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의 눈

'5배 손해배상'에도 떨지 않는 이유

2023-06-29 11:01:28 게재
최근 스타트업과 중소기업의 '기술침해 근절' 호소가 이어지고 있다. 지금까지 정부는 중소기업 기술보호와 기술탈취 엄벌을 밝혀 왔다. 여러차례 대책도 내놓았다. 하지만 대기업의 기술탈취와 아이디어 도용은 여전하다.

중소벤처기업부는 지난 8일 '중소기업 기술보호 지원 강화방안'을 발표했다. 내놓은 대책은 분쟁초기부터 피해회복까지 다양했다. 그런데 첫인상은 별로 신선하지 않다. 상당수가 기존에 발표된 대책에서 많이 거론된 내용들이기 때문이다. 물론 어떤 정책이든 의지를 갖고 꾸준히 진행하는 게 중요하다.

중기부가 강조한 범부처 협력은 매우 절실하다. 기술탈취 문제는 사건해결과 정책지원 수단이 부처별로 산재해 있다. 부처별로 나뉜 법령 제도 지원사업 등을 피해기업이 정확히 파악하기는 어렵다.

아쉬운 건 지금까지 수없이 범부처 협력을 발표하고도 지켜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정부부처가 대기업 성장에 익숙해 기술탈취에 대한 문제인식이 매우 낮거나, 협력에 부정적인 부처이기주의가 원인일 것이다.

중기부는 부처 협력을 끌어낼 수 있을까. 매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방법은 대통령 의지다. 공무원들도 대통령이 기술탈취 해결 의지를 보여야 부처협력이 가능하다고 한다. 대통령 한마디에 대입수능이 바뀌지 않았는가.

특히 '징벌적 손해배상 5배 상향'은 헛구호에 불과하다. 손해배상이 기술탈취 기업에 상당한 피해를 주는 정도여야 효과가 있다. 현재는 피해액 자체가 적게 계상돼 징벌효과가 없다. 기술탈취나 아이디어 도용과 관련 있는 상생협력법 부정경쟁방지법은 △법원이 변론취지와 증거조사 결과로 손해액 인정 △합리적 금액 등을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추상적이거나 피해기업의 손해액 입증이 어렵다는 문제가 있다. 하도급법에는 아예 손해액 산정기준이 없다. 그러니 소송에 들어가면 피해액 산정을 재판부 판단에 맡기는 상황이다. 재판부가 혁신기술에 대한 전문가가 아닌 이상 피해기업 기술가치를 적정하게 판단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기술침해 기업들이 징벌적 손해배상을 두려워하지 않는 이유다.

반면 특허법에는 특허권자 생산능력범위×단위당 이익액에 초과분×합리적 실시요율을 더하는 산정방식을 두고 있다. 보완점은 있지만 다른 법보다 구체적이다. 중기부는 2025년까지 객관적인 손해액 산정기준을 마련할 계획이다.

기술탈취는 기업의 도전의식을 꺾는 행위다. '기술침해 근절'은 윤석열 대통령 공약이다. 기술침해 근절을 위한 법과 제도를 갖추는 데 노력하지 않는 장관들은 윤석열정부의 각료 자격이 없다.
김형수 기자 hs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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