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의 눈

무량판이 주범? 건설시스템이 문제다

2023-08-10 10:56:16 게재
요즘 집 살 때 아파트 구조가 무량판인지 묻는 사람이 늘어났다고 한다. 무량판이면 시세보다 50%까지 낮은 가격의 거래를 요구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서울 압구정 현대아파트를 놓고 내력벽이나 보가 없는 무량판이니 기둥과 보가 있는 라멘식 구조니 하는 논란도 일고 있다. 전국민이 건축공법 전문가가 됐다.

4월 29일 인천 검단의 한 아파트단지 주차장이 붕괴하자 정부는 무량판 구조가 원인인 것처럼 몰아붙였다. 국토교통부는 무량판 구조를 주차장에 적용한 한국토지주택공사(LH) 아파트 91곳을 전수조사한 결과 15곳에서 결함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이후 민간아파트 293곳도 무량판 구조를 집중조사하겠다고 한다.

그렇다면 문제의 원인이 무량판인가. 무량판 구조는 상대적으로 기둥과 천장 결합부분이 취약하다는 점을 알기 때문에 이 부분에 철근(전단보강근)을 추가 사용하도록 한다. 이번 조사에서 무량판 구조 아파트 주차장은 대부분 전단보강근을 줄여 시공한 것으로 나타났다.

건설업체는 철근 가격이 2020년 톤당 541달러에서 올해 상반기 1031달러까지 두배 가까이 올라 전단보강근을 줄여 시공했다고 한다. 그런 만큼 최근의 사태는 무량판 공법의 문제가 아니라 낙후된 건설시스템에서 비롯됐다고 봐야 한다.

하지만 정부와 언론은 삼풍백화점 붕괴사태까지 거론하면서 '기승전 무량판' 결론을 내려고 하는 것 같다. 원희룡 국토교통부장관은 하루가 멀다하고 무량판 구조 아파트단지를 방문해 구조진단과 보상 등을 약속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의 대책은 새로 입주해야 할 예정자들과 이미 입주한 주민들에게 혼란만 줄 뿐이다.

28년 전 삼풍백화점 붕괴는 설계·시공·유지의 복합적 부실에 따른 것이다. 무량판 설계로 지어진 삼풍백화점 5층은 롤러스케이트장으로 사용하는 것을 계획해 설계했다. 하지만 식당가로 용도가 변경되면서 이에 맞는 구조설계 변경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후 시공단계에서도 설계와 다른 공사가 진행되면서 부실건축물로 바뀌어갔다.

삼풍 붕괴로 낙후된 한국식 건설시스템이 한단계 진화해 설계·시공·감리가 깐깐해졌다. 이후 무량판 공법은 여러 단계를 거쳐 단점을 보완해 아파트 단지까지 확대 적용됐다.

우리나라 주거형태는 단독주택으로 전환되기 쉽지 않은 구조다. 고층아파트를 선호하는 추세가 지속될 것으로 예측되는 상황에서 무량판 구조 자체를 원흉으로 몰아가는 것은 대책없는 비난일 뿐이다.

정부는 더 이상 혼란을 조장하지 말고 국민들이 내가 사는 아파트에 불안해하지 않도록 부패한 건설시스템을 개선하는데 주력해야 할 일이다.
김성배 기자 sb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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