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의 눈

농막 규제, 탁상행정의 전형

2023-06-22 11:13:17 게재
정부가 입법예고한 농지법 시행규칙의 입법절차가 중단되는 사태가 발생했다. 국민 의견을 듣기 위해 진행되는 입법예고 기간에 정부 스스로 입법안을 취소한 것이다. 사상 초유의 일이다.

정부 입법예고 기간이 끝나기도 전에 이를 먼저 중단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국민적 공분 때문이다. 오죽하면 대통령이 "신중해야 할 일"이라고 지적하고, 장관이 입법예고 중단을 직접 지시했을까. 이번 사태는 탁상행정의 전형이라 할 만하다.

농림축산식품부가 입법예고한 농지법 시행규칙 개정안은 농막의 설치와 숙식을 제한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농막은 농사를 위해 농기구를 보관하거나 잠시 휴식을 취하는 용도로 20㎡까지 설치해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다. 그런데 2021년 한국토지주택공사(LH) 전·현직 직원들의 농지 투기사건을 계기로 호화불법 농막 실태가 드러나자 정부는 농막 사용을 규제하는 농지법 시행규칙 개정을 추진했다.

그러나 정부조사에서 확인된 불법농막은 대부분 20㎡ 규정을 초과하는 데크나 주차장을 조성하는 등 미미한 수준이었다. 주변 주말농장을 하는 지인들의 농막을 보면 허름한 목조건물이나 컨테이너를 개조한 것이 대부분이다. 말 그대로 주말 영농을 위해 들렀다 하루정도 자고 다시 일하고 갈 수 있는 수준이다.

정부가 입법예고를 중단하기는 했지만 이번 사태로 농업에 대한 도시민의 접근로는 막혀 버렸다. 앞으로 어떤 농막 규제가 다시 나올지 모르는 상황에서 주말 영농을 위해 소규모 농지를 사려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경기도 남양주시의 한 토지중개업소 하 모 대표는 "주말농장용으로 농지를 샀던 사람들이 이번 사태로 대부분 매도 문의를 하고 있고, 주말농장이나 은퇴후 농촌생활을 경험해보고자 하는 사람들의 매입 문의도 아예 없다"고 전했다.

농막의 건축법상 문제는 국토교통부나 지방자치단체 몫이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오히려 농업의 저변 확대를 위해 농막 규제를 과감히 풀 필요가 있다. 단순히 농막 면적이나 사용방식에 대한 결정이 아니라 농업에 대한 철학을 고민해야 한다.

귀촌·귀농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주말농장이나 호기심으로 농사를 짓는 일에서 출발한다. 이들에게는 농촌 생활을 경험하고 꿈꿀 시간이 필요하다. 그 시간을 보낼 농막을 단순히 투기용 별장으로 인식하면 안된다. 귀농·귀촌을 위해 쏟아붓는 예산의 효과를 떨어뜨리는 일이다.

"농림축산식품부는 농업의 저변을 확대해야 할 농업정책 총괄부처이기 때문에 영농용 농막을 더 확대하도록 해야 하는데, 어찌 농막을 원천봉쇄해 농사를 희망하는 도시민이나 예비농업인의 발길을 돌려세우는가." 국민참여입법센터에 등록된 이 글이 이번 사태의 본질을 꿰뚫었다.
김성배 기자 sb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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