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찌개 말곤 약속 지키지 않는 윤 대통령

2024-05-27 13:00:37 게재

총선 직후 “국민 목소리 경청” … 김건희 여사 논란엔 ‘사과’

민심 찬성하는 특검법에 거부권 … 김 여사, 대책 없이 복귀

여당 중진 “국민, 다시 매 들 수밖에” … 야당 “항복시켜야”

4.10 총선 참패 직후 윤석열 대통령은 “국민과 소통하겠다” “국민 목소리를 경청하겠다”고 약속했다. 김건희 여사 논란에 대해선 사과했다. 하지만 윤 대통령이 이후 보여준 모습은 자신의 다짐과는 거리가 멀다는 지적이다. 여권에서도 “윤 대통령이 바뀐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면 민심은 다시 한 번 회초리를 들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대통령의 저녁 초대, 앞치마 입은 윤석열 대통령 윤석열 대통령이 24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 잔디마당에서 열린 ‘대통령의 저녁 초대’ 출입기자단 초청 만찬 간담회에서 계란말이를 만들고 있다. 연합뉴스 홍해인 기자

윤 대통령은 지난 9일 기자회견에서 “국정운영 해온 것에 대해 국민의 평가가 ‘많이 부족했다’는 것이 담긴 거라고 생각하고 있다”며 총선 참패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윤 대통령은 “더욱 소통하는 정부, 또 민생에 관해 국민의 목소리를 더욱 경청하는 정부로 바꿔야 한다는 기조 변화는 맞다고 생각한다”며 소통과 경청을 약속했다. 김 여사 명품백 논란에 대해선 “아내의 현명하지 못한 처신으로 국민께 걱정 끼친 부분에 대해 사과드린다”며 고개를 숙였다. 윤 대통령은 반성과 사과, 소통·경청을 국민 앞에서 다짐한 것이다.

하지만 윤 대통령의 이후 행보는 “약속과는 거리가 멀다”는 지적을 낳고 있다. 윤 대통령은 지난 21일 ‘채 상병 특검법’에 대해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했다. ‘채 상병 특검법’은 여론조사(엠브레인퍼블릭·케이스탯리서치·코리아리서치·한국리서치, 4월 29일~5월 1일, 전화면접 조사, 이하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에서 ‘찬성’이 67%에 달했다. ‘반대’는 19%에 머물렀다. “국민 목소리를 경청하겠다”고 약속해놓고 2주도 지나지 않아 국민이 찬성하는 특검법을 거부한 것이다. 특검법은 28일 재투표에 부쳐진다. 윤 대통령과 여당은 부결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윤 대통령은 김 여사 논란에 대해 “사과드린다”고 했지만, 김 여사는 아무 일 없다는 듯 공개행사에 모습을 드러냈다. 총선에 악영향을 우려해 지난해 12월 이후 공개행사에 나타나지 않았던 김 여사는 총선이 끝나자마자 복귀한 것. 야당이 요구한 △제2부속실 설치 △특별감찰관 임명에 대해서는 별다른 대답 없이 김 여사 복귀가 이뤄지자, 여권에서조차 “사과의 진정성이 통하겠냐”며 우려스러운 표정이다.

윤 대통령은 한술 더 떠 김 여사 관련 의혹을 수사 중인 서울중앙지검장에 자신의 검찰 측근을 앉혔다. 김 여사 수사에 ‘무언의 압력’을 행사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쏟아진 대목이다.

윤 대통령은 총선 직후 국민의힘과 대통령실에도 친윤(친윤석열)을 집중 배치했다. 당 지도부와 핵심 당직에 친윤 인사가 대거 발탁됐다. 대통령 비서실장에는 ‘고향 친구’ 정진석 의원을 앉혔다. 총선에서 낙선한 이원모 전 인사비서관을 다시 대통령실로 불렀다. 국민과 더 소통하겠다면서 자신과 국민 사이에 ‘측근 장벽’을 쌓은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윤 대통령의 반성과 달리 정부의 무능은 여전했다. 정부는 ‘국외 직접구매(직구) 금지’ 방침을 밝혔다가 여론의 거센 비판을 받자, 사흘 만에 없던 일로 했다. “경청하겠다”는 윤 대통령의 약속은 국정 현장에서는 전혀 지켜지지 않았던 것이다. 윤석열정부는 △만 5세 초등학교 입학 △주 69시간 근로시간 개편안 등 중요 정책 결정 과정에서도 여론을 듣지 않고 자기들끼리 결론을 내렸다가 낭패를 맛보았다. 윤 대통령은 그때마다 “개선하겠다”고 다짐했지만, 직구 논란에서 재확인됐듯 바뀐 건 없다는 비판이다.

여권에서도 “총선 참패에도 불구하고 (윤 대통령이) 바뀌지 않으면 더 거센 심판을 받을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국민의힘 중진의원은 26일 “(윤 대통령이) 지킨 약속이라고는 출입기자들에게 대접한 김치찌개밖에 없다”며 “총선에서 참패했는데도 (여론이 지지하는) 특검법을 거부하고, 김 여사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TV에 나오고, 검찰과 대통령실에는 내 사람 앉히고, 이러면 누구도 대통령을 신뢰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중진의원은 “국민 입장에서는 매를 댔는데, 맞은 사람이 반성하지 않는다고 판단이 들면 다시 매를 들 수밖에 없다. 아마 다음에는 정말 아프게 때릴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지난 25일 야 7당과 시민사회단체가 함께 개최한 ‘채 상병 특검법 거부 규탄 및 통과 촉구 범국민대회’에서 “투표로 심판해도 정신을 못 차리고, 반성하지 않고 역사와 국민에게 저항한다면 이제 국민의 힘으로 그들을 억압해서 항복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엄경용 기자 rabbit@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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