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의 눈

기업이 멍들고 있다

2023-06-20 11:00:11 게재
기업들이 멍들고 있다. 어느새 자기 자본보다 부채가 많아지고, 영업활동을 통한 이익창출 능력과 현금흐름도 악화하고 있다. 초저금리로 막대한 부채를 끌어다 쓴 기업들이 경기침체가 확대될 경우 위험에 빠질 우려가 커지고 있다.

한국은행이 지난주 발표한 '2022년 기업경영분석'에 따르면, 지난해 전산업 부채비율은 102.4%로 최근 5년간 지속적으로 상승했다. 2018년(91.5%) 이후 불과 5년 만에 10.9%p가 증가했다. 차입금 의존도도 같은 기간 25.6%에서 28.2%로 늘었다. 우리 기업들이 코로나19라는 터널을 지나면서 더욱 빚에 의존한 경영을 하고 있다는 의미다.

빚을 내서 영업활동을 잘한 것도 아니다. 매출액영업이익률과 순이익률은 각각 5.3%, 5.2%로 2021년(6.8%, 7.6%)에 비해 2%p 이상 하락했다. 이자보상비율도 455.4%로 전년도(654.0%)에 비해 크게 하락했고, 특히 영업이익으로 이자도 갚지 못하는 상황을 의미하는 이자보상비율 100%미만 기업이 34.1%에서 35.1%로 늘었다. 한은은 이번 조사대상이 외부감사 적용대상 기업 3만129곳이라고 했다. 결국 1만500개 이상의 기업은 영업을 할수록 부채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악순환의 위험에 놓여 있는 셈이다.

한은에 따르면 은행권만 지난해 말 기준 1170조원의 기업대출을 가지고 있다. 전년 대비 104조원 이상 증가해 10% 가까이 늘었다. 더구나 기업대출 금리가 빠르게 늘어 부담을 증가시키고 있다. 지난 4월 기준 기업대출 금리는 잔액기준 5.2%로 2021년 4월(2.8%)에 비해 거의 두배 가까이 부담이 커졌다. 은행권이 아닌 제2 금융권의 경우 이보다 더 심각하다.

문제는 앞으로다. 기업의 안정성과 수익성 등 기본적 지표가 악화하는 가운데 앞날은 갈수록 불투명하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이미 우리나라는 장기저성장 구조"라고 말했다. 저성장이 구조화 상시화되면 가계와 기업이 감내할 고통은 예상하기 어렵지 않다.

최근 일본 주식시장이 살아나면서 거시경제와 기업실적에 주목하는 분위기가 커지고 있다. 실질과 명목GDP가 좋아지는 흐름이지만 '잃어버린 30년' 기간에도 일시적인 반등은 있었던 터여서 여전히 의심을 거두지 못한다. 하지만 최소한 개별 기업의 경쟁력에 대해서는 의심의 눈이 덜하다. 엔저 등 특수한 상황을 무시할 수 없지만, 일본 기업은 지난 30년을 버텨온 저력이 있어서다.

우리 기업이 40~50년전 기술을 배우고 자본을 끌어오면서 따라 배웠던 일본 기업이 아닌 30년 혹독한 시련을 견뎌온 그들에게 한수 배워야 할 수도 있다. '장기 저성장'을 돌파하기에 기업들이 너무 멍들고 취약해져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다.
백만호 기자 hopebaik@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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