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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두개 국가’ 주장과 글로벌 코리아

2024-06-14 13:00:01 게재

비교적 해외일정이 잦은 필자는 전공 탓으로 인해 지구촌에서 한국의 위상이 어떠한지 민감하게 지켜보곤 한다. ‘위상’은 다분히 추상적인 개념이지만 그래도 외국인들과의 대화 한 마디에서, 해외신문에 실리는 한국 관련 뉴스의 행간에서, 심지어 고급 호텔에 비치된 가전제품의 국적을 통해서도 많은 것을 느낄 수 있다.

한국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졌다는 점을 확연히 느낀 건 이명박정부 때였다. 당시 집권 5년간 45개 국가들과 자유무역협정(FTA)을 맺었던 성과도 있었고, 그 시절에는 관공서 어디를 들어가도 온통 ‘글로벌 코리아’라는 구호가 눈에 들어왔었다. 이명박정부의 과감한 세계화로 인한 문제점도 있었지만 선진국에 발을 들여놓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한 건 분명히 그때였다.

‘두개 국가론’ 대응외교 더욱 위중해져

올해가 시작되면서 우리는 매우 낯선 상황을 마주하게 됐다. 한반도 분단 역사에서 새로운 기록을 남겼다고 해도 과언은 아닌데, 북한이 소위 ‘두개 국가론’을 공식적으로 천명한 것이다. 물론 ‘남북한 각자 따로 살자’는 북한의 기존 속내를 모르는 바 아니지만, 어쨌든 지금까지 유지해 오던 대남 통일전선과는 전혀 다른 방향의 남북관계와 대외정책 설정을 예고한 셈이다.

만 28세의 김정은이 북한의 지도자가 된 유일한 배경은 김일성의 손자이자 김정일의 아들이었기 때문이다. 선대의 후광과 업적이 가장 중요한 정치적 자산임에도 불구하고, ‘통일사업’을 제일의 미션으로 여겼던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유훈을 포기하는 건 일견 무모해 보이기까지 한다. 그래서 북한의 ‘두개 국가’ 주장이 다른 속내를 차후에 드러내기 위한 고도의 전략이라는 전망이 많았다. 하지만 북한 최대 명절인 김일성 생일 ‘태양절’(4월 15일)을 더 이상 공식적으로 지칭하지 않는 상황을 보면서 국내외 전문가들은 ‘두개 국가’ 주장에 담긴 북한의 진심을 짐작하게 되었다.

현재 개인 전문가는 물론 다양한 연구기관에서 북한이 주장하는 두개 국가론을 해석하기 위한 노력이 진행되고 있는데 대체로 세가지 차원으로 진단하고 있다.

첫째, 한국정부의 여하한 대북 및 통일정책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겠다는 배경이 있다. 북한은 2020년 말 ‘반동사상문화배격법’을 제정할 정도로 한국 문화의 북한 내 확산에 대한 깊은 우려를 표명해 왔다. 대남 적대관계를 강화하고 서로 다른 별개 국가 논리를 내세움으로써 한국의 영향력을 새로운 차원에서 봉쇄하고, 관련한 우리 정부의 어떤 노력도 최초 단계에서부터 무력화하겠다는 의미인 것이다.

둘째, 남북한이 같은 민족이라는 상황보다 한국이 별도의 적대국가가 되는 상황에서는 논리적으로 핵무기 사용 가능성이 더 높아지는 의미를 가진다. 좀더 정확하게 설명하자면 실제 남한을 향해 핵무력을 사용하기보다는 핵무력 사용 가능성의 논리적 완결성을 정교화함으로써 결과적으로 한국과 미국의 대북한 군사력 우위에 맞서 북한 스스로 안보를 더욱 확실하게 지켜내는 억지력을 확보하게 된 것이다.

셋째, 현재의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중동 사태와 같은 국제 안보 불안정성을 활용해 동북아 안보 구조를 악화시킴으로써 북중러 연대의 토대를 더욱 굳건히 구축하고, 나아가 북한의 독자적인 외교 자율성 확보를 통해 생존공간을 더욱 넓혀나가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다.

더욱 흥미로운 사실은 북한은 오랜 침묵을 뒤로하고 지난 2월 말 이후 서방 외교관들을 북한으로 초청하는가 하면, 코로나 이후 수년간 폐쇄했던 북한의 해외 주재 외교관을 다시 개방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지난 5년간 닫혀 있었던 독일 베를린 주재 북한대사관은 최근 공식적으로 업무재개를 선언한 것으로 알려졌고, 유럽 국가들을 시작으로 북한의 외교 무대 복귀가 속속 예고되어 있다.

