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의 눈

'헤어질 결심'과 '외교의 시간'

2023-06-16 11:01:53 게재
지난달 100세를 맞은 국제 외교무대의 거물 헨리 키신저 전 미 국무장관은 미중 전략경쟁에 대해 크게 우려했다. 그는 언론 인터뷰를 통해 "중국이 압박을 통해 변화할 것이라거나 약화할 것으로 보는 것은 위험한 발상"이라며 "중국에 대한 무분별한 적대적 태도가 지속되면 미중간 군사적 충돌이 발생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키신저에 대한 평가는 크게 엇갈린다. 그러나 1970년대 미국 내 반대여론에도 불구하고 소련을 포용하고 중국과 수교하는 외교정책을 추구, 강대국 간의 충돌을 막으려 한 점은 널리 인정받는다.

키신저 외교의 강점은 다른 나라의 정치는 물론, 문화나 사상까지 이해하려 한 점이다. 그는 서방과 중국의 세계관이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봤다. 일례로 바둑과 체스의 차이를 언급했다. (서방의) 체스는 상대 말을 제거하는 방식으로 승리를 추구하지만, (중국의) 바둑은 상대방 돌의 힘을 줄임으로써 자신의 영역을 넓히는 방식을 추구한다고 했다.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반드시 승리해야 하는 서방에 반해 중국은 상대적 우위만으로도 만족할 수 있다는 의미다.

그런 점에서 최근 미국과 유럽연합(EU) 등 서방의 중국에 대한 표현방식이 달라졌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중국을 국제무대에서 배제하고 왕따시키는 '디커플링'이 아니라, 수위를 낮춰 위험 요인만 제거하는 '디리스킹'으로 공식화하는 모습이다. 잇따라 중국을 방문한 유럽 정상들과 미국 기업인들 행보도 같은 맥락이다.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도 18~19일 중국을 방문한다. 미 국무장관의 중국 방문은 4년 8개월만의 일이다. 커트 캠벨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인도태평양조정관은 "이것은 전략적인 전환이 아니다"면서도 "지금이 정확히 치열한 외교를 할 시간"이라고 밝혔다.

그런데 유독 윤석열정부만 다른 길을 걷고 있다. 출범 이후부터 줄곧 미국 일변도 정책을 추구하면서 중국과는 멀어지고 불편해졌다. 인도·태평양 전략, 대만 문제, 정찰풍선 등 중국이 민감하게 여기는 문제까지 언급했다.

최근 불거진 싱하이밍 주한 중국대사 발언을 둘러싼 논란도 다르지 않다. 그에 대해서는 주재국과의 우호적 관계 형성을 우선해야 하는 외교관 처신으로서는 적절치 못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불쾌할 수 있고 엄중하게 항의할 수 있다.

문제는 어디까지 끌고 갈지에 대한 전략적 판단 여부다. 정부·여당의 공세에 이어, 대통령까지 나서 구한말 조선 국정을 농단한 청나라 위안스카이(원세개)에 빗댔다. 국내 정치용으로는 시원한 한방이겠지만 국제외교 무대에서는 퇴로마저 차단한 악수라는 평가가 나온다. 진짜 '헤어질 결심'을 하는 것인지 아니면 '외교의 시간'을 가려는지 냉철하게 선택할 때다.
정재철 기자 jcju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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