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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 신세계 - 전기차의 새로운 활용법

2023-05-09 11:29:37 게재
김선교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 전기공학

우리는 석탄 석유 천연가스와 같은 화석연료를 활용해 세계를 움직인다. 우리가 마시는 물과 먹는 음식부터 냉난방, 차량과 선박, 비행기를 이용한 이동은 모두 화석연료에 의존한다. 온실가스 배출의 80% 가량은 바로 에너지에서 온다. 2023년 현재, 우리가 직면한 근본적 위험인 기후위기에 벗어나기 위해서는 150년 넘게 지속·발전돼 익숙해진 에너지 체계에서 벗어나야 한다.

이러한 변화의 물결 속에 소비자의 열렬한 호응과 기대를 받고 있는 부분이 있으니 바로 전기차(EV)이다. 유명 물리학자 리처드 뮬러는 자연과학적 연구를 바탕으로 에너지에 대한 오해를 바로잡고 바람직한 에너지 정책을 제시한다는 목적으로 ‘대통령이 위한 에너지 강의’를 썼다. 그는 이 책에서 ‘전기차는 한낱 스쳐지나갈 유행’으로 바라봤다. 그러나 그의 관점은 천천히 변화하는 전통적인 에너지 산업의 속성에 갇혀있었다.

2022년 글로벌 전기차 판매량은 전체 자동차시장이 1% 감소하는 불황에도 불구하고 전년 대비 68% 성장하며 완성차 판매량 전체의 9.9%를 차지했다. 새롭게 판매되는 차량 중 10대 중 1대는 전기차다. 불과 5년 전만 하더라도 전기차가 도로에 발견하면 사진을 찍어 SNS에 올렸던 사람들도 이제는 어디에서든 볼 수 있는 전기차에 별다른 감흥을 느끼지 못한다.


현실론자든 회의론자든 전기차의 시대가 성큼성큼 다가오고 있음을 부인하기 어렵게 되었다. 운송수단의 탈탄소화 흐름 속에 가장 선명히 보이는 것이 전기차의 증가다. 풍력 태양광 등 재생에너지와 더불어 전기차가 탄력을 받아 빠르게 증가하고 있지만 기후위기 상황이 점차 심각해지고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현재의 속도는 여전히 불충분하며 더욱 빨라질 필요가 있다.

다행스럽게 이러한 변화에 대한 전망은 지난 몇년 사이 점차 낙관적으로 바뀌고 있다. 10년 전, 미국의 국립 재생에너지연구소(NREL)은 현재 가용한 기술을 바탕으로 2050년까지 미국이 생산하는 전기의 80%를 재생에너지로부터 얻을 수 있을 것이라 전망했다. 이제 NREL은 미국이 2035년까지 100% 청정에너지에 도달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고 평가한다. 전기차 역시 마찬가지다. 2030년까지 주요 선진국의 신규 승용차 중 50% 이상이 전기차가 될 것이라 바라보고 있다.

전기차를 재생에너지 저장수단으로 활용

재생에너지와 전기차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는 사실로 안도할 수는 없다. 익숙한 것에서 이탈하는 일은 새로운 문제를 일으킨다. 바람과 태양을 원천으로 전기를 만들어내는 재생에너지 역시 마찬가지다. 간단히 말해, 태양은 24시간 내내 항상 일정하게 비추는 것은 아니다. 바람 역시 항상 일정하게 불지 않는다. 이러한 재생에너지의 변동성은 간헐성 또는 불확실성으로 불린다.

간헐성은 재생에너지의 가용성이 일정하지 않고 날씨 패턴과 시간대에 따라 달라진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태양광 패널은 태양이 존재하는 낮시간에만 전기를 생산할 수 있다. 불확실성은 기본적으로 날씨를 완벽하게 예측하기 어렵기 때문에 발생하는 속성이다. 기상청 직원들도 비가 오는 날 여행을 떠난다는 농담처럼, 날씨의 변화를 원하는 시점에 정확하게 예측하기는 매우 어렵다.

기존의 석탄, 천연가스 기반의 화력발전기와 우라늄을 사용하는 원자력발전기는 일정하고 안정적인 전기 생산이 가능하다. 그러나 재생에너지가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문제는 복잡해진다. 사용자가 원하는 전기수요에 맞춰 전기를 생산하기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한가지 유망한 솔루션은 탈탄소 생태계 구축의 일환으로 재생에너지와 함께 증가하고 있는 전기차를 활용하는 데 있다. 전기차에는 상당한 양의 전기를 저장할 수 있는 대용량 배터리가 탑재되어 있다. 예를 들어 전기차 아이오닉6는 용량 77.4kWh인 배터리가 탑재되어 있는데, 이는 4인 가정이 4일 이상 쓸 수 있는 양이다. 이러한 배터리는 아직은 전기차를 이동시키는 데 사용되지만 V2G(차량 ? 전력망) 기술을 통해 전기를 저장했다가 다시 전력망에 방전할 수 있다. 이는 수요가 높거나 필요한 곳에 전기를 공급해주는 발전기 기능뿐만 아니라 재생에너지의 불안정성을 해소해주는 좋은 수단이 될 수 있다.

우리는 어디에서든 자동차를 볼 수 있다. 특히 도시에서는 사람보다 더 많은 공간을 자동차가 차지하고 있다는 느낌도 든다. 차도와 주차장, 심지어 일부 인도에서도 자동차는 멈춰있거나 움직인다. 주로 석유로 움직이는 내연기관 자동차는 움직일 때만 그 존재의 가치를 얻는다. 그러나 전기차는 재생에너지 중심의 에너지 신세계에서 전체 변화를 조율해주는 핵심적인 역할도 부여받게 된다.

전기차 양방향 충방전(V2G)의 현재와 미래

네덜란드 프로축구팀인 아약스의 홈구장인 암스테르담의 요한 크루이프 아레나에는 경기장의 태양광 및 배터리 저장 시스템을 보완하는 V2G 기술이 도입되어 있다. 축구경기나 행사가 없는 날에는 전체 전력망의 변동성을 줄여주는 주파수 응답과 같은 수익창출형 보조서비스로 시스템을 전환하지만 축구경기나 대형 행사가 열리는 날에는 양방향 전기차 충방전과 고정식 배터리가 값비싼 부하 피크(peak)를 줄이고 필요한 경우 예비전력을 공급하기 위해 대기한다. 향후에는 2400개 주차공간 중 한곳에 주차하는 방문객이 금전적 보상이나 프리미엄 주차 서비스를 받는 대가로 자신의 전기차를 활용한 V2G에 참여하는 방식의 서비스를 도입할 계획이다.

미국 캘리포니아 주의회에서는 급증하고 있는 재생에너지 문제의 해결사로 전기차를 활용하기 위해 2027년부터 모든 전기차와 충전장비가 V2G가 가능해야 한다는 법안이 논의되고 있다. 이는 전기차가 새로운 에너지 세계에서 핵심적인 기능을 해야한다는 전문가들의 의견을 반영한 것이라 볼 수 있다.

미래 자동차산업은 기후변화 대응이라는 물결 속에 자동차를 이동형 배터리이자 상품과 서비스를 공유하고 전달하는 플랫폼으로 탈바꿈하는 큰 변화의 정점에 서 있다. 2022년, 이제 대한민국의 전기차는 전체 자동차 중 1%를 넘어섰다. 전기차가 10%를 넘어 30%, 50%가 되는 미래에는 지금과 완전히 새로운 방식으로 전기차를 활용하는 일이 지극히 당연한 일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