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의 눈

기후변화가 변명이 된 시대

2023-08-09 10:46:44 게재
"이렇게 많은 비가 내릴지 몰랐습니다." 지난달 14명의 목숨을 앗아간 충북 청주 오송 지하차도 참사현장에서 들은 말이다. 예상을 뛰어넘는 폭우로 감당할 수 없었다는 말이다. 지방자치단체와 중앙정부가 다르지 않았다. 과연 그랬을까. 정말 비 때문에 참사가 일어난 것일까.

장마기간 금강 주변 곳곳에서 농경지와 생활터전이 물에 잠겼다. 대책은 없었느냐고 묻는 질문에 "이렇게 많은 비가 내릴지 몰랐다"는 답이 돌아왔다.

장마가 끝나니 이번엔 폭염이다. "이렇게 더울지 몰랐다." 세계잼버리 대회가 열린 전북 새만금에서 들리는 대답도 이런 식이다. 2023년 대한민국. 우리는 기후변화, 지구온난화가 변명이 된 시대에 살고 있다.

모든 자연재해가 기후변화로 해명된다. 기후가 변하면 우리 인간은 속수무책으로 당해야만 하는 것일까. 인류문명은 강에서 일어났다. 수천년 동안 강의 범람과 싸우면서 문명을 발전시켰다. 고대인들도 이렇게 삶을 유지하고 발전시켰는데 21세기에 사는 인간들은 자연재해에 방법은 없다고 변명한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이젠 기후변화를 방패삼아 잘못을 교묘하게 은폐하는 사람들까지 등장했다. 앞서 언급한 오송 지하차도 참사를 예로 들어보자. 길고 긴 미호강 둑 가운데 왜 하필 국토교통부 산하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이 관리·감독하는 교량공사 현장 임시제방만 무너졌을까. 그날 아침 임시제방 보강공사가 허겁지겁 진행되는데도 바로 옆 지하차도 교통통제는 왜 이뤄지지 않았을까. 보강공사가 실패하자 다급하게 교통통제를 요구했던 감리단장의 요구를 왜 충북도와 청주시 등은 묵살했을까. 그렇다. 이 모두 비가 너무 많이 내렸기 때문이다.

이태원 참사도 사람이 그렇게 많이 모일지 몰라서 일어난 것이다. 인식이 이렇다보니 대통령도, 장관도, 지자체 단체장도 모두 "내가 그곳에 있었다고 막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고 말하는 것이다.

책임을 지지 않으려는 자세는 엉뚱한 원인진단과 대책으로 이어진다. 오송 지하차도 사고 직후 정부여당이 내놓은 대책 가운데 하나가 하천관리를 환경부에서 국토부로 넘겨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사고 원인을 하천관리에서 찾다보니 빌미를 제공한 국토부가 상을 받는 꼴이 됐다.

지구온난화로 인한 기후변화로 자연재해가 더 자주, 더 크게 일어난다는 사실을 모두가 알고 있다. 그래서 국민이 대통령에게 단체장에게 재해를 대비하고 막으라고 권한을 부여한 것이다. 국민들이 언제까지 참고 기다려줄까.

태풍이 10일 한반도를 관통한다고 한다. 이번에도 관계자들은 또 이렇게 대답할까. "태풍이 이렇게 강한지 몰랐다."
윤여운 기자 yuyoo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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