이런 배경에서 북한 외교관을 다시 대면하게 될 국제사회는 북한이 주장하는 ‘두개 국가론’에 대해서 더욱 궁금해 할 것이다. 동시에 그만큼 북한의 새로운 대외노선에 맞서야 하는 우리 정부의 책임과 노력의 무게도 가중되고 있다. 우리가 과거 YS시절인 1995년을 ‘세계화 원년’으로 삼듯이 북한은 올해를 북한 버전의 ‘글로벌 조선’으로 설정했다는 해석까지 가능해 보인다.

논리적 학문적 정책적 대안 시급

더욱이 이번주 들어 해외언론은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평양 방문을 공식화했다. 그리고 올 초 시점의 예상보다는 가능성이 낮아졌지만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방북 가능성 또한 점쳐지는 상황에서 북한의 통일노선 전환이 한반도를 둘러싼 동북아에 어떤 파장을 몰고 올 것인지에 대해서 그야말로 깊고 진지한 고민이 필요해 보인다.

기본적으로 필자는 동북아가 ‘신냉전’에 돌입했다는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 무엇보다도 과거 냉전기와 달리 남북한 사이의 국력격차가 너무도 큰 현실을 고려할 때 ‘냉전’이라는 의미가 가지는 ‘경쟁’적 차원의 관계설정이 더 이상 남북한 사이에 적용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냉전을 우려하는 의견에 귀를 기울일 필요는 있다. 더구나 국제안보의 불안정성이 쉽게 가라앉지 않을 현실에서 북한은 관례대로 국제안보 불안정성을 자국의 안보이익 극대화로 연결시키려는 노력에 집중할 것이기 때문에, 북한의 ‘두개 국가’ 논리가 한반도 수준을 넘어서 동북아와 국제사회에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에 대한 논리적 학문적, 그리고 정책적 대안 마련이 시급한 실정이다.

‘한미일 협력’으로 상징되는 현 정부의 외교정책은 비록 의도하지는 않았더라도 외교적 고립과 안보 위협에 직면한 북한으로 하여금 중국과 러시아에 더욱 밀착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한 점을 부인하기 어렵다. 더구나 전쟁의 와중에서 북한의 재래식 무기에 대한 러시아의 수요가 크게 증가했고, 특히 중국의 경우 ‘글로벌 사우스’ 국가들 간 연대가 강조되는 국제질서에서 더 큰 리더십을 행사하기 위한 북한의 존재 가치를 매력적으로 느꼈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북한의 ‘두개 국가’ 주장은 ‘적대관계의 극대화’를 통한 북한 외교의 자율성 증대를 목표로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물론 새로운 북중러 연대가 과거 냉전기 김일성 시기에 북한이 중국과 소련을 상대로 즐겼던 구체적인 외교 이익에 버금가는 수준에는 미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왜냐하면 지금의 북중러 연대는 과거처럼 냉전대결이라는 일종의 보호막 아래에서 전개되는 것이 아니고, 또한 북러 연대가 가지는 상황적 필요성, 그리고 중국의 대미 관계의 복잡한 상호의존성을 고려할 때 지속가능성 또한 장담키 어려운 측면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과론적으로 우리의 외교안보 환경이 더욱 복잡해지고 어려워진 점은 분명해 보인다.

한반도 논의는 ‘한국 문제’로 연결돼야

다시 ‘글로벌 코리아’ 얘기로 돌아가 보자. 독일은 유럽의 다른 경쟁 국가들보다 근대적 통일이 늦어 1871년에서야 지금의 독일이 태어났다. 주지하는 바 독일은 출범 때부터 소위 ‘대독일주의 대 소독일주의’ 논쟁을 거치면서 독일 통일과 유럽 지역 전체의 안정이 깊은 연관성을 맺게 되었다. 우리에게 ‘독일 문제(German Question)’로 알려진 이 문제는 후일 2차대전 이후 동서독 분단 과정에서, 그리고 1990년 냉전 종식 이후 독일 재통일 과정에서 번번이 수면 위로 떠오른 바 있다.

글로벌 코리아 그리고 지금 정부의 ‘글로벌 중추 국가’ 논리는 ‘한국 문제(Korean Question)’와 연결되어야 한다. 더구나 1990년의 독일 통일과 달리 한반도에서는 근대 통일 국가가 존재했던 경험이 전무하므로 한반도 통일이 동북아, 나아가 동아시아 지역 안정성과 맺게 될 연계성은 독일 사례보다 더욱 중요할 수 있다. 결과적으로 북한 및 통일문제에 대한 더욱 커진 고민과 책임감이 고스란히 우리 정부의 어깨 위에 내려앉은 셈이다.

박인휘 이화여대 교수, 국제정치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