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의 눈

지방 공무원님들 무릎이 남아나겠소?

2023-07-05 11:07:53 게재
연일 폭염이 이어지고 있다. 다행인 것은 햇볕은 뜨겁지만 그늘 아래 들어가면 시원하다. 나무가 부족한 거리에서 빈번하게 만나는 그늘막은 반갑고 고마운 존재다.

9년 전쯤 일이다. 서울 서남권 한 자치구를 방문했을 때 큰 삼거리 교통섬에서 이색적인 광경을 보았다. 하얀 천으로 된 천막이 펼쳐져 있고 신호등이 바뀌길 기다리는 보행자들이 그 아래서 햇볕을 피하고 있었다. 천막을 지탱하는 네 다리에는 모래주머니를 여럿 묶어 행여 바람에 날아가지 않도록 한 모습이었다.

단체장에게 물었다. 구와 동주민센터에서 행사 때 사용하는 천막을 주요 거리에 설치했다가 해가 저문 뒤 저녁이면 거둬들인다고 했다. 무릎을 쳤다.

어느 해 겨울 인근 자치구에서는 버스정류장에 얼기설기 엮은 투명한 비닐천막을 볼 수 있었다. 버스정류장은 지하철역과 달리 외부에 있는 만큼 차를 기다리는 주민들이 찬바람을 피해갈 수 있도록 만들었다는 얘기를 들었다. 아하! 또한번.

이후에는 여름철 햇빛을 가리는 그늘막과 겨울철 칼바람을 피할 수 있는 쉼터가 일상화됐다. 모양새도 점점 세련돼졌다. 전문업체를 거치니 그늘막 모양이 정형화됐고 거센 바람이나 태풍에도 끄덕 없도록 고정식으로 바뀌었다.

어디 그뿐이랴. 자동으로 그늘막을 펼칠 수 있게 됐고 시원한 안개(쿨링 포그)를 뿜어내 주변 기온을 몇도 낮추는가 하면 공공행정을 알리는 홍보물 기능까지 추가한 곳도 생겼다. 원격으로 조정해 거센 바람이 예보되면 자동으로 접어 사고를 미연에 예방할 수 있게 했고 보행약자인 노년층 주민들이 쉬어가도록 기둥에 작은 의자를 더한 지자체도 있다.

겨울철 바람막이만 해도 동네마다 애칭을 따로 붙이면서 발전해갔다. 버스정류장 안에 있는 의자도 온도조절이 가능해졌다. 겨울에는 따뜻하게, 여름이면 시원하게.

최근에는 두가지 기능을 더한 스마트 쉼터가 늘었다. 무더위와 찬바람을 피하는 건 물론 미세먼지와 코로나19 바이러스 등 감염병 확산에 대비해 체온을 재고 출입할 수 있게끔. 휴대전화나 컴퓨터 충전, 인근 지하철역과 버스정류장에 접근하는 차량 도착시각 등 다양한 기능이 더해졌다. 지방 공무원님들, 이러다 무릎이 남아나겠소?

지난 1일로 민선 8기가 시작된 지 만 1년이 지났다. 감염병 한가운데서 시작해 태풍과 큰 비로 단체장 취임식을 취소했고 각종 재난과 참사까지 이어지면서 여느때와는 출발이 달랐다. 하지만 1년이 지난 지금은 안정세에 접어들었으리라 생각한다.

작은 아이디어에서 시작해 전국 지자체 풍경을 바꾼 정책 경쟁을 이번에도 기대한다. 동네 지도를 바꾸는 대형 정책도 좋지만 주민들 생활을 보다 편리하게 하고 불편을 더는 생활체감형 정책 경쟁을 기대한다.
김진명 기자 jm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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