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비 미흡한 지속가능성 공시기준 ①주요 내용 또 4개월 후로 연기

시행시기·대상…의무공시 전환 계획 모두 빠져

2024-05-09 13:00:40 게재

KSSB, 8월까지 4개월간 의견수렴 후 최종안 마련 계획

미국, 기후공시 의무화 … 2025년부터 국내 기업 영향권

최근 지속가능한 성장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면서 유럽연합(EU), 미국, 일본 등 전 세계 주요 국가들은 지속가능성 공시기준을 제정 및 시행하고 있으며 관련 공시제도 수립을 추진 중이다. 이에 발맞춰 한국회계기준원 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KSSB)도 지난달 30일 국내 지속가능성 공시기준의 공개초안을 발표했다. 하지만 여전히 공시 시행 시기가 제시되지 않고, 공시 대상 및 의무공시 전환에 대한 내용 등도 모두 빠져있다. 이에 업계와 학계, 기업들조차 공시를 위한 제도적 준비가 미흡하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KSSB가 발표한 공시기준 초안과 글로벌 주요 국가들의 지속가능성 공시기준 동향을 살펴보면서 글로벌 ESG 규제 강화에 우리 기업이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국내 지속가능성 공시기준 제정 방향과 내용을 3회에 걸쳐 살펴본다. <편집자 주>

한국회계기준원 KSSB(한국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가 ‘지속가능성 공시기준 공개초안’을 발표했다.하지만 기업들도 궁금해 하는 공시 시행 시기와 대상 의무공시 전환 계획 등은 모두 빠져있다. KSSB는 기업에게 과도한 부담을 주지 않도록 여러 완화 방안을 고려했다며 8월 말까지 4개월간 의견수렴 후 최종안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전문가들은 가장 중요한 내용 결정을 또 4개월 뒤로 미뤘다며 글로벌 주요 국가들의 빠른 흐름에 비해 우리나라는 대응이 너무 늦다고 비판했다. 실제 미국의 경우 지난 3월 기후공시를 의무화했다. 국내 기업들은 2025년부터 당장 영향권에 들어간다.

◆“공시 일정 조속히 확정해야” = ESG 데이터 분석기관 서스틴베스트가 8일 오후 대한상공회의서에서 개최한 ‘재무중대성과 지속가능성 공시’ 세미나에서는 최근 KSSB가 공개한 ‘지속가능성 공시기준 초안’에 대한 비판이 잇따랐다.

이날 행사를 주최한 류영재 서스틴베스트 대표는 “각종 계획과 로드맵만 무성한 가운데 아직도 지속가능성 공시를 시행하지 않고 있는 우리나라는 글로벌 경쟁력을 상실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서유석 한국금융투자협회장은 축사를 통해 “지속가능성 공시의무화 시기를 빠르게 결정해 기업과 시장 혼란을 최소화해야 한다”며 “ESG 공시는 윤리적 개념의 선택이 아니라 이제는 기업과 경제성장의 필수 요소”라고 강조했다.

이남우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 회장 또한 “지속가능성 공시 기준을 정확하게 세분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기업 또한 공시가 법제화돼야 빠르게 움직일 수 있으므로, 기업 규모별로 적용될 공시 일정을 조속히 확정하는 게 중요하다는 지적이다.

이왕겸 미래에셋자산운용 책임투자전략 센터장은 “기후공시의 핵심요소 중 스코프3가 측정하기 어렵고 준비기간이 필요하다는 점은 동의한다”면서도 “계속 의무화하지 않거나 지연할 부분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이 센터장은 이어 “다른 지표와 마찬가지로 불확실성을 전제하고 공시의 질에 대해서도 함께 제시해 정보이용자가 감안할 수 있게 하면서 우선 공시를 시작하는 게 필요하다”며 “경영진이 얼마나 책임을 갖고 있나 보상체계와 관련 있는지, 거버넌스는 어떤지 등 정성적인 부분이 유용한 정보가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기업들 또한 의무화 일정과 보고 대상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은 빠졌다고 지적했다. 기업 실무자들은 기준도 중요하지만, 구체적인 일정과 대상이 나와야 의무 공시를 준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기후공시 먼저 … 시점은 미정 = KSSB가 지난달 30일 공개한 공시기준 초안을 살펴보면 핵심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 번째는 '기후 공시'를 먼저 시작한다는 내용이다. ‘기후 관련 공시사항’ 초안은 기후변화가 기업에 미치는 잠재적인 위험과 기회에 대한 정보 공시를 요구하고 있다. KSSB는 기후가 다른 지속가능성 관련 주제보다 정량화가 더 용이해 기업의 부담이 상대적으로 낮다고 설명했다. 나머지 주제는 선택적으로 공시하면 된다.

두 번째는 보고 대상이다. 공시 기준은 ISSB에 기반한 만큼 재무제표의 보고기업과 동일한 보고기업(연결실체)을 대상으로 한다. 공시 시점도 재무제표가 포함된 사업보고서 공시와 같은 시기에 진행해야 한다고 기재했다.

스코프3의 온실가스 배출량 공시에 대한 의무화 여부와 시기는 발표하지 않았다. KSSB는 관계부처 협의를 거쳐 이를 결정할 예정이다.

KSSB는 그동안 자산 2조 이상 코스피 상장사(242개사)를 산업별로 구분해 총 21회 간담회를 진행하며 공시기준(안)의 기업 수용가능성에 대해 논의했다. 이후에도 이해관계자 의견을 지속적으로 청취해 하반기에 나올 최종안에 반영할 예정이다.

◆미 SEC, 3월 의무공시 채택 = 한편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는 지난 3월 기후변화 관련 정보 공시 의무화를 강행한다고 밝혔다.

기후 공시 기준은 미국 내 모든 상장사에 기후 리스크와 관련한 재무적 영향 및 온실가스배출량 등 기후변화 관련 정보 공시를 의무화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2021년 기후변화 대응 정책의 일환으로 논의를 시작한 기후공시 기준은 지난 2022년 초안이 발표된 바 있다. 이후 찬반 논란이 지속됐지만 SEC는 강한 의지를 갖고 의무공시를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모습이다.

주요 공시 항목을 살펴보면 재무제표 주석에 기재하는 사항의 경우 재무 영향 및 지출 효과, 재무적 추론 및 기회 식별 등이며 정기보고서 및 증권신고서에 기재하는 사항으로는 기후변화 대응(개요 및 목적, 공개 규정, 위험 및 기회, 전략 및 사업모델, 거버넌스, 위험관리, 목표 및 공개 등), 온실가스 직간접 배출량(스코프 1·2, 검증)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에 따라 미국에 상장한 국내 주요 기업은 이르면 2025년부터 규칙의 영향권에 들어갈 것으로 보인다. 지금까지는 지속가능경영 보고서 등 기후변화에 대한 공시는 기업의 자율적 판단에 의해 이루어졌지만 이제 규칙이 시행되면 의무적으로 공시해야 한다.

김영숙 기자 kys@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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