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택환의 유럽 톺아보기

유럽 부자심리학자가 본 '벼락부자들이 잘 사는 법'

2024-05-23 13:00:01 게재

오동운 공수처장 후보자는 청문회에서 “땅을 증여하면서 증여세를 절감하기 위해 딸에게 돈을 준 것에 대해 사죄한다”고 말했다. 박근혜정권 때 김용준 국무총리 후보, 현 정부에서 이균용 대법원장 후보 등 수많은 고위공직후보자들이 자녀들에서 편법 불법으로 재산을 증여해 낙마했다.

또한 최근 언론들은 ‘한예슬 강남 빌딩 팔아 시세차익 36억원’ ‘황정음 신사동 빌딩 시세차익 50억원’ 등 연예인들이 부동산 투자를 통해 부자가 된 것을 연일 보도하고 있다. MC 장성규는 부동산투기를 ‘자본주의가 낳은 괴물’이라면서 스스로 ‘자낳괴’가 되었다고 고백했다. 어느 주간지는 ‘돈 많은 아버지가 빨리 죽었으면’하는 기사제목을 달 정도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부자 되세요’라는 괴물이 우리 사회에 광풍을 발휘하고 있다.

큰돈 물려받으면 오히려 독이 돼

부모로부터 일확천금을 물려받거나 부동산투기 등 벼락부자가 되었을 때 어떤 일이 생길까? 행복할까, 불행할까?

세계적인 부자심리학자 토마스 투르엔 교수는 스위스의 고급지 노이에 취리히 차이퉁(NZZ)과 인터뷰에서 “스스로 땀과 노력에 의해 부를 창출하지 못하고 부유한 환경에서 생활하면 삶에 대한 욕망, 즉 무언가를 성취하려는 용기와 집착을 박탈당하게 된다”는 비극을 설명한다. 그는 오스트리아 비엔나의 지그문트 프로이트대학교에서 부자문화·부자심리학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다. 전세계 수많은 부자 및 자녀들과 인터뷰했고, 큰돈이 인간정신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연구하고 있다.

그는 또 “돈 많은 부자 자녀들은 비판능력이 부족하고 부모만큼 선경지명이 없다”고 지적한다. 그 원인에 대해 프랑스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는 ‘궁핍하지 않으니 필요성이 생길 수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독일 사회철학자 막스 베버가 말한 하늘이 준 ‘천직(天職)’으로서 성실하게 땀 흘려 일하는 직업윤리가 형성되기 어렵다는 뜻이다.

부자상속인들은 오히려 스스로 돈을 벌지 못했기 때문에 과시욕을 분출하게 된다. 그들에게 좋은 차 등 더 많은 과시는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고 행복을 느끼는 유일한 수단이 되고 있다. 슈퍼카를 몰고 고급 금시계를 차면서 창문 밖으로 보여주는 등 돈쓰는 기계로 전략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투르엔 교수는 “부자상속인들 혹은 벼락부자는 사치스러운 차로 빨리 운전하고, 교통규칙을 어기면서 남에게 입힌 피해를 무마하기 위해 유명 로펌에 의뢰한다”고 지적한다. 최근 음주운전과 뺑소니로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가수 김호중에게 적용될 수도 있다.

투르엔 교수 분석에 따르면 큰돈을 물려받은 자녀들 중 극소수만 기업가로 새로운 것을 창조해 성공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는 “너무 부유한 환경에서 생활하면 삶에 대한 실존적 탐욕인 무언가를 성취하고 싶은 집착을 빼앗기게 된다”면서 “내가 아는 거의 모든 부유한 상속인이 해당된다”고 설명한다. 부모세대만큼 역량이 없으면서 돈이 많으면, 돈은 행운이 아닌 불행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큰돈을 물려주면 저주, 즉 ‘독(毒)’이 된다는 지적이다. 이미 2500년 전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은 “자녀에게 금보다는 양심을 물려줄 것”을 호소했다.

더 큰 문제는 일확천금을 물려받거나 갑자기 큰돈을 벌면 사람 캐릭터, 즉 인성이 변하게 된다는 점이다. 많은 돈으로 사람의 사고와 행동이 바뀔 수 있다는 지적이다. 슈퍼리치는 고급 집과 차를 가지고 있지만 더 많은 돈을 늘려야 하는 스트레스를 받는다. 그 자녀들이 받을 부담과 스트레스는 더 클 수밖에 없다. 부자 상속자녀들은 비전과 능력이 있어야 한다는 부담이 더 클 수밖에 없다. 불행히도 부자 부모세대는 자녀들이 자신처럼 생활 규율과 노력의 땀을 보여줄 수 없다는 것도 잘 안다. 심리적인 갈등이 생겨나고 부자부모와 상속자들 간 관계가 좋지 않게 된다. 큰돈을 물려주고도 사이가 나빠진다.

