로 사전 예방 등 체계적인 관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 조사관은 “우리나라 만성질환 관리체계에 개선이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지표가 당뇨병 입원율이다. 우리나라 당뇨병 입원율은 OECD 평균보다 훨씬 많다. 당뇨병 관리의 목표는 장기간에 걸쳐 '당뇨병성 합병증을 예방'하는 것으로 의원급 의료기관에서 환자가 식이요법ㆍ운동요법ㆍ약물요법을 병행할 수 있도록 지도하고, 혈당ㆍ혈압을 스스로 측정해 관리하도록 도와줘야 한다"고 말했다.
우리나라는 국민 1인당 연간 의사 외래 진료 횟수가 15.7회(2021년)로 OECD 최고다. OECD 회원국 평균 5.9회의 약 2.6배에 달함에도 불구하고 당뇨병 입원율이 회원국 평균치의 두 배 가까이 된다는 것은 일차 의료의 질 개선이 필요하다는 것을 방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3분 진료 고질적 문제 여전 = 급성기 진료영역에서 급성기 진료의 대표적인 질환인 급성심근경색증 30일 치명률은 8.4%로 매년 지속적으로 개선됐다. 하지만 OECD 평균(7.0%)보다 높았다. 반면, 허혈성 뇌졸중 30일 치명률은 3.3%로 OECD 국가(평균 7.9%) 중 네 번째로 낮았다.
정형준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위원장은 “'30일 치명률'은 급성기 치료 이후 회복기기로 넘어가는 시점까지의 생존율을 말하는 것으로 최초 치료시점(골든타임)이 가장 중요한 요인으로 작동한다. 심근경색 치명률 개선은 응급 중재적 시술역량 등의 향상으로 볼 수 있으나 여전히 주요선진국에 비해 접근성이 떨어진다는 방증이 해석된다”고 말했다.
정 위원장은 뇌경색 지표는 중등도를 보정하지 않아 심근경색증과 다른 결과가 나오는게 아닌지 의문을 제기했다. 실제 의료의질 관리를 위해서는 지역 연령별 구체적 데이터가 필요하다.
환자경험 영역에서 외래 진료를 받은 경험이 있는 환자 중에서 의사의 진료시간이 충분했다는 응답은 81.4%로 OECD 평균 수준(82.2%)이었다. 의사가 이해하기 쉽게 설명했다고 응답한 비율은 88.0%로 OECD 평균(90.6%)보다 소폭 낮았다. 또한, 환자가 진료·치료 결정 과정에 참여한 경험이 있다고 응답한 비율은 89.2%로 OECD 평균(83.6%)에 비해 높았다.
안기종 한국환자단체연합회 대표는 “우리나라에서는 알권리와 자기결정권이 환자의 권리로 의료법령에 명시적으로 규정하고 있고 환자의 권리 보호에 대한 요구도 더 커지고 있다”며 “특히, 환자가 치료결정 과정에 참여한 경험에 있어 OECD 평균에 비해 높다는 사실은 우리나라에서도 환자의 권리가 형식적 수준에서는 보장되고 있다는 것을 반증한다”고 말했다.
다만 안 대표는 “진료시간이나 쉬운 설명에 있어서는 OECD 평균에 비해 낮게 나왔는데, 이는 우리나라 외래 진료의 고질적 문제인 3분진료 관행 때문으로 추정된다”고 덧붙였다.
생애말기돌봄 영역은 사망 전 적절한 완화의료를 제공하고 환자와 가족의 신체적, 심리적 고통을 덜어주는 측면에서 간접적인 측정지표인 사망자 중 의료기관에서 사망한 비율로 의료의 질 수준을 평가한다. 사망자 중 의료기관에서 사망한 비율은 69.9%로 OECD 국가(평균 49.1%) 중 가장 높은 수준이었다.
장숙랑 중앙대 적십자간호대학장은 “병원 임종 비율이 높은 것은 생애말기 의료, 간호와 돌봄이 연계된 '적절한 재가 서비스가 부재'하기 때문"이라며 "임종을 병원에서 맞는 것은 환자와 가족이 선택한 것이 아니다. 내몰렸다고 보는 게 맞다”고 말했다. 장 학장은 “편치 않고 안락하지도 않게 설계된 병원 환경에서 굳이 마지막 임종을 맞이하려는 이유가 무엇일까 생각해 보자. 질지표를 단순히 수치의 높아지고 낮아짐으로 해석하기 보다 수치로 표현된 우리의 삶과 죽음의 질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규철 기자 gckim1026@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