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의 눈

국방부, 대통령 약속도 빈말 만드나

2023-08-22 10:53:33 게재
"순직을 진심으로 애도한다. 유가족분들과 전우를 잃은 해병대 장병 여러분께도 깊은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 정부는 사고 원인을 철저히 조사해 다시는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하겠다." 지난달 19일 대통령실이 전한 윤석열 대통령의 애도 메시지다. 바로 전날 경북 예천 수해현장에서 실종자 수색 중 순직한 해병대 고 채수근 상병에 관한 내용이다.

그로부터 한달이 지났다. 사건의 원인규명은 물론이고 책임추궁까지 가능한 시간이다. 하지만 현실은 전혀 다르다. 해병대 수사 결과를 경찰로 이첩하는 과정에 큰 혼선이 빚어졌다. 지난달 30일 국방장관 승인까지 받아 경찰로 이첩키로 했지만 밤 사이 상황이 돌변했다. 이첩 보류 지시가 내려왔고, 수사 내용에 대한 문제제기도 이어졌다. 예정됐던 언론브리핑도 갑자기 취소했다.

수사를 지휘한 해병대 박정훈 전 수사단장(대령)은 이를 외압으로 인식했고,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맞섰다. 그러면서 8월 2일 경북경찰청에 해병대 1사단장 등 관련 혐의자 8명에 대한 범죄인지 통보를 하면서 사건을 이첩했다.

국방부는 그날 저녁 사람을 보내 이첩된 서류를 회수했고, 박 단장에 대해서는 항명죄로 입건하고 보직 해임했다. 아울러 회수한 수사 보고서를 토대로 국방부 직할 조사본부에서 재검토를 시작했다.

박 단장은 굴하지 않고 11일 언론 인터뷰를 통해 정당성을 주장했고, 국방부는 사전 승인없는 인터뷰라며 박 단장을 징계위에 회부했다. 이후에도 양측은 진실게임을 이어갔다. 채 상병 사망사고 원인을 밝힐 본 수사는 시작도 못한 채 한달 넘게 공방만 펼쳤다.

그 사이 민심도 싸늘해졌다. 국방부의 거듭된 해명에도 불구하고 납득이나 공감은 찾기 어려웠다. 박 단장을 응원하는 목소리가 점점 커졌다. 설령 조금 과한 부분이 있더라도 경찰 수사에서 제대로 밝혀내면 그뿐인데 무리하게 막으려다 사달이 벌어졌다는 게 중론이다. 외압 의혹이 갈수록 커지는 이유다.

여기에 한술 더 떠 21일 국방부 조사본부는 '해병대 순직사고 재검토 결과'를 밝혔다. 2명은 혐의를 적시했지만 사단장과 여단장 등 4명은 사실관계만 적시했고, 하급간부 2명은 아예 혐의자에서 제외했다. 해병대 수사단의 수사결과 내용과는 사뭇 다르다. 다시 한번 민심과 등지고 있다는 평가다.

온라인상에는 진상규명을 위해 국정조사를 요구하는 국민청원까지 진행 중이다. 16일 시작된 청원은 21일 현재 3만7000명을 넘겼다. 불과 며칠 만에 4만명 가까이 지지한 것이다. 그런데도 거듭 민심을 거스르는 국방부 태도가 대통령 약속마저 빈말로 만들고 있다는 지적이다.
정재철 기자 jcju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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