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사기특별법 통과돼도 시행 혼란
개정 한달 후부터 효력 발생 … 정부 주택도시기금 투입 계획 없고, HUG는 채권 회수에 부정적
전세사기 특별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 한달 뒤부터 효력이 발생하지만 정부와 여당은 개정안 시행에 따른 대책을 마련하지 않고 있어 시행 초기부터 혼란이 예상된다.
8일 국토교통부 등에 따르면 ‘전세사기피해자 지원 및 주거안정에 관한 특별법’ 개정안은 28일 국회 본회의에 부의될 예정이다. 국회는 앞서 2일 특별법 개정안 본회의 부의를 투표에 부친 결과 가 176표, 부 90표, 무효 2표로 가결됐다. 의석 과반을 차지하고 있는 야권이 추진하는 개정안은 이날 본회의에서 통과될 것으로 보인다.
개정안 핵심은 공공이 전세사기 피해자를 먼저 구제하고 비용은 나중에 회수하는 ‘선 구제, 후 회수’를 도입하는 것이다. 전세사기 피해자가 전세보증금 반환채권 매수를 요청하면 공공기관이 그 가치를 평가해 매입하는 방식이다. 공공은 임대인에게 구상권을 청구하거나 주택을 매각해 자금을 회수하도록 했다.
개정안 통과가 확실시되고 있는데도 정부는 대책을 수립하지 않고 있어 논란이 확산하고 있다. 개정안에 따르면 피해자 지원은 주택도시기금을 통해 우선 시행돼야 한다. 주택도시기금은 청약통장과 채권으로 조성된다. 국토교통부는 전세사기 피해자를 3만6000명, 평균 전세보증금을 1억4000만원으로 보고 재원이 최소 3조~4조원이 필요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향후 피해 사례가 추가 발생할 경우 재원은 더 들어간다.
하지만 법안이 통과되면 하반기부터 당장 투입돼야 할 구제 비용이 마련되지 않은 상태다. 국토교통부는 올해 기금운용계획에 이를 반영하지 않았다. 법안이 28일 통과될 경우 당장 6월 28일부터 피해자 구제 작업이 시작된다.
국토부는 개정안에 반대하기 때문에 통과되지도 않은 법령을 위해 기금마련 등을 준비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이장원 국토교통부 전세사기피해지원단 피해지원총괄과장은 ‘전세사기 피해지원을 위한 주택도시보증공사(HUG) 역할 토론회’에서 “전세사기 특별법 개정안이 현행대로 국회를 통과할 경우 재원 조달, 행정적 준비, 피해자 보증금 반환채권 매입가격의 공정성 논란 등으로 시행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면서 “청약통장과 국민주택채권 발행을 통해 조성하고 국민에게 돌려줘야 하는 돈인 주택도시기금을 회수 불가능한 채권매입에 사용하는 게 적절한지 숙의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전세보증금 반환채권 가치 평가 등 실무를 담당하는 HUG도 채권을 얼마나 회수할지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지 못하고 있다. HUG가 확보한 후순위 채권을 회수하지 못할 경우 향후 재원이 얼마나 들어가는지 등에 대한 장기 로드맵도 부실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HUG측은 “사실상 후순위 채권을 매입해 이를 회수할 수 있을지 예측하기 어렵다”고 전했다.
전세사기·깡통전세 문제 해결을 위한 시민사회대책위원회는 임차보증금 반환채권 매입에 수조원대 재원이 소요된다는 정부 예상과 달리 5850억원 정도면 충분하다는 주장을 내놓았다. 대책위는 피해자 수 3만명 가운데 후순위 임차인이면서 최우선 변제 대상이 아닌 이들을 50%로 가정해 이런 수치를 제시했다.
김성배 기자 sbkim@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