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의 눈

광복절 경축사에 바라는 세 가지

2023-08-14 11:13:17 게재
"근현대사에 대한 대통령의 이해가 생각보다 더 깊었다."

윤석열 대통령이 4.19 민주묘지를 방문할 때 동행한 어느 정부 고위관계자의 이야기다. 그는 "(당시 대통령이) 몇몇 열사의 묘 앞에서 '이 사람이 누군지 아느냐'고 묻더라"며 "나는 아는 대로 답을 했는데 그때마다 (대통령이) 고인의 부친 이름부터 시작해 내가 모르는 행적까지 줄줄이 읊는 것을 보고 놀랐다"고 말했다.

"(8.15는) 건국절이 맞다고 생각한다"던 이 관계자는 "하지만 대통령은 그런 논쟁에 관심이 없었다"고 했다.

내일이면 78주년 광복절이다. 참모들은 지난 주말에도 늦은 밤까지 윤 대통령의 두 번째 경축사 준비에 머리를 맞댔다고 한다.

윤 대통령은 일관되게 독립의 개념 확장을 시도하고 있다. 지난해 경축사에선 독립운동에 대해 "(광복 후에도) 공산 세력에 맞서 자유국가를 건국하는 과정, 자유민주주의의 토대인 경제성장과 산업화를 이루는 과정,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민주주의를 발전시켜온 과정을 통해 계속돼왔고 현재도 진행 중"이라고 했다.

이달 9일 독립유공자 및 유족 초청 오찬 때는 "우리 민족을 넘어서 인류 전체의 관점에서도 보편적이고 정의로운 것"이라고 했다.

이 새로운 인식이 의심 아닌 공감을 받으려면 윤 대통령은 이번 경축사에서 적어도 세 가지에 대해 의지를 분명히 해야 할 것 같다.

먼저 '건국절 논란 종식'이다.

무관심만으로는 부족하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 '국력을 갉아먹는 소모적 논쟁은 끝내자'고 쐐기를 박아야 한다. 일각의 주장이 계속 논쟁을 낳도록 방치하면 이 역시 대통령의 '철학'으로 이해될 수 있다.

둘째, 대일정책 비판 및 유보층에 대한 포용이다.

한일은 1년새 급격히 가까워졌지만 '제3자 변제'를 거부 중인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여전히 남아있다. 오염수 방류에 대한 국민적 불안은 과학만으로 해소될 성질이 아니다. 국민 대부분은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말에 공감한다. 윤 대통령이 자신의 청사진을 펼치기 전에 먼저 이들을 충분히 다독이고 이해시키길 바란다.

끝으로 남북관계에 대한 전향적 대안 제시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평화·경제·민족공동체'론, 박근혜 전 대통령도 DMZ 세계생태평화공원 등을 제시하며 남북관계 개선의지를 표했다. 윤 대통령도 '담대한 구상'에서 더 나아간 고민의 흔적을 보여줄지 궁금하다.

이번 광복절에는 국민이 위로받고 안심할 수 있는 경축사를 듣고 싶다.
이재걸 기자 claritas@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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