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0만명 머무는 바다생활권 활력 키워 어촌소멸 막는다

2024-05-17 13:00:14 게재

도시형·지역형·어촌어항기반 등 테마별 경제·생활거점으로

1억9100만㎡ 국·공유지 활용 ‘어촌형 기회발전특구’ 도입

서울시 4배 면적 마을어장 면허·심사 평가 … 임대제도 활성화

어촌정책이 진화하고 있다. 어업을 중심으로 한 지역에서 배후 연안도시까지 포함한 바다생활권으로 공간이 넓어졌고, 정책담당도 수산정책실을 넘어 해양수산부 전체로 확장됐다.

정부는 지난 13일 경제관계장관회의에서 해양수산부가 어촌 소멸위기를 극복하고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겠다며 관계부처 합동으로 발표한 ‘어촌·연안 활력 제고방안’을 채택했다.

◆연안도시에서 어촌으로 출퇴근 현실 반영 = 해수부는 어촌·연안 활력제고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2월부터 4월까지 강도형 장관이 앞장서 동·서·남해안에서 세 차례 연안·어촌 현장간담회(연·어·톡)를 열고 현장 어촌주민과 수산업 종사자, 연안경제인 등의 의견을 수렴했다.

강도형 해양수산부 장관이 어촌연안활성화 방안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 해양수산부 제공

강 장관은 “어촌·연안 활력제고방안은 본격적인 인구감소 시대에 진입한 상황에서 어촌이 직면한 소멸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새로운 정책방향을 담았다”며 “해양수산부 전체 실·국이 함께 만들었다”고 말했다.

해수부가 새롭게 내놓은 정책은 수산업과 어촌에 국한된 정책범위를 넘어 어촌과 연안을 연계한 ‘바다생활권’을 중심으로 경제·생활거점부터 일자리창출 정주여건개선까지 종합적으로 개선하는 것이다.

해수부는 소멸위기가 계속되는 어촌상황의 반전을 도모하고, 해양레저·관광을 위해 연안을 찾는 국민이 많은 점을 고려해 어촌과 연안을 연결하는 바다생활권을 도입했다. 해수부는 통신망 정보를 빅데이터로 분석(2022년, 한국해양수산개발원)한 결과 어촌과 배후 연안도시에서 밤 12시부터 새벽 6시까지 머무는 인구를 390만명으로 파악하고, 이들이 어촌과 연안에 ‘실제로 거주’하는 것으로 추정했다.

강 장관은 “어촌현장에서 만난 어업인과 주민들은 어촌에서 살지 않고 (연안도시의) 30분 정도 거리에 있는 읍·면·동에서 출퇴근한다고 말했다”며 “어촌공간만 봐서는 안되고 어촌과 연안을 같이 묶어서 가야 한다는 것을 현장을 돌며 확인했다”고 밝혔다.

연안관리법에 따르면 연안은 연안해역과 연안육역으로 구분된다. 연안해역은 바닷가와 바다로 이루어진 지역이며, 연안육역은 무인도서와 연안해역의 육지 쪽 경계선으로부터 500m(항만, 국가어항, 산업단지의 경우 1000m) 이내의 육지지역이다.

연안을 접하고 있는 기초자치단체는 74개로 전국 기초단체 228개 중 32.4%에 이른다.

◆네 가지 추진전략 = 어촌·연안 활력제고방안은 ‘풍요롭게 살 수 있고, 즐겁게 찾고 싶은 바다생활권을 통한 민생경제활력 제고’를 비전으로 네 가지 전략으로 추진한다. 어촌뉴딜300(2019~2022년), 어촌신활력증진사업(2023~22027년)에도 불구하고 속도가 빨라지는 어촌고령화, 어가인구 감소 등 어촌소멸현상을 극복하기 위해 내놓았다.

인구감소 시대에 접어든 우리나라에서 어가인구 감소와 어촌 고령화는 더욱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해수부에 따르면 어가인구는 2018년 12만명에서 지난해 8만7000명으로 27.5% 줄어 같은 기간 231만명에서 208만명으로 9.9% 줄어든 농가인구보다 2.7배 빨리 줄어들고 있다. 어촌 고령화율도 지난해 48%로 전국 평균 18.2%보다 2.6배 높다.

