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에 전세계 부동산자산 ‘빨간불’

2024-04-17 13:00:07 게재

영국 이코노미스트 “최악의 경우 글로벌 부동산 25조달러 위험노출”

지난해 여름 이탈리아 북부 밀라노와 파르마 토리노 베네치아에 지름 19㎝에 달하는 우박이 쏟아졌다. 수많은 주택의 창문이 깨지고, 태양광패널이 부서지고, 자동차가 찌그러졌다. 이 재해로 보험업계는 48억달러의 보험금을 지급했다.

하지만 보험업계는 놀라지 않았다. 기후변화로 인한 사고가 흔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2000~2009년 10년 동안 10억달러(현재가치) 이상의 피해를 입힌 뇌우는 단 3차례에 불과했다. 2010~2019년엔 10건이 발생했다. 2020년부터 현재까지는 이미 6건이 발생했다. 재보험사 ‘스위스리’에 따르면 그같이 심각한 폭풍은 자연재해로 인한 보험업계 비용의 1/4 이상을 차지한다. 유럽에서는 지난 3년 동안 심각한 폭풍으로 연평균 50억달러의 손실이 발생했다.

기후변화는 전세계 곳곳에 막대한 재산피해를 입힌다. 항상 사람들이 예상하는 장소나 방식으로 발생하는 것도 아니다. 허리케인이나 산불 홍수가 점점 더 빈번하고 심각해지지만 일상적인 피해도 증가하고 있다.

영국 이코노미스트 최신호에 따르면 런던에서는 여름철 폭염으로 도시 대부분을 지탱하는 지반이 건조해지면서 예상치 못한 침하가 발생해 주택소유주들이 막대한 피해를 입고 있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도 비슷한 침하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오래된 수많은 건물이 습지 토양에 나무더미를 깔아 지어진 경우가 많다. 여름철 장기간의 건조한 날씨로 수위가 낮아지고 말뚝이 말라 공기에 노출되고 있다. 말뚝이 썩어 건물이 기울어지고 있다. 운이 나쁜 주택소유주는 수리 비용만 10만유로(약 1억5000만원)를 지불해야 한다.

영국·네덜란드, 지반침하 리스크

결국 부동산 소유주들이 막대한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 금융지수를 산출하는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네셔널(MSCI)은 향후 25년 동안 기후변화로 인한 재산 피해와 탄소배출량 감축을 위한 투자 비용이 기관투자자들의 포트폴리오에 포함된 주택가치의 약 1/10에 달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코노미스트지는 “일반 주택에 이를 적용한다면 전세계는 최악의 경우 약 25조달러의 타격을 입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 막대한 비용은 개인뿐 아니라 금융시스템에도 심각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부동산은 전세계 자산의 약 2/3를 차지한다.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자산군이다.

하지만 위험 규모가 갑자기 커지고 대출자와 대출기관 모두 수많은 거래를 뒷받침하는 부동산 담보가 가치가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 금융시장에 가격재조정의 물결이 일 것이다. 주택소유주들이 구제금융을 요구하면서 정부 재정도 영향을 받을 수 있다. 기후변화는 다음번 글로벌 부동산 폭락을 촉발할 수도 있다.

현재 기후변화의 위험은 집값에 제대로 반영되지 않고 있다. 학술지 네이처에 실린 연구에 따르면, 홍수 증가로 인한 예상손실을 고려하면 미국 주택가치는 1210억~2370억달러 하락한다. 많은 구매자와 판매자가 이러한 위험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2018년 ‘도시경제학저널’에 발표된 한 연구에 따르면 2012년 대홍수를 일으킨 허리케인 샌디 이후 뉴욕의 홍수범람원에 위치한 주택가격은 인근 지역에 비해 8%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캘리포니아 산불 위험지역에 있는 주택가격은 인근 주택보다 4% 정도 낮았다.

기후변화가 부동산에 미치는 위험은 서서히 드러나고 있다. 영국 런던의 많은 주택들은 노란색 벽돌로 지어졌다. 이 벽돌은 주택이 위치한 곳의 점토로 만들어졌다. 건축할 때는 편했지만 최근 큰 단점이 부각되고 있다. 영국의 온화한 겨울엔 강우량이 많다. 따뜻한 공기가 더 많은 수분을 담을 수 있기 때문이다. 점토가 비를 흡수하면 팽창한다. 더운 여름에는 다시 건조해져 땅이 수축한다.

구조엔지니어인 오웬 브루커는 팽창과 수축이 균일하다면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하지만 주변의 나무들이 수분을 빨아들이기 때문에 팽창과 수축이 균일할 수 없다. 그 결과 지반이 구부러지거나 뒤틀려 주택들에 큰 균열이 생긴다.

