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시론

권력은 왜 자꾸만 닮아 가는가

2023-07-11 11:35:13 게재

극과 극은 통한다고 했던가. 지향점도, 이념적 위치도 정반대이지만 보여지는 모습은 거의 닮은꼴이다. 미래비전 부재의 리더십부터, 적폐청산과 카르텔전쟁, 실효성 없는 경제정책, 편향외교 등등이 꼭 거울에 비춘 것 같다. 문재인정권과 윤석열정권 얘기다.

'기회는 평등하게, 과정은 공정하게, 결과는 정의롭게'를 내세웠지만 끝내 구두선(口頭禪)에 그쳤던 문재인정권이나 '공정과 상식'을 기치로 정권을 교체했지만 역시 공정하지도 상식적이지도 않은 윤석열정권의 표리부동도 판박이다. 제 눈의 들보는 보지 못하고 상대 눈의 티끌만 탓하는 것조차 비슷하다.

권력운용부터 리더십 유형, 미래비전 부재까지 닮은꼴

요즘 윤석열정권을 꿰는 핵심 키워드는 아마 '카르텔과의 전쟁'일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특정 세력을 '카르텔'이라고 지목하면, 여당 의원들이 목울대를 세우고, 검찰과 감사원 국세청이 칼을 겨누는 일이 되풀이되고 있다. 애초 앞 정권과 이해관계로 얽힌 운동권 집단에게 붙였던 카르텔 딱지도 이제는 정부가 원하는 방향에 비껴나 있는 모든 대상으로 확대되고 있다. 마치 문재인정권의 '적폐청산'처럼.

촛불항쟁의 성원에 힘입어 집권한 문재인정권이 '적폐청산'을 제1과제로 내세운 것은 당연했다. 국정농단 세력 청산과 민주주의 회복이 시대적 요구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청산대상은 좁게, 기간도 빨리 끝냈어야 했다. "촛불시민의 성원을 과거 청산에만 소진할 게 아니라 미래를 여는 동력으로 삼아야 한다"는 고언을 당시 정권 담당자들은 허투루 듣고 흘렸다. 칼잡이 검사 윤석열을 서울중앙지검장으로 검찰총장으로 중용한 것도 임기 내내 '적폐청산'을 이어가겠다는 의지였을 것이다. 정권은 자신들과 엇나가는 집단에 '적폐' 딱지를 붙였다.

집권세력이 자신들의 적폐와 카르텔에는 '모르쇠'한다는 점도 빼다 박았다. 때문에 문재인정권은 '내로남불'로 낙인찍혔지만 지금 윤석열정권도 그 길을 따라가고 있다. 윤 대통령은 "우리는 반카르텔정부"라며 이권 카르텔, 기득권 카르텔의 혁파를 주장했다. 그러면 우리 사회에 가장 뿌리깊은 기득권 이권세력인 법조카르텔, '모피아'로 대표되는 관료카르텔은 혁파대상인가 아닌가.

윤 대통령은 전 정권의 태양광 정책을 비판하며 '신재생 이권 카르텔'을 겨냥했다. 그렇다면 그동안 원전정책을 부추겨 이권을 챙겨온 '원자력카르텔(원자력마피아)'은 또 어떤가. 지금의 오염수 논란을 만든 후쿠시마 재앙에 대해 "가장 큰 책임은 '원자력마을(原子力村, 원자력마피아)'에 있다"고 한 간 나오토(菅直人) 당시 일본총리의 질타는 그냥 남의 일일뿐인가.

권력의 좌표찍기만 닮은 게 아니다. 윤 대통령이 내세우는 외교정책도 마찬가지다. 윤 대통령은 문재인정권더러 "북한만 쳐다보고 중국으로부터 무시당했다"며 편향성을 비판했지만, 지금 정권의 미국 일본 편향성은 그 이상이다.

시민사회 변호사 출신과 특수부 검사 출신이라는 겉모습에 가려져 달라 보이지만 두 대통령의 리더십 유형도 공통점이 많다. 바로 법조인 출신이라는 태생적 한계다. 법조인은 기본적으로 과거 사건을 변호하거나 단죄하는 사람들이다. 미래에 대한 고민은 그들의 일상과 거리가 멀다. 문재인정권이 촛불시민의 압도적 지지라는 자산을 미래를 여는 동력으로 쓰지 못하고 5년 만에 정권을 내준 것도, 출범 1년이 지나도록 윤석열정권이 만들어가려는 미래가 무엇인지 여전히 안갯속인 것도 바로 이 한계에서 기인한다.

여기에 문빠라는 팬덤을 은근히 즐겼던 문 대통령이나 극우 유튜버 논리에 노골적으로 경도된 윤 대통령의 치우친 시각도 닮았다.

앞 정권의 '오늘'이 현 정권의 '내일'일 수 있다는 걸 모르나

'닮았다'는 '닮'자만 나와도 경기를 일으킬 것 같은 두 정권이 이처럼 같은 궤적을 밟는 것은 왜일까. 그것은 '권력정치'라는 본질이 같기 때문이다. 정책지향이 다르다고 해도 '권력의 굴레'에서 헤어나지 못하면 진보권력이나 보수권력이나 그냥 '권력'일 뿐이다. 아마 권력이 떠난 후의 풍경도 비슷할 것이다. 그토록 부정하는 문재인정권의 '오늘'이 바로 윤석열정권의 '내일'일 수 있다는 것을 지금 정권 담당자들은 생각이나 해 봤을까.

권불십년(權不十年)이라고 했다. 정권도 권력도 유한하다는 것, 그리고 권력에 취할수록 그 끝이 더 초라하다는 것은 동서고금을 떠나 진리다. 일찍이 막스 베버가 경고한 '권력에 내재한 비극성'을 성찰해야 할 이유가 거기 있다.

남봉우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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