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의 눈

취약계층 '금융소외'와 대부업시장

2023-07-27 11:12:41 게재
취약계층들이 제도권 금융을 이용하기 어려워지는 소외현상이 갈수록 심화되면서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이 되고 있다. 대부업체마저 저신용·저소득자에 대해 문을 걸어 잠그면서 사실상 이들이 손을 벌릴 곳은 정부의 정책금융과 불법사금융밖에 남지 않게 됐다.

정부의 불법사금융 근절대책에도 불구하고 시장에서는 급전을 구하지 못한 서민들이 불법사금융을 이용하는 게 현실이다. 요즘 불법사채업자들은 대출을 해주는 조건으로 주변 지인들 연락처까지 요구한다. 빚을 갚지 못하면 사회관계망을 단절시키겠다는 '협박성 담보'를 받고 있는 셈이다. 불법사채업자에게 빌린 소액은 연 환산 4000%가 넘는 초고금리 이자가 더해져 원금이 몇배로 불어난다. 갚을 능력이 없는 서민들은 극단적인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다.

대부업시장이 기능을 상실하면 취약계층에게 닥칠 가혹한 현실은 누구나 예상할 수 있는 최악의 시나리오와 다르지 않다.

정부가 내년 긴축재정 기조를 밝히면서 서민들을 위한 정책금융의 확대는커녕 심지어 줄어들 것이라는 우려까지 나온다.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정책금융 지원규모를 1조원 더 늘리겠다고 공언했지만 실행은 미지수다. 금융당국도 대부업시장이 죽어간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으며 김 위원장의 발언은 서민금융의 어려움을 반영한 것이다.

다만 정책금융을 확대한다고 해도 '임시방편'일 뿐 재정으로 해결할 문제는 아니다. 시장기능 회복 없이는 근본대책이 되기 어렵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정책금융을 10조, 20조원 투입한다고 해도 대부업시장이 작동하지 않으면 취약계층에 대한 충분한 자금 공급은 어렵다"며 "정책금융은 시장 기능을 보완하는 역할"이라고 말했다.

죽어가는 대부업시장을 어떻게 살릴 수 있을까. 전문가들은 '법정 최고금리'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현재 연 20% 이하인 금리상한을 좀 더 올려서 기준금리 인상에 따라 조달금리가 높아진 대부업체들이 영업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는 것이다.

무작정 금리상한을 올리기보다는 시장금리가 떨어지면 최고금리가 다시 낮아지는 '시장연동형 금리'를 채택하는 것이 합리적인 대안일 수 있겠다. 법정 최고금리 인상이 금융권 전체의 금리인상으로 이어질 것을 우려한다면, 소액대출과 대부업체에만 제한적으로 허용하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

경기침체의 직격탄을 맞게 된 취약계층들은 숨을 쉴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 더 늦기 전에 국회와 정부는 법정 최고금리 정책을 현실에 맞게 개편하는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이경기 기자 celli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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