풀무원(주) 창업자이자 ‘웰다잉(잘죽기)’ 운동을 하는 원혜영 대표는 “유언장을 쓰고, 재산을 사회에 기부할 것”을 주문한다. 그렇지 않으면 자녀들이 재산을 두고 골육상쟁으로 치닫기 때문이다. 민주당 원내대표를 지낸 그는 자신의 풀무원주식 지분 전체를 사회에 기부했다.

부모 패턴 따르지 않아야 길 보여

그럼 부자부모들과 상속자녀들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 투르엔 교수는 두가지를 강조한다. 먼저 부자상속인은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갖지 말고 부모 패턴을 따르지 말 것을 주문한다. 유럽에서 유행하는 ‘잘 하지 마’다. 부모 기준에 부합하지 말고 과거 패턴에서 벗어나라는 것이다.

또한 부자부모들은 돈보다 상속인을 ‘사랑하라’고 조언한다. 이를 통해 자녀가 새로운 자아성취를 위해 그 무언가를 만들고 싶은 욕망의 힘을 얻을 수 있다. 과거 부의 형성과 4차산업혁명 시대 기회와 틈새시장은 확연히 다르다. 피땀 어린 노력 없이 정상적인 성공이 불가능하다는 것이 세상 진리다.

아이러니하게 한국사회에서 ‘부자 되세요’ 열풍 뒷면에서 또 다른 바람이 불고 있다. 독일의 철학자 쇼펜하우어 사상의 열풍이다. 그는 ‘많을 것을 가질수록 괴로워진다’고 말한다. 부자들은 부를 행복의 절대조건으로 생각하지만 삶의 가치를 물질로 간주하면 비극이 시작된다. ‘과유불급(過猶不及)’ 격언과 일맥상통하고 법정스님의 ‘무소유’ 행복과도 연결된다.

벼락부자나 부자상속인이 큰돈을 어떻게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할까? 자본주의 강국인 유럽과 미국에서 나타난 세가지 유형을 들 수 있다. 첫째, 부모의 돈을 사회에 기부해 재단을 설립하는 자녀다. 필자가 유학하던 1980~1990년 초 독일에서 부자상속인들이 큰돈을 사회에 환원해 수많은 국제 재단을 설립했다. 제3세계 여성해방재단, 아시아재단 등이다.

둘째, 사회적 약자들을 위해 의미 있는 무언가를 하는 고귀한 부자다. 돈은 은행에 있는 숫자에 불과하다. 이민자를 위해 독일어 교육을, 소외된 사람들 일자리를 창출하는 비전프로젝트 등에 투자한다.

셋째, 미국 오마하의 ‘현인’으로 칭송받는 워런 버핏 회장처럼 전 재산을 사회에 기부하는 부자다. 버핏 회장은 필자와의 인터뷰에서 “우리 공동체에 태어나지 않고 가난한 국가에서 태어났다면 시장 모퉁이에서 사과를 팔고 있었을 것”이라면서 “나의 부는 공동체 재산”이라고 말했다. 그의 자녀들은 아버지가 부자인지 대학 가서 알았다고 한다. 그는 자녀에게 ‘돈이 아닌 능력을 물려주는 것’이라 말했다. ‘물고기를 잡아주는 것보다 물고기 잡는 법’을 전수하라는 격언과 같다.

우리나라 부자들의 봉사와 자선이 그립다

우리 사회에는 부자가 전 재산을 기부하거나 큰돈의 유산을 사회에 환원해 공익을 위한 사례가 거의 없다. 가톨릭 프란치스코수도회 관구장을 지낸 윤종일 신부님은 ‘더불어 살아가는 영성’이 약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부자라도 자신이 쓸 수 있는 돈은 한계가 있다. 노벨문학상을 받은 독일의 문학가 토마스 만은 “시민사회에서 1세대는 짐승처럼 돈을 벌었고, 2세대는 그 돈으로 권력을 잡으려고 노력한다. 돈과 권력의 무상함을 깨닫고 3세대는 문학·예술의 길로 갔고, 4세대는 봉사와 자선을 최고 가치로 알고 실천한다”고 말했다. 우리사회 부자들의 봉사와 자선을 찾기 힘들다. 최고 부자동네인 서울 강남의 출산율이 가장 낮고 ‘유모차보다 개모차(개가 타는 차)가 많다’고 한다.

경북출신 한 정치인이 ‘소는 누가 키우나’ 말한 적이 있다. 초저출산으로 소멸하는 대한민국에 아이들을 잘 키워야 희망이 있다. 경북 이철우 지사는 ‘저출생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현재 전국 335만마리 소 중 압도적으로 많은 73만마리를 사육하는 경북에서 아이들을 잘 키우는 ‘신문명운동’을 기대한다. ‘소 많은’ 부자 누군가 정주영 회장처럼 소떼를 몰고 경북도청으로 향하는 꿈을 꿔 본다.

김택환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