영국 지질조사국에 따르면 2030년 런던 주택의 2/5인 180만채가 지반침하에 취약할 것으로 예상된다. 옥스퍼드와 케임브리지와 같은 다른 인근 도시들도 위험하긴 마찬가지다. 콘크리트 기반으로 전환하는 등의 복구작업에는 일반적으로 약 1만파운드(약 1700만원)의 비용이 든다. 컨설팅기업 PwC는 2030년까지 영국 주택 보험사들이 지반침하로 인해 연간 19억파운드의 보험금을 지급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기후변화 위험은 모든 곳에서 증가하고 있다. 건조한 날씨에 천둥 번개가 잦은 유럽의 여름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미국 국립환경정보센터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에서 10억달러 이상의 피해를 입힌 자연재해가 28건 발생해 이전 기록인 22건을 넘어섰다. 지난해 필리핀과 중국 남부를 강타한 태풍 ‘독수리’는 역사상 가장 많은 피해를 입힌 태풍이었다.

하지만 위험은 고르게 분포하지 않는다. 영국중앙은행이 2022년 실시한 연구에 따르면 지구 평균기온이 산업화 이전 수준보다 3.3℃ 상승할 경우 홍수 위험이 높아져 피해를 입게 될 지역은 전체의 10%에 불과하지만 피해규모는 전체의 45%를 차지할 전망이다. 비슷한 사례로 암스테르담의 부동산 가치의 약 40%가 물리적 위험으로 사라질 수 있는 반면 도쿄의 경우 7%에 불과하다는 예측도 나왔다.

가난하면서 인구가 많은 국가들의 도시 중 상당수가 해안가에 위치해 있다. 자선단체 ‘크리스천 에이드’가 2017년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인구 기준으로 인도의 콜카타와 뭄바이, 방글라데시의 다카가 해수면 상승위험에 가장 많이 노출되어 있다. 재산가치 측면에서 가장 취약한 도시는 미국 마이애미와 뉴욕, 중국 광저우다.

미국, 납세자 돈으로 주택보험 유지

하지만 위험은 고정된 게 아니다. 이러한 위험은 대비책을 찾는 민관의 노력을 통해 줄일 수 있다. 도쿄의 위험도가 낮은 이유 중 하나는 1966년 태풍 ‘키트’로 4만2000채의 건물이 침수된 뒤 배수 및 홍수 방어시설을 획기적으로 개선했기 때문이다. 2017년 태풍 ‘란’이 비슷한 양의 비를 뿌렸을 때 침수된 건물은 35채에 불과했다.

이론적으로 주택과 주택보험 가격은 기후 관련 리스크를 반영해야 옳다. 하지만 마이애미처럼 명백히 기후변화 위험에 처한 지역에서도 가격신호가 왜곡되는 경우가 많다. 한가지 예로, 플로리다 주의회는 지난 3월에야 부동산 판매업자들에게 해당 주택이 이전에 침수된 적이 있는지 공개하도록 의무화하는 법안을 승인했다.

더 큰 문제는 플로리다의 주택보험이 실제 리스크와 비교해 너무 저렴하다는 점이다. 보험비교사이트 ‘인슈리파이’에 따르면 플로리다주의 일반 단독주택의 연평균 보험료는 올해 1만1759달러(약 1600만원)에 달한다. 하지만 최근 수년 동안 이 지역의 여러 개인주택 보험사가 파산하거나 플로리다에서 아예 철수했다.

대신 주정부가 나섰다. 민간보험사가 보장하지 않는 주택들을 주 소유 보험사인 ‘시티즌스 프라퍼티 인슈어런스 코퍼레이션’을 통해 보호하고 있다. 시티즌스는 플로리다에서 가장 큰 주택 보험사다. 현재 이 보험사의 익스포저는 4230억달러로 플로리다주 공공부채보다 훨씬 많다. 이는 시티즌스가 납세자들의 돈으로 주택소유주들에게 막대한 보조금을 지급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미국 연방정부가 인수하는 홍수보험도 비슷하다.

기후변화로 부동산 피해를 추적하는 ‘퍼스트 스트리트 재단’에 따르면 마이애미 해안가의 화려한 도시인 웨스트팜비치 주택소유주들이 허리케인과 홍수에 대비해 실제 보험료를 지불해야 할 경우 주택가치가 40% 하락할 것이라고 추산한다. 그렇게 되면 이 지역 많은 주택소유자의 자산이 갑자기 사라지게 된다. 하지만 마이애미 부동산시장은 호황을 누리고 있다. 도시 곳곳에 아파트 숲이 형성되고 있다. 케이스-실러 주택가격지수에 따르면 지난 5년 동안 마이애미 집값은 79% 급등했다.

정부가 주택소유주를 위험으로부터 보호하는 기간이 길어질수록 그 피해는 더 커질 수 있다. 마이애미처럼 기후변화에 취약한 지역은 계속 성장하고 있다. 이곳에 새로 입주한 사람들은 납세자들이 미래의 리스크 비용을 부담할 것이라고 가정한다.

이코노미스트지는 “하지만 언젠가는 기후변화로 인한 예측할 수 없는 결과가 초래되면서 그같은 가정이 더 이상 유지될 수 없음을 알게 될 것”이라며 “기후변화는 종종 먼 곳에서 절망적인 상황에 처한 사람들에게 일어나는 일로 치부된다. 하지만 부유한 나라의 많은 사람들에게도 그 비용이 청구되기 시작했다”고 지적했다.

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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