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의 눈

혁신위의 인적쇄신과 민주당의 선택

2023-06-19 11:17:15 게재
민주당이 김은경 한국외대 교수를 혁신위원장으로 선임했다. 쇄신의총에서 혁신기구를 통한 쇄신방안 마련을 결의한 지 한달 만이다. 그 사이 전당대회 돈봉투 의혹을 사고 있는 국회의원의 체포동의안은 민주당 의원들 주도로 저지됐다. 온정주의와 단절해 재창당 수준의 쇄신의지를 보여주겠다는 약속이 머쓱해졌다. 민주당 내부에서 '혁신대상이 뭐냐'를 두고 갑론을박인 것을 고려하면 혁신위 운영도 순탄치 않을 전망이다.

'쇄신'은 뼈를 가루로 만들고 몸을 부순다는 뜻이다. '혁신'은 가죽을 벗겨 새롭게 한다는 말이다. 총선을 1년도 안 남긴 상황에서 불거진 돈봉투·코인 파문이 '내로남불 안한다' 수준의 선언만으로는 벗어나기 힘들다고 판단했다는 뜻이다.

민주당 혁신위가 내놓을 카드는 뭘까. 가시적 효과로는 사람을 바꾸는 것만큼 즉자적인 것도 드물다. 정치권이 시절이 바뀌어도 육참골단·읍참마속 등 무시무시한 용어를 애용하는 이유일 것이다.

인적쇄신의 정점은 이재명 대표의 거취다. 이 대표 체제로 총선을 치를지는 미지수지만 적어도 지금 물러나는 일은 없어 보인다. 온갖 비난을 무릅쓰고 보궐선거에 출마하고, 당 대표 선거에 나선 이유가 뭐겠나. 이 대표가 '버려야 얻는다'는 교훈을 모를리 없지만 당장은 현실화된 두려움이 더 크다.

민주당 안에서도 이 대표 사퇴론에 대한 피로감이 엿보인다. 의총장에서 '사퇴하라'는 요구가 '그만하라'는 야유를 받은지 꽤 됐다. 이 대표측도 사퇴 문제를 '당이 깨질 수 있다'는 구심력의 동원으로 사용한다. 그럼에도 혁신위가 이 대표의 2선후퇴 카드를 꺼낸다면 진짜 결단으로 비칠 수 있다.

현역의원 기득권 축소 카드도 가능성이 있다. 동일지역구 3선 이상 제한이나 하위 30% 컷오프 등은 이미 당내에서 논의가 됐던 사안이다. 공천룰이 현역의원에게 절대 유리하다는 비판이 이어지고 있으니 명분도 있다. 어떤 이름을 붙이느냐가 중요하다. 특히 쇄신하겠다고 선언한 민주당 입장에서는 더더욱.

비명계라 불리는 의원들의 처신이 안타까운 이유도 여기에 있다. 민주당 내부는 자의든 타의든 친명·비명계가 있고 지역구만 지키는 밭갈이계가 있다. 비명계인 박광온 원내대표가 1차 경선에서 과반을 얻은 배경에는 친명 일색의 지도부, 이견이 없는 정당운영에 대한 우려가 밭갈이계 의원들을 움직였기 때문이다.

비명계는 '이재명 사퇴' 말고 명분있는 다른 내용을 보여주지 못했다. 개혁파, 쇄신파의 이름을 얻었다면 혁신위 논의의 주도권은 확실하게 넘어왔을 것이다. 혁신위가 현역의원 인적쇄신 카드를 내밀고 비명계가 '반대파 밀어내기'라고 반발하는 모습이 아른거린다면 결과는 뻔한 것 아닌가.
이명환 기자 mha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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