전국 228개 시·군·구 중 89개가 인구감소지역으로 지정(행정안전부, 2021년)됐는데, 어촌·연안이 위치한 74개 시·군·구 중 31개가 해당한다.

해수부는 우선 테마별 바다생활권을 경제·생활거점으로 확대·강화하기로 했다.

내년부터 어촌신활력증진사업을 개편해 민간투자 규모와 연계한 재정 차등지원 체계로 운영하는 등 어촌·어항을 기반으로 한 바다생활권은 민간투자를 확대한다.

19곳 어촌·어항지역에 있는 1억9100만㎡(5800만평) 국·공유지를 활용해 기업을 유치하는 ‘어촌형 기회발전 특구’ 도입도 검토하고 있다. 2027년까지 25개소에 진행할 예정인 어촌신활력증진사업을 활용하는 방안도 검토대상이다.

지금까지 어촌신활력증진사업을 진행한 10곳에서 유치한 민간투자는 4조원 규모다.

부산 인천과 같은 도시형 바다생활권은 해양수산 융복합 기능을 강화한다. 놀거리, 쉴거리 등을 통합적으로 제공하는 복합 해양레저관광도시를 관계기관과 협의해 추진할 계획이다.

지역형 바다생활권은 내년까지 지자체 발전방향에 맟춘 특화전략을 마련하고 △어촌·연안 지역 인구감소지역(31개소) 우대 △바다생활권 개선을 위한 '지역발전투자협약' 발굴 등도 추진한다.

두번째 전략은 수산업 혁신과 일자리 창출로 돈이 되는 바다생활권을 만드는 방안이다.

어선어업은 2027년까지 규제를 절반으로 혁파하면서 디지털 전환을 추진하고, 양식업은 2700ha 규모 김 양식장 신규 개발을 포함 새로운 양식장 개발로 일자리를 창출한다. 스마트·자동화를 통해 도시에서도 원격으로 양식장 관리를 할 수 있도록 개편할 방침이다.

전국 2049개 어촌계 어장자원(24만ha, 서울시 4배)을 효율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마을어장은 면허·심사 평가제를 전격 도입하고, 임대제도를 활성화한다. 어촌 진입장벽 완화를 위해 △어선은행 도입 검토 △어선·양식장 임대 지원사업 확대 △신규인력 유치 어촌계에 대한 혜택 부여 등도 추진한다.

경남 남해군 '이어' 어촌체험마을에서 관광객들이 갯벌체험을 하고 있다. 사진 한국어촌어항공단 제공

어촌연안 관광을 연계해 찾고 싶은 바다생활권을 만드는 전략도 추진한다. 해녀 갯벌 등 체험형 콘텐츠를 확대하고 전국 132개 어촌체험휴양마을에 도장찍기 여행(스탬프 투어)을 도입한다. 숙소도 호텔급으로 개선한다. 해양치유센터(5개소) 프로그램 개발, 국가해양생태공원 조성, 반려해변(149개소) 활성화 등 바다쉼터와 서핑, 스쿠버다이빙을 즐길 수 있는 해양레저거점을 확대(7개→8개)하고 어촌관광을 연계하기로 했다.

관계부처 협업을 통해 정주여건을 개선, 살기 좋은 바다생활권 만들기도 추진한다. 인구감소지역에 적용되는 '세컨드 홈' 세제혜택과 연계한 오션뷰 별장 활성화, 주거와 수산업 일자리를 함께 제공하는 '청년귀어종합타운' 조성을 검토하고, 국토교통부 행정안전부 등 8개 부처 협업을 통해 주택단지와 생활인프라를 연계하는 지역활력타운도 차질없이 만들기로 했다.

230개 섬·도서지역을 찾아가는 어촌복지 버스와 비대면 진료 서비스를 도입하고, 교육발전특구(교육부)와 연계한 지역인재 정주 유인체계 구축, 여성어업인 건강검진 등 복지체계도 준비한다. 관심있는 국민이 귀어촌 정보를 편리하게 접할 수 있도록 귀어촌 정착정보 통합검색시스템도 정비하기로 했다.

