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의 눈

'카르텔' 전쟁, '적폐청산'과 다르려면

2023-07-03 11:02:30 게재
지인 A씨는 지난해 이맘때 초등학생 딸과 집 근처의 한 마을공동체 구경을 갔다. 건물이 여럿이고 각종 프로그램 포스터들도 붙어 있었지만 평소 사람 구경을 하기 어려워 '어떤 곳인지' 궁금했다고 한다.

분위기가 묘했다. 한여름인데 건물들은 문을 활짝 열어둔 채 에어컨 냉방 중이었다. 한곳에 들어서자 서로 친해 보이는 사람 두세 그룹이 한가로이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그들은 A씨 부녀를 보고 갸우뚱하며 왜 왔냐고 물었다. 요리 프로그램을 체험하러 왔다고 하자 그제야 부산하게 교육을 준비하더란다. A씨는 "사람들이 체험 자체보다 내가 어떤 (정치적) 성향인지에 관심이 많아 보였다"며 "보조금 받아서 돌아가는 곳 같았는데 그 정도면 딱 봐도 눈먼 돈 아니냐"라고 했다.

A씨의 경험담이 기억난 것은 지난해 말이다. 그해 마지막 국무회의에서 노동조합 회계 투명성을 강조하던 윤석열 대통령은 "세금인 국가보조금으로 지원하는 민간단체의 경우도 마찬가지"라며 "국민의 혈세가 그들만의 이권 카르텔에 쓰여진다면 국민 여러분께서 이를 알고 용납하지 않으실 것"이라고 했다.

윤 대통령이 노조·시민사회·태양광에 이어 입시까지 '카르텔과의 전쟁'에 열심이다. 특히 '운동권'과의 접점만 있다면 어디로든 뻗어나갈 기세다.

지금까지는 적지 않은 효과를 본 것 같다. 경제도 어려운데 '혈세'가 특정 세력에게 남용됐다는 프레임은 지난 정부와 궤를 같이하던 이들에 대한 국민의 반감을 쉽게 자극했다. 조국 사태 이후 민주세력도 '기득권'으로 낙인찍힌 덕에 A씨와 같은 생각을 가진 시민이 많아졌을 것이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지난 정부가 터놓은 풀뿌리 선거운동용 '돈줄'을 다시 막았다는 물밑 해석도 나온다.

그러나 윤 대통령이 '카르텔'을 입에 올리고 확전을 거듭할수록 문재인정부의 '적폐청산'을 닮아가는 듯해 우려스럽다.

탄핵민심을 업고 출범한 문재인정권은 친일-반공-재벌-검찰 등을 구체제 주류로 규정하고 검찰 개혁, 공수처 설립, 국정원 개혁 등을 통해 전방위적인 청산·교체작업에 나섰다. 그러나 '적폐'가 남용되고 싸움이 거듭될수록 국론분열과 국민 피로가 쌓였다. 조국·LH사태 등을 거치면서 결국 '적폐청산'은 술자리 안주거리로 전락했다.

윤 대통령이 같은 전철을 밟지 않으려면 이제부터라도 '카르텔' 언급을 자제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정권 초부터 극에 달한 진영갈등으로 국민 피로도는 일찌감치 임계점에 달한 상태다. 이권 카르텔의 행태가 현 여권에서 생기지 않도록 철저한 내부 경계 역시 뒤따라야 한다.

윤 대통령도 자신의 노력이 그저 주류교체 시도에 대한 옛 기득권의 반동으로 기억되길 원치는 않을 것이다.
이재걸 기자 claritas@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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