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의 눈

엄벌주의가 능사 아니다

2023-08-11 11:00:12 게재
서울 신림동에 이어 경기 성남 분당 서현역에서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한 흉기난동 사건이 발생하자 정부가 엄정대응을 강조하고 나섰다. 윤석열 대통령은 4일 "국민이 불안하지 않도록 정부는 경찰력을 총동원해 초강경 대응을 하라"고 지시했고, 윤희근 경찰청장은 곧바로 긴급 대국민담화를 발표하면서 특별치안활동을 선포했다. 흉기난동 범죄가 발생하면 현장에서 총기나 테이저건 등 경찰 물리력을 적극 활용하라는 지시도 내렸다.

같은 날 법무부는 "흉악범죄에 대한 엄정대응을 위해 '가석방을 허용하지 않는 무기형'을 형법에 신설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법무부는 사흘 뒤인 7일 "국민의 생명과 신체에 대한 위해가 우려되는 상황에서 경찰 등의 물리력 행사에 정당행위·정당방위를 적극 검토해 적용하라"고 한동훈 장관이 대검에 지시한 내용을 공개하기도 했다. 이원석 검찰총장도 6일 '중대강력범죄 엄정 대응 긴급회의'를 소집하고 흉기난동 피의자에 대해 "초동수사 단계부터 경찰과 협력해 법정 최고형 처벌이 이뤄지도록 하라"고 주문했다. 윤 대통령 한마디에 경찰과 검찰이 경쟁이라도 하듯 강경대응에 나선 모습이다.

다수가 몰리는 도심 한 가운데서 연이어 발생한 끔찍한 흉악범죄에 정부가 적극 대응하고 나선 건 반길 일이다. 하지만 정부 대응이 강경책과 엄벌주의에만 맞춰져선 곤란하다. 강경대응은 자칫 과잉대응으로 이어지기 쉽다. 지난 5일 조깅 중이던 중학생이 흉기난동 용의자로 지목돼 체포되는 과정에서 심한 상처를 입은 것은 단적인 예다.

법무부가 도입하기로 한 '가석방 없는 무기형'의 효과도 의문스럽다. 최근 발생한 무차별 흉기난동 사건의 범인이 자신이 처벌 받을 것을 몰라서 이같은 행위를 저질렀다고 보기는 어렵다. 형량 강화가 범죄 감소에 유의미한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것은 다수 학자들의 주장이기도 하다.

더 우려되는 건 엄벌주의만 강조하다보면 범죄예방을 위한 근본대책 마련은 뒷전으로 밀려나기 쉽다는 점이다. 무차별 흉기난동 사건의 원인으로는 극단적 사회 불평등과 사회안전망 사각지대, 은둔형 외톨이 양산, 중증 정신질환자에 대한 체계적 관리 부재 등 다양한 요인이 꼽힌다.

형량을 높이고 강경대응을 강조하는 것은 시민들의 분노와 불안을 달랠 수는 있지만 범죄를 예방하는 근본대책이 될 순 없다. 그럼에도 무차별 범죄가 발생할 때마다 정부는 엄정대응만 강조하다 흐지부지되는 일을 되풀이해왔다. 대책 마련은 어렵고 보여주기식 대응은 손쉬운 탓이다.

그 결과 최근 연이은 사건에서 드러나듯 우리사회의 무차별 범죄 문제는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이번만큼은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하길 바란다.
구본홍 기자 bhkoo@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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