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의 눈

가장 손쉬운 해법을 택하는 나라

2023-08-21 10:54:10 게재
여느 때와 다름없는 퇴근길이었다. 지하철 계단을 내려가며 올라오는 사람들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가 움찔했다. 한눈에 보기에 뭔가 불안한 눈빛의 사람이 뭔가를 중얼거리며 계단을 올라오고 있었다. 평소라면 무심히 눈을 돌렸겠지만 그러지 못했다. 뭔가 위험한 것을 들고 있지는 않은지 그의 양손을 재빠르게 훑고 나서야 안도하는 내 모습이 낯설었다.

사람들 마음에 온도라는 게 있다면 '묻지마 범죄'가 몇차례 사회를 휩쓴 후 몇도는 내려가지 않았을까. 안전한 일상을 보내는 일이 '행운'처럼 느껴질 정도로 불안과 공포가 휩쓸고 있는데 정부가 내놓은 해법을 보면 한숨이 난다. 가석방 없는 종신형 도입과 정신질환자의 사법입원제 등이 검토되고, 경찰의 특별치안활동이 강화된다는데 이게 정말 대책이 될 수 있는지 고개를 갸웃거리게 된다. 당장의 엄벌주의도 필요하겠지만 도대체 왜 이런 범죄가 일어나는지에 대한 탐구와 성찰은 보이지 않아서다.

특히 정신질환자에 대한 현정부의 접근방식에 대해 야권에선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지난 18일 묻지마 범죄와 관련해 열린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남인순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사법입원제를 신중 검토해 줄 것을 당부했다.

남 의원이 걱정한 지점은 혐오의 문제다. 정신질환을 제대로 치료해줄 수 있는 체계를 갖추지도 않은 채 무작정 사법입원제 도입만 전면에 부각된다면 정신질환자를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심해질 수 있어서다. 가뜩이나 비정상적일 정도로 정상성을 추구하는 우리 사회에서 정신질환자의 치료보다는 격리를 기본값으로 한다면 조금이라도 비정상 딱지가 붙은 사람에 대한 격리 요구가 얼마나 높아질지 가늠하기 어렵다.

앞서 9일 같은 당 신현영 의원도 정신장애인가족단체와 함께 기자회견을 열고 정신질환자에 대한 낙인찍기 중단을 촉구했다. 의사 출신인 신 의원은 이날 내일신문과 전화통화에서 정신질환자에 대한 생애주기별 치료를 강조하며 의사 입장에서 보기에 정신질환자에 대한 우리나라의 치료체계는 후진국 수준이라는 점에서, 정신질환자에 대한 낙인찍기만 하는 게 제대로 된 국가의 모습인지 의문을 제기했다.

이들의 문제제기에는 우리 사회를 뒤흔드는 사건이 일어났을 때 가장 쉬운 해법만 선택하지 않아야 한다는 바람이 담겨있다고 생각한다. 묻지마 범죄엔 사법입원제와 가석방 없는 종신형, 교권침해엔 학교생활기록부 기재, 부실 아파트 논란엔 이권카르텔 조사…. 다 가능한 해법일 수 있겠지만 최선의 대책이 아니라 당장 면피할 가장 손쉬운 대책을 선택한 것 아니냐는 누군가의 질문에 정부가 제대로 답했으면 좋겠다.
김형선 기자 egoh@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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