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PF 정상화 방안' 시동 걸었지만…곳곳에 가시밭길

2024-05-27 13:00:00 게재

사업장 경·공매 놓고 갈등 불가피

은행·보험 신디케이트론 역할 제한적

“경·공매 한꺼번에 나오기 어려울 듯”

금융당국이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정상화 방안을 발표한 가운데 PF사업장에 대한 사업성 평가결과가 나오는 7월 이후부터 구조조정을 둘러싼 갈등이 본격화될 전망이다.

사업성 평가결과에 따라 경·공매 대상 PF사업장이 가려질 예정이지만 대주단 내에서 이해관계가 엇갈리는 선순위·중순위 금융회사들의 분쟁 가능성이 높고, 시행사들의 강한 반발이 예상된다. 경·공매를 통한 사업장 재구조화에 성공하더라도 사업성이 낮은 비수도권에서 PF사업이 계속될 수 있을지 불투명한 상황이다.

27일 금융당국 관계자는 “부동산PF 구조조정은 이제부터 시작”이라며 “PF사업장에 대한 사업성 평가기준을 마련했지만 이를 적용하고 시행하는 과정에서 이해관계자들의 갈등은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금융회사들 간의 입장 차이는 금융당국이 조율할 수 있지만 시행사 등 건설업계와의 갈등은 PF사업장 재구조화를 위해 반드시 해소해야 할 과제이지만 금융당국의 권한 밖의 일이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29일 건설업계 2차 간담회를 여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PF사업장에 대한 사업성 평가는 7월초 마무리될 예정이다. 사업성이 양호한 정상사업장과 사업성이 부족한 사업장에 대한 ‘옥석가리기’ 결과가 나오는 것이다. 4단계(양호 보통 유의 부실우려) 평가결과에 따라 유의·부실우려 사업장은 경·공매 등을 거쳐 재구조화 또는 정리될 예정이다. 대주단은 평가결과에 따라 PF사업장 처리 계획서를 금융당국에 제출해야 한다. 유의·부실우려 사업장으로 분류될 경우 경·공매를 놓고 대주단 내에서는 중·후순위 금융회사들의 반발이 예상된다. 낙착가율이 60~70%대로 떨어질 경우 중·후순위 금융회사들의 손실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손실 부담이 적은 선순위 금융회사들은 경·공매를 통한 사업장 정리를 원하고 있다.

대주단 내에서 처리방안이 정리되더라도 시행사들이 경·공매에 반대할 것으로 보인다. 시행사는 경·공매로 사업장이 넘어가면 그동안 투입된 사업비용과 금융비용 등을 모두 손실 처리할 수밖에 없다. 금융권 관계자는 “시행사가 한 푼도 건지지 못하고 무너질 수 있다는 점에서 격렬하게 반발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시행사가 사업 인·허가권을 넘겨주지 않고 버틸 경우 사업장 재구조화는 난항을 겪게 된다. 법적 분쟁이 벌어지면 사업 진행이 사실상 중단되는 만큼 시행사들을 설득하는 일이 큰 과제 중 하나다.

일각에서는 인·허가권을 넘겨주는 조건으로 시행사들이 ‘도장값’을 요구할 가능성이 있다는 말도 나온다. 그럴 경우 사업장 인수자의 부담이 커지고 토지 매입가격을 낮춰 사업성을 높이려는 재구조화에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

이번 부동산PF 정상화 방안이 수도권 PF사업장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만 비수도권 사업장에 대해서는 한계가 있을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부실 사업장이 경·공매를 거쳐 새로운 사업자로 넘어가면 낮은 토지대금으로 사업장을 넘겨받은 새 사업자는 그 만큼 사업성을 확보할 수 있다. 특히 수도권 사업장의 경우 전체 비용 중 토지대금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기 때문이다.

하지만 비수도권 지역은 전체 사업비 중 토지대금이 차지하는 비중이 낮아서 경·공매를 통해 가격을 낮추더라도 수도권 만큼의 사업성이 생기기 어렵다.

금융당국은 은행과 보험회사들이 조성하는 최대 5조원 규모의 ‘신디케이트론’(공동대출)이 비수도권 지역 사업장에서 역할을 해주길 바라고 있다. 신디케이트론은 경락자금대출 등을 통해 사업장을 새롭게 인수하는 시행사 등의 부담을 줄여주기 위한 금융회사들의 지원 방안이다. 시장에서 선호도가 높은 수도권에 비해 관심이 떨어지는 비수도권에 민간수요를 보강하는 마중물 역할을 신디케이트론이 해줬으면 하는 게 금융당국의 기대다.

하지만 신디케이트론을 통해 자금을 공급하는 은행·보험사들도 사업성이 높은 수도권에 공동대출을 하려고 하지 비수도권은 꺼리는 상황이어서 실제 신디케이트론의 역할이 제한적일 수 있다. 캠코가 부동산PF 정상화를 위해 1조원 규모의 펀드를 조성했지만 실제 투입은 2건에 그친 것과 같은 상황이 재연될 가능성이 있다.

금감원은 현재 은행·보험회사와 TF를 구성해 신디케이트론 공급 기준 등을 검토하고 있지만 아직 구체적인 기준을 마련하지는 못한 상태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PF사업장 재구조화 과정에서 벌어질 수 있는 여러 걸림돌로 인해서 경·공매 물건이 시장에 한꺼번에 쏟아질 가능성이 낮다”며 “시간이 오래 걸릴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경기 기자 celli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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