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다수결 시대’로…동물국회 사라져

2024-05-03 13:00:03 게재

절대의석 민주당 독주에 몸싸움 없어

법안소위도 만장일치 원칙도 무너져

2019년 몸싸움으로 여야 37명 기소

고성 항의, 집단 퇴장, 로텐더홀 규탄대회. 2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채상병 특검법을 처리하기 위한 의사일정 변경 동의안을 표결에 부치겠다는 김진표 국회의장의 발언 이후 소수여당인 국민의힘 의원들이 보인 반대 표시들이다.

논쟁하는 의장과 여야 원내대표 2일 국회 본회의에서 ‘해병대 채 상병 사망사건 수사외압 의혹 특별검사법’ 상정을 두고 김진표 국회의장과 국민의힘 윤재옥 원내대표(오른쪽), 민주당 홍익표 원내대표(가운데)가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주형 기자

의사일정 변경 동의안을 상정하기 전에 국회의장은 여야 원내대표를 단상에 불러놓고는 ‘채상병 특검법 처리’의 불가피성을 설명했고 여당의 윤재옥 원내대표는 잠시 반발하기도 했지만 이미 입장이 정해진 상황에서 뒤돌아 나올 수밖에 없었다.

김 의장이 “의사일정 변경동의안에 대해 표결하겠다”고 하자 국민의힘 의원들이 앉은 자리에서 고성을 쏟아냈고 이어 전원 퇴장했다. 계획된 수순이었다. 민주당 등 야권 의원들과 김웅 국민의힘 의원만 남은 채 ‘의사일정 변경 동의안’과 ‘채상병 특검법’이 연이어 통과됐다. 곧바로 밖으로 나간 국민의힘 의원들은 로텐더홀에 모여 준비해놓은 피켓을 들고 야당의 일방통행을 규탄하고 거부권 행사를 건의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 의장은 채상법 특검법을 처리하면서 “법안이 부의된 날로부터 60일 이내에 상정되지 않으면 그 기간이 지난 후 처음 개의되는 본회의에 상정돼야 한다”면서 “21대 국회가 5월 29일까지이므로 (부의) 60일 이후 (안건 처리)를 기다릴 수 없는 특수한 상황”이라고 했다. “국회법이 안건 신속처리 제도를 도입한 취지에 비춰볼 때 이 안건은 21대 국회 임기 내에 어떠한 절차를 거치든지 마무리해야 되기 때문에 여러 가지로 고려한 끝에 오늘 의사일정 변경동의안건을 표결처리하도록 하겠다”고도 했다. ‘법 절차와 취지’를 고려한 결정이라는 설명이었다.

채상병 특검법은 지난해 9월에 발의됐다. 상임위 처리가 어려워지면서 신속처리안건(패스트트랙)으로 지정해 지난달 3일에 본회의에 자동 부의됐다.

소수여당이 다수당의 법안통과를 몸으로 막아서거나 의사봉을 빼앗는 등의 ‘물리적 행동’은 좀처럼 나타나지 않고 있다. 본회의장 뿐만 아니라 법안소위나 상임위에서도 마찬가지다. 특히 “법안소위는 만장일치제”라는 암묵적인 ‘관례’가 사실상 깨졌다. 소수 여당은 표결에 참여하지 않고 비판 성명을 내거나 참여한 후 반대표를 던지는 게 전부였다. 지난해 7월 민주유공자법(민주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률안)이 정무위 법안소위에서 민주당 소속 소위원장 주도로 통과시키려고 하자 국민의힘 의원들은 단체 퇴장했다. 그러고는 국회 소통관으로 이동해 기자회견을 열고 민주당의 독주를 “날치기”라며 비판했다. 이 회의는 비공개로 진행됐다. 같은 해 2월 노란봉투법을 처리하기 위한 환노위 고용노동법안소위 역시 민주당 소속 김영진 위원장 주도로 표결에 부쳐졌고 소위 위원 8명 가운데 5명 찬성, 3명 반대로 가결했다.

170석 이상의 의석을 확보한 민주당은 22대 국회에서도 법안소위-상임위-법사위-본회의로 연결되는 의사결정과정에서 철저하게 ‘다수결 원칙’으로 밀고 나갈 생각이다. 특히 21대 국회에서 반면교사를 삼아 민주당은 체계자구심사를 이유로 문지기 역할을 해온 법사위원장 자리를 반드시 가져와 ‘입법 고속도로’의 장애물을 없애겠다는 의지가 강하다. 만약 민주당이 법사위원장 자리를 가져가면 절대과반을 갖고 있는 민주당에 남아있는 걸림돌은 ‘안건조정위’인데 이것 역시 조국혁신당뿐만 아니라 같이 위성정당을 꾸렸던 진보당, 사회민주당, 기본소득당 등 비교섭단체가 있어 쉽게 뛰어넘을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국회 사무처 관계자는 “국회 선진화법을 만들고 2019년 사태가 있은 후엔 몸싸움이 거의 사라진 모습”이라며 “충분히 논의하고 심의해야 하지만 안됐을 경우엔 다수결로 가는 분위기”라고 했다.

2014년에 만들어진 국회선진화법인 국회법 제166조는 ‘국회의 회의를 방해할 목적으로 회의장이나 그 부근에서 폭행, 체포 감금, 협박, 주거침입 퇴거불응, 재물손괴의 폭력행위를 하거나 이러한 행위로 의원의 회의장 출입 또는 공무 집행을 방해하면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2019년 4월엔 선거법 개정안,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법, 검경수사권 조정관련 법안의 신속처리대상안건 지정을 앞두고 당시 민주당, 바른미래당, 민주평화당, 정의당 등 진보진영 4당에 맞서 한국당(현 국민의힘)은 몸싸움, 욕설, 감금, 집기파손, 쇠지렛대(빠루) 등 물리력을 동원했다. 이로 인해 여야간 고소고발이 난무했고 2020년 1월에 기소됐다. 한국당쪽은 27명, 민주당 쪽은 10명 등 37명에 대한 1심 재판이 진행 중이다.

국민의힘 핵심관계자는 “(몸 싸움 등 대응은)법 위반, 국회선진화법 위반”이라며 “국민정서에도 (몸으로 법안 처리를 막는 것은) 안 맞다”고 했다.

민주당 핵심관계자는 “국민여론이 충분히 심의한 다음에는 다수결로라도 처리하는 쪽으로 가 야한다는 것”이라며 “국민적 의혹이 많고 민생과 연결된 법안의 경우엔 22대에서도 다수결로 처리해 나갈 것”이라고 했다. 홍익표 민주당 원내대표 역시 지난 1일 KBS1라디오 뉴스레터K와의 인터뷰에서 “민주당이 소수당이 될 수도 있겠지만 충분한 논의를 한 이후에도 결론이 나지 않으면 다수결 원칙에 따라 처리해야 한다”며 “쟁점이 되고 합의가 안 되면 처리할 수 없게 된다면 무조건 반대만 하면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된다”고 했다.

박준규·김형선 기자 jkpark@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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