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레스타인 국가 인정 놓고 EU 균열

2024-05-23 13:00:01 게재

아일랜드 노르웨이 스페인은 인정공식화 … 독일 프랑스 폴란드는 공개석상서 이견

요나스 가르 스퇴레 노르웨이 총리가 22일(현지시간) 오슬로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오는 28일부터 팔레스타인을 국가로 인정한다는 방침을 밝히고 있다. 로이터통신은 노르웨이뿐 아니라 아일랜드와 스페인도 팔레스타인을 국가로 인정하기로 했다고 전했다. 로이터=연합뉴스
팔레스타인의 국가 인정 문제를 두고 유럽연합(EU)이 분열하고 있다. 22일(현지시간) 노르웨이, 아일랜드, 스페인이 팔레스타인을 국가로 인정한다고 공식 선언했지만, ‘바이마르 3각동맹’을 형성한 독일, 프랑스, 폴란드는 이날 공개석상에서 이견을 노출했다. 가자지구 전쟁을 끝낼 유일한 해결책으로 일컬어지는 ‘두 국가 해법’에 대해 서로 다른 접근을 하고 있는 셈이다.

노르웨이 등 3개국 총리는 이날 각자 기자회견을 통해 1967년 제3차 중동전쟁 이전 경계를 기준으로 팔레스타인을 국가로 공식 인정키로 했다.

요나스 가르 스퇴레 노르웨이 총리는 28일부로 팔레스타인을 정식 국가로 인정한다면서 이번 조치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평화에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또 “수만명이 죽거나 다친 전쟁 와중에 우리는 이스라엘인과 팔레스타인 주민 모두에게 안전한 조국을 제공할 수 있는 한 가지, 즉 서로가 평화롭게 공존하는 두 국가 해법은 살려야 한다”고 설명했다.

사이먼 해리스 아일랜드 총리도 이날 기자회견에서 “오늘 아일랜드와 노르웨이, 스페인은 팔레스타인을 국가로 인정하기로 발표한다”며 “우리는 각각 이 결정을 유효화하기 위해 필요한 국가별 조처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나는 더 많은 국가가 몇 주 안에 이 중요한 걸음에 동참할 것으로 확신한다”고 기대했다.

페드로 산체스 스페인 총리도 의회 연설을 통해 “스페인 내각이 28일 팔레스타인 국가 인정을 승인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반면 같은 날 독일, 프랑스, 폴란드 외무장관은 독일 바이마르에서 회담한 뒤 가진 공동 기자회견에서 팔레스타인의 국가 인정 문제를 두고 이견을 노출했다.

아날레나 베어보크 독일 외무장관은 “우리가 겪고 있는 이 끔찍한 상황을 해결하려면 상징적 인정 아닌 정치적 해결책이 필요하다”며 “단순히 국가 인정만으로 평화를 가져올 수 있다면 전 세계 누구도, 어느 정치인도 주저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라도스와프 시코르스키 폴란드 외무장관은 “장기적이고 안정적인 해법이 필요하다고 믿는 유럽연합 고위 대표와 다른 나라들의 노력을 지지한다”며 긍정적 입장을 밝혔다.

폴란드는 팔레스타인을 이미 국가로 인정할 뿐 아니라 양국 수반이 서로 방문할 만큼 긴밀히 교류하는 반면 이스라엘과는 나치의 홀로코스트(유대인 대량학살)를 둘러싼 역사 인식 문제로 외교 갈등을 겪은 데다 지난달 이스라엘군의 오폭으로 자국민이 희생돼 껄끄러운 관계다.

스테판 세주르네 프랑스 외무장관은 “(팔레스타인 국가 인정이) 지역 분쟁의 외교적 해결에 기여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프랑스는 분쟁의 정치적 해결을 위해 인정이 필요하다고 여러 차례 밝혔지만, 지금은 때가 아니다”라고 부정적 의견을 냈다.

유럽연합(EU)에서는 폴란드와 불가리아·체코·헝가리·스웨덴 등 동부·북부 유럽 9개 회원국이 이미 팔레스타인을 국가로 인정하고 있으며 이번에 노르웨이 등 3개국이 추가로 인정키로 했다. 또 슬로베니아와 몰타도 두 국가 해법을 지지하며 팔레스타인 국가 인정을 승인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유엔 총회도 지난 10일 팔레스타인이 유엔 헌장에 따라 정회원국으로 가입할 수 있는 자격을 충분히 갖췄다면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에 팔레스타인의 정회원국 가입에 대한 긍정적 재고를 권고하는 결의를 채택했다.

이처럼 팔레스타인 국가 인정을 놓고 EU 국가들 사이에 이견이 커지자 호세프 보렐 EU 외교·안보 고위 대표는 이날 오후 엑스(X·옛 트위터)에 글을 올려 공감대를 찾을 것을 촉구했다. 그는 “공동 외교와 안보 정책의 틀 안에서 모든 회원국과 계속 협력해 두 국가 해법에 기반한 공동 입장을 촉진하겠다”고 적었다.

EU 국가들의 이 같은 움직임에 대해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강력 비판했다. 네타냐후 총리는 이날 영상 메시지를 통해 “팔레스타인을 국가로 인정한 것은 테러에 대한 보상”이라며 “서안의 팔레스타인 주민 중 80%가 지난해 10월 7일의 끔찍한 학살을 지지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악의 세력에 나라를 줘서는 안 된다. 그 나라는 테러 국가가 될 것이며, 10월 7일 학살을 반복하게 될 것”이라며 “우리는 이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정재철 기자 jcju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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