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의 눈

섬유산업과 홍 시장의 밀라노 출장

2023-08-23 10:59:51 게재
대구시에는 다른 광역시에서는 보기 드문 과(科) 조직이 하나 있다. 섬유산업도시에 걸맞게 만들어진 섬유패션과다. 1995년 섬유진흥팀에서 출발해 1996년부터 2002년까지는 섬유공업과, 2003년부터 2004년까지는 공업진흥과로 배속됐다가 2005년부터 현 체제로 유지되고 있다.

대구시가 한국학중앙연구원과 함께 편찬한 '대구역사문화대전'에 따르면 대구 섬유산업의 역사는 일제 강점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명주라는 견직물을 일본으로 운반한 1918년에서 1920년대쯤이다.

1950년 이전까지는 섬유산업의 중심은 서울과 부산이었다. 그러나 6.25전쟁 이후 국내 섬유산업의 판도는 바뀌었다. 삼성그룹의 모태기업 중 하나인 제일모직과 나일론으로 유명했던 한국나이론(코오롱)이 대구에서 출발하면서다.

1960년대 후반 폴리에스터 직물 생산을 계기로 대구는 1985년 일본을 능가하며 세계 최강 화학섬유 직물 수출 전진기지로 부상했다. 그러던 대구섬유산업은 외부환경 변화를 외면하다 1997년 IMF 외환위기를 맞아 줄도산에 직면했다.

1998년 2월 출범한 김대중정부는 대구를 이탈리아 밀라노와 같은 세계적인 패션도시로 만들겠다며 이른바 '밀라노프로젝트'를 추진했다. 1998년부터 5년간 6800여억원 이상을 투입했지만 과거 섬유산업의 영광을 되살리지는 못했다.

대구시는 섬유산업의 부침에 따라 섬유패션과 조직을 바꾸려는 과정을 되풀이했다. 조해녕 시장은 2003년 섬유공업과를 없앴다가 섬유업계의 반발로 1년여 만에 다시 부활시켰다. 권영진 시장도 2014년 취임 후 섬유패션과를 폐지하려다 업계와 시의회의 반대로 관철하지 못했다.

홍준표 시장도 섬유산업에 부정적인 인식을 드러낸 바 있다. 지난해 대구시장 선거에 출마하면서 "대구 발전을 저해하는 사양산업인 섬유산업은 포기해야 한다"고 말해 섬유업계를 발칵 뒤집어 놓았다. 홍 시장은 취임 직후에도 대구발전 6대산업에서 섬유를 제외했고 1년이 지났지만 섬유산업에 대한 밑그림을 내놓지 않고 있다.

그런데 최근 대구시 섬유패션과가 다시 입길에 오르고 있다. 섬유전문직이 잇따라 담당 과장에서 경질됐기 때문이다. 지난해 2월 임명된 과장은 지난 6월 말 갑자기 교체됐고 지난 7월 발령된 과장은 2개월도 못 채우고 자리를 떠났다. 인사권자인 홍 시장의 지시로 단행됐다는 후문이다.

그런 홍 시장이 9월 세계적 패션도시 '밀라노' 출장길에 오른다. 지난 5월 두바이와 싱가포르 출장에서 돌아와 대구경북 신공항의 밑그림을 내놨듯이 홍 시장의 밀라노 구상이 어떻게 그려질지, 최근 섬유패션과 돌발 인사 배경과 함께 관심이 쏠린다. 그동안 거리를 뒀던 섬유업계 인사들도 대동한다니 더 주목된다.
최세호 기자 seho@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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