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의 눈

무당층이 '제1당'이 된 현실

2023-08-07 14:32:43 게재
무당층은 여론조사에서 '지지하는 정당이 없다'고 답하는 유권자를 뜻한다. 전국지표조사(7월 31일∼8월 2일, 이하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에서 지지정당을 묻자 국민의힘 32%, 민주당 23%, 정의당 5%, 지지하는 정당 없다 37%로 나왔다. 무당층이 여야를 제치고 '제1당'에 오른 것이다. 무당층은 반년 전보다 10%p나 늘었다. 무당층이 '제1당'이 된 건 무엇을 의미할까.

유권자 의견을 대변하는 다양한 색깔의 정당이 치열한 경쟁(선거)을 통해 다수 의견을 존중하면서도 소수를 배려하는 게 정당민주주의다. 유권자는 자신이 지지하는 정당을 통해 정치적 의견을 표출하고 현실적 이익을 추구한다.

그런데 무당층이 '제1당'이 된 건 정당민주주의에 경고등이 들어왔다는 시그널로 해석할 수 있다. 나의 의견을 대변해줄 정당이 없다고 생각하는 유권자가 가장 많아졌다는 얘기이기 때문이다.

정당민주주의에 경고등이 들어온 건 전적으로 정당들 책임으로 볼 수밖에 없다. 정당들이 유권자의 이해를 대변하기 위한 경쟁보다 자기들끼리의 세싸움(정쟁)에 매달린다는 비판을 받은지 오래다.

국민은 하루가 멀다하고 터지는 사건·사고에 힘겹다. △새만금 세계스카우트 잼버리 파행 운영 논란 △서현역·신림동 '칼부림 사건' △47명이 사망·3명 실종한 극한호우 △철근이 누락된 순살 아파트 △서이초 교사 사망 △일본 원전 오염수 방류 등 열손가락이 모자랄 지경이다.

사실 국민이 더 힘겨워하는 대목은 갈수록 암울해지는 경제상황이다. 모든 경제지표는 '최악의 상황'을 경고하고 있다.

여야는 국민이 직면한 사건·사고·경제난을 사전에 막기 위한, 또는 사후에라도 고통을 최소화하기 위한 충분한 노력을 보여주지 않고 있다. 국정을 책임진 정부·여당은 '보수=능력'이란 오랜 공식을 완벽하게 무너뜨렸다. 사건·사고·경제난 앞에서 우왕좌왕할 뿐 해결하는 건 없다. 뒷북 대응에만 급급하다. 집권 1년 3개월이 지나도록 여전히 "문재인정부 탓"만 되풀이한다.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국민의 회초리를 맞은 제1야당은 반성과 혁신이 없다. 온갖 추문과 범죄에 연루된 인사가 속출하고 자질을 의심케하는 막말을 쏟아낼 뿐이다. 역대 '최악의 여야'라고 비판해도 지나치지 않은 모습이다.

무당층이 '제1당'이 된 건 여야에 대한 강력한 경고다. "결국 선거가 닥치면 여든 야든 찍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안일함은 정당민주주의를 뿌리째 흔들 수 있다. 여야는 하루빨리 국민을 고통스럽게 하는 사건·사고·경제난을 막을 진지한 '논의 테이블'에 앉아야 한다. 싸움을 중단하고 협치를 복원해야 한다. 시간이 없다.
엄경용 기자 rabbit@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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