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의 눈

권위주의시대 과학 신봉은 끝났다

2023-07-07 11:04:44 게재
과학이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면서 원하든 원하지 않든 우리 일상생활은 새로운 기술의 산물들로 채워져있다. 이러한 변화에 발맞춰 시민들도 권위주의 시대와는 사뭇 다른 자세로 과학을 대한다.

과학을 소수의 특정 사람들만 논할 수 있는 영역이라 생각하며 관찰자적 자세를 견지하던 시대는 끝났다. 전문가의 영역과 역할을 존중하되 새로운 과학기술로 얻을 수 있는 혜택과 부작용에 대해 정확히 이해하려는 참여자적 자세로 탈바꿈한 지 오래다.

이런 시대적 흐름을 무시한 채 정부가 일부 전문가와 함께 일방적으로 정책을 결정하는 자세를 고수하는 건 시대착오적 발상일 수밖에 없다.

여러 정부 정책들 중 과학과 밀접한 연관이 있는 건 특히 환경 분야다. 때문에 윤석열정부 들어 과학을 강조하고 존중하는 메시지가 자주 나온다는 건 분명 환영할 만한 일이다. 한화진 환경장관에 이어 이번에 새로 취임한 임상준 환경차관도 취임사에서 과학을 수차례 언급했다.

"기후위기, 환경을 명분으로 무역장벽을 쌓고 있는 세계경제 속에서, 환경정책은 국가전략의 핵심으로 부상하고 있다. …(중략)…과학적이고 객관적인 환경정책으로 중심을 잡지 못한다면, 환경의 가치는 다른 목적을 위한 도구와 수단으로 이용당할 것이다."

임 차관의 우려처럼 과학이 악용되지 않기 위해서는 과학정신의 근본부터 짚고 넘어가야 한다. '과학혁명의 구조'로 잘 알려진 토마스 S. 쿤은 패러다임의 전환을 강조했다. 과거와 미래의 갈등 사이에 우리가 어떤 것을 선택하며, 그 비교근거를 어디에 둘지에 대해 파장이 큰 질문을 던졌다.

두 패러다임 사이의 언어가 일대일로 해석될 수 없다는 쿤의 '번역불가능성'은 과학을 단순히 미신을 타파하는 '절대적 진리'로 전락시켜서는 안된다는 점을 새삼 깨닫게 한다. 과학은 제한된 조건에서 얻어진 경험 혹은 논리적 증거를 신뢰한다.

또한 천재 한명이 과학의 발전을 일군다고 생각하는 과학자는 없을 것이다. 조금 더 멀리 내다볼 수 있게 해준, 선대과학자들이 빌려준 거인과 같은 커다란 어깨에 감사하며 이전 과학자들에게 어떤 화답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한다. 우리 사회와 마찬가지로 동료 평가나 과학 공동체의 인정을 받아야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다.

이는 방식은 다르지만 우리 사회가 어떤 논쟁적인 사항에 대해서 합의를 일궈내는 과정과 닮아있다. 과학의 실질적인 혜택을 원하는 시민들에게 정말 사심없이 대답할 수 있을지, 습관처럼 과학을 언급하는 이들에게 묻고 싶다. '과학적이고 객관적'이라는 그 판단은 누구와 함께 논의하는 것이냐고 말이다.
김아영 기자 ay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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