◆연안도시·산업단지 기후재해대응 빠졌다 = 해수부는 어촌과 연안을 연결한 바다생활권이라는 개념으로 정책공간을 확장했지만 연안도시와 연안산업단지를 포함하지 못했다. 도시는 행정안전부와 지자체, 산업단지는 산업통상자원부 소관이지만 '연안'이라는 공간특성에 맞춘 정책은 사각지대에 있다. 연안도시와 산업정책, 기후재해 대응이 대표적이다. 주거정책과 산업정책도 바다와 접한 연안이라는 공간특성과 결합할 필요성은 커지고 있다.

연안도시가 속해있는 연안 지자체의 경제 부문에서 해양수산 경제가 차지하는 비중은 적지 않다.

한국해양수산개발원(KMI)이 지난 1월 발표한 '연안도시의 쇠퇴와 대응방안 연구'에 따르면 2019년 기준 전체 해양수산 관련 기업 중 연안 지자체에 입지하고 있는 기업은 8만7669개소로 전체의 88% 비중이다. 전체 해양수산 기업 매출액 265조6000억원 중 연안 지자체 기업 비중은 54.5%인 144조7000억원에 이른다.

해수부에 따르면 우리나라 연안해역 해수온도는 지난 50년간 1.35℃ 상승하여 전 세계 평균 해수온 상승보다 2배 이상 높다. 최근 10년간 연평균 해수면 상승 속도는 3.80㎜에서 4.27㎜로 10% 이상 증가했다. 해양의 기후변화가 가속화되는 모습이다.

국토 면적의 32.3%를 차지하는 연안지역에서 발생한 자연재해 피해 복구비는 지난 20년간 전체 국토 재해 복구비의 89%를 차지할 만큼 피해 정도가 크다.

연안도시는 기후변화로 인한 해수면·해수온도 상승과 태풍 등 기후재해 영향을 직접 받는 1차 피해지역이다. KMI는 보고서에서 “연안재해 증가는 결국 연안도시에서의 삶의 안전성을 위협하게 되어 정주기피 현상을 유발하게 되고 정주환경의 매력도를 저하시켜 인구 유입을 저해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고 지적했다.

경남지역 도시 중 자연재해 피해규모는 2018년 기준 거제시가 63억9300만원으로 가장 크고, 통영이 16억7000만원으로 두번째다. 모두 바다에 접한 연안도시다. 군산은 13억3300만원으로 전북 연안 피해 13억8600만원의 96.2%를 차지했다.

연안 산업단지나 항만이 기후재해에 노출돼 있고, 대응책이 시급하다는 것은 태풍 힌남노와 매미에 파괴된 포항제철과 부산항에서도 확인됐다.

2022년 9월 6일 우리나라 동남부에 불어온 슈퍼태풍급 '힌남노'로 하천이 넘쳐 포항제철은 1968년 창사 이래 처음으로 물에 잠겼다. 2023년 1월 19일까지 135일간 조업중단을 했다. 산업통상자원부가 2022년 11월 중간보고에서 추산한 매출손실은 포항제철 3조400억원, 포항제철 납품기업 2500억원이었다. 기후재해로 하루에 550억원 규모의 손실을 봤다.

2003년 태풍 매미로 부산항 북항 안벽 크레인 11기가 전복·이탈해 부두가 마비된 경험을 겪은 후 부산항만공사는 매년 태풍을 앞두고 시설점검에 비상이 걸린다.

힌남노가 부산항에 상륙했을 때 중심기압은 955hPa로 매미 때의 954hPa과 비슷했고 만조 때에 맞춰 상륙하는 최악의 기상 상황이었고, 부산항은 초비상이었다.

해수부는 해양 기후변화에 따라 연안재해가 복합적이고 광범위하게 발생하고, 발생 위험성도 증가하는 추세를 고려해 한국형 연안재해 대응사업을 기획했지만 예산당국의 벽을 넘지 못했다.

정연근 기자 ygju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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