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마을금고, 분양대금 300억 손실…석연찮은 자금집행 의혹

2024-04-30 13:00:01 게재

이사회에 계약금 지급일 거짓 보고

회계법인 외부감사에서 ‘의견거절’

“충분하고 적합한 감사증거 확보 못해”

서울의 한 새마을금고가 건물 분양대금으로 300억원 가량을 지급했다가 전액 손실이 발생한 것으로 확인되면서 자금집행 과정에 의혹이 일고 있다. 건물 분양 계약이 체결되기도 전에 수십억원이 먼저 지급됐고 이사회에 계약금 지급일도 거짓으로 보고된 정황이 내일신문 취재결과 드러났다.

지난 총선 당시 대구 수성새마을금고에서 개인사업자 대출의 용도외 유용과 허위 증빙 제출, 부실 여신심사 등 위법·부당혐의가 적발된 데 이어 서울지역 새마을금고에서도 부실한 내부통제가 드러나는 등 일선 새마을금고 전반에 대한 정밀검사와 제도 개선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30일 내일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서울 시내에 위치한 A새마을금고는 올해 2월 외부감사를 맡은 회계법인으로부터 감사 의견 거절을 받았다.

회계법인은 의결거절 근거로 “금고의 유형자산 구입과 관련해 거래의 정당성과 회수가능성 등에 대해 충분하고 적합한 감사증거를 확보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또 “당기말 현재 금고의 경영진은 새마을금고중앙회로부터 업무상 횡령 및 배임혐의로 고발된 상황”이라며 “이로 인해 당기말 현재의 재무상태 및 당기의 재무성과와 현금흐름에 미치는 영향을 결정할 수 없었다”고 적시했다. 재무제표에 대한 경영진과 지배기구의 책임도 지적했다.

새마을금고 1500억 불법대출 관련 행안부 공익감사청구 참여연대 경제금융센터 소장 김종보 변호사가 지난 23일 오후 서울 종로구 감사원 앞에서 열린 새마을금고 1500억 불법대출 관련 행정안전부에 대한 공익감사청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들은 지난해 새마을금고 임원급 직원이 부동산 담보가치를 부풀려 한도 이상의 대출을 했으나 행정안전부의 관리·감독 소홀로 금융소비자 피해와 국고손실이 발생했다며 공익감사를 청구한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서대연 기자

◆부동산PF 사업장 공매 넘어가 … 분양대금 날려 = A금고는 금고 사무소를 옮기기 위해 서울 2호선 지하철 역세권 근처에 건설을 추진 중인 상가 건물을 분양받기로 했다.

A금고는 지난해 6월 이사회에 ‘유형자산 취득 승인의 건’과 상가공급계약서 관련 내용과 분양대금 납부 일정을 보고했다. 지난해 1월 1차 계약금으로 63억원이 지급됐다는 것과 2~3차 계약금, 1차 중도금과 연내에 잔금 141억원 등 모두 418억원을 납부하겠다는 내용이다.

하지만 내일신문 확인결과 1차 계약금은 2022년 12월에 시행을 맡은 B사가 아닌 제3의 업체인 C사로 입금됐다. 지난해 7월 이사회에 보고한 문건에는 그동안 277억원이 지급됐고, 6차 분양대금 29억원이 지급될 예정이라고 명시했다. 모두 306억원이다. 연내에 추가로 111억원 가량을 지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지난해 A금고의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A금고 재무제표에는 건설 중인 자산 항목에 306억원 지급된 것으로 표시돼 있다. A금고는 6차 분양대금까지 모두 306억원을 시행사 등에 지급한 것이다.

해당 PF사업장 부지의 등기부등본에 따르면 토지 소유주였던 D씨는 2022년 2월 코리아신탁주식회사에 해당 부지의 신탁을 맡겼고, 올해 1월 지방자치단체 세무과는 해당 부지를 압류했다. 공매로 넘어간 부지는 900억원 가량에 매각됐으며 우선수익권을 갖고 있던 PF대주단이 공매대금을 대부분 가져갔다. A금고는 계약금과 중도금 등 분양대금으로 지급한 306억원을 전부 날린 것이다.

◆계약 체결 전에 63억원 왜 지급했나 = 시행을 맡은 B사는 저축은행과 캐피탈사 등으로부터 900억원 가량의 PF대출을 받았고 2022년말 기준 대출 규모는 1300억원 가량으로 늘었다. 대주단은 저축은행과 캐피탈사 등 13곳이다. 자본잠식 상태였던 B사는 이자상환 등 채무부담을 견디지 못했고 대주단은 해당 사업장을 공매에 넘겨 대출을 회수했다.

표면적으로는 부동산을 잘못 매입해 손실을 본 사건이지만, A금고는 정식 계약도 체결하기 전에 63억원을 먼저 지급했고 그것도 B사가 아닌 중개업체로 알려진 C사로 입금하는 등 의심스러운 정황이 있다. 토지소유주였던 D씨가 대표로 있는 2개 법인은 B사와 기타특수관계자로 PF차입금의 연대보증을 서기도 했다. D씨가 B사의 실소유주일 가능성이 높다는 추측도 나온다. D씨는 오랫동안 해당 부지의 개발을 추진해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새마을금고중앙회는 A금고 이사장 E씨와 전무를 업무상 횡령과 배임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다만 고발장에는 분양대금 300억원 손실 건은 포함되지 않았다. 중앙회가 300억원 손실을 단순한 자금 집행 과정의 문제로 넘겼을 수 있지만, 분양대금이 어디로 흘러갔는지 석연치 않다는 점에서 수사기관의 자금추적이 필요한 대목이다.

◆중앙회, A금고 이사장 횡령혐의 고발 = 새마을금고중앙회의 고발장에 따르면 E씨 등은 고액 상품권 부당 구입 및 사용(7900만원), 예산부당집행(9300만원)으로 업무상 횡령혐의를 받고 있다. 또 포상금 집행(6억7000만원) 부적정으로 업무상 배임혐의도 받고 있다. 동일인 대출한도 초과(초과금액 71억원)와 검사업무 방행 등 새마을금고법 위반혐의도 고발장에 포함됐다.

새마을금고에 대한 감독 권한은 행정안전부에 있지만 연체율 등 부실이 커지면서 감독권을 금융당국으로 이관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됐고 법안도 발의됐다. 지난해 11월 새마을금고 경영혁신자문위원회는 ‘새마을금고 경영혁신안’을 발표하면서 금융당국과 함께 상시감시와 공동검사를 벌이기로 했지만, 새마을금고에 대한 감독권은 행안부가 유지하기로 했다.

A금고 사건을 비롯해 새마을금고에서는 잇따라 위법·부정행위가 발생했고 최근 몇 년 사이에 급증한 ‘관리형토지신탁 사업비대출’은 그동안 금융당국의 부동산PF 관리대상에서 빠져있었다. 이 때문에 새마을금고도 다른 상호금융권과 마찬가지로 보다 전문화되고 강화된 감독시스템의 적용을 받을 필요가 있다.

유혜미 한양대 경제금융학부 교수는 “장기적으로 새마을금고도 금융 관련 부분이 커지고 있어서 금융당국으로 감독권한을 통합하는 게 맞는 방향”이라며 “다만 현재 금융당국이 공동검사를 진행하고 있는 만큼 상황을 지켜볼 필요가 있고, 다소 진일보한 이 같은 시스템으로도 제대로 감독·검사를 하는데 한계가 있다면 중장기적으로 감독권을 이관할 수 있는 좋은 근거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경기 기자 celli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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