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산 아웃소싱 늘리는 독일 기업들

2024-05-14 13:00:45 게재

비용 절감 이유로 폴란드 등지로 니어쇼어링

올해 2월 주문 감소와 비용 상승으로 타격을 입은 독일 고급 가전제품 제조업체 밀레는 생산시설의 상당 부분을 폴란드로 이전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는 독일 내에서 경쟁력 상실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사례 중 하나로 자주 언급되고 있다.

프랑스 일간 르몽드는 13일 “‘메이드 인 독일’의 상징인 밀레는 유명한 가정용 세탁기의 독일 내 생산을 포기하고 있다. 125년 역사의 가족 소유 기업에서 일하는 2700여명의 노동자들이 이에 따른 영향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전했다.

밀레에 앞서 보쉬와 ZF, 콘티넨탈 등 독일 대표적 대기업들이 자국 내 수천개의 일자리를 줄이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이 때문에 독일의 많은 중소기업들이 위협을 느끼고 있다.

독일 금속노조 IG메탈이 지난 3월 말 2500명의 조합원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소속기업의 약 50%가 ‘국내사업장에 대한 투자에 너무 소극적’이라고 응답했다.

IG메탈은 “기업들이 오늘날의 도전에 적극적으로 대처하는 대신 점점 더 입지와 고용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고 말했다. 독일상공회의소의 3월 연구에 따르면 해외에 투자하는 기업의 35%가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서라는 이유를 들었다.

독일 Ifo연구소는 지난달 “가장 우려되는 2개 주요 부문은 에너지집약적 산업과 자동차산업”이라고 지적했다.

이 연구소 산업경제·신기술센터 소장인 올리버 팔크는 “에너지 가격과 함께 자동차산업은 전기화·디지털화 전환이라는 거대한 격변에 직면해 있다. 이는 많은 기업이 생산 구조조정을 통해 비용을 절감하려고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국내투자 부족은 독일 산업현대화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독일 은행 KfW 통계에 따르면 독일 전체 투자의 55%를 차지하는 기업 지출은 1990년대보다 훨씬 낮은 수준으로, 지난 10년 동안 정체된 상태다. 이달 초 발표된 EY 지표에 따르면, 독일에 대한 외국인직접투자(FDI)는 지난 7년 동안 35% 감소했다. 이는 10년래 최저 수준이다.

오스트리아 빈 소재 WIFO경제연구소의 가브리엘 펠버마이어 소장은 “물론 독일의 투자 감소에는 경제 상황, 고금리와 관련된 경기순환적 요인이 있다. 하지만 인구 고령화, 노동자 부족, 에너지 공급, 인프라 재편, 관료주의 부담 등 구조적 요소도 있다”며 “이는 불확실성을 야기하며 투자에 독이 된다”고 말했다. 독일산업연맹(BDI)은 지난 2년을 ‘잃어버린 2년’이라고 표현했다.

독일기업들은 미국이나 중국 프랑스 영국, 일부 동유럽 국가들로 빠져나가고 있다. 특히 폴란드로 향하는 기업들이 많다. 2020년 이후 독일의 대 폴란드 FDI는 410억유로로 3배 늘었다.

폴란드는 기업들에게 매력적이다. 지난 20년 동안 폴란드의 경제성장률은 유럽 평균을 상회했다. 2022년 폴란드 성장률은 4.9%에 달했다. 지난해엔 잠시 주춤했지만 올해는 EU 경기부양책에 따른 자금지원으로 국내총생산이 약 2.3%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폴란드 비스툴라대학 경제학 교수이자 독일-폴란드 관계 전문가인 세바스티안 플로시엔니크는 “인건비는 독일보다 3배 저렴하다. 게다가 대부분의 우크라이나 난민들이 이곳에서 일하고 있다. 그리고 많은 투자자들은 폴란드의 행정절차가 독일보다 덜 복잡하고 시간도 덜 걸린다고 여긴다”며 “폴란드의 강점이 극명하게 드러나면서 더욱 강력한 역동성을 창출할 것”이라고 말했다.

르몽드에 따르면 폴란드는 특히 과학 과목의 높은 교육수준 덕분에 고급 엔지니어와 프로그래머를 양성하고 있다. 최근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에서 폴란드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을 상회한 것은 물론 독일보다 높은 순위를 차지했다. 바르샤바 동양학센터(OSW) 연구원 콘라드 포플라프스키는 “오랫동안 독일 기업들은 폴란드를 주로 저비용 국가로 인식했지만, 이제 이러한 이미지가 바뀌고 있다. 투자자들은 폴란드가 고부가가치 제품을 개발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다”고 말했다.

WIFO경제연구소 펠버마이어 소장은 ‘니어쇼어링(생산시설을 인접국가로 이전)’이 유럽 단일시장의 통합에 기여할 것이라고 본다. 그는 “향후 15년 동안 유럽의 성장은 어디에서 이뤄질까. 확실히 중국이나 미국에서 비롯한 성장은 줄어들 것”이라며 “유럽인들은 자체적인 성장에 더 집중해야 한다. 이를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단일시장을 대대적으로 개혁하고, 국경을 넘는 인프라에 투자하고, 아직 표준화되지 않은 규제를 표준화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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