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의 눈

'이념전쟁'과 한미일 협력체제

2023-09-04 11:02:31 게재
얼마 전까지 '카르텔 혁파'를 외쳤던 윤석열 대통령이 표적을 바꿨다. 이번엔 '공산전체주의' 세력을 상대로 이른바 '이념전쟁'에 돌입한 모습이다.

윤 대통령은 지난달 28일 "제일 중요한 게 이념"이라고 강조했다. "나라를 제대로 끌고 갈 수 있는 그런 철학이 바로 이념"이라는 설명도 곁들였다. 29일에는 "분단현실에서 공산 전체주의 세력, 그 맹종 세력과 기회주의적 추종세력은 허위조작, 선전·선동으로 자유사회를 교란시키는 심리전을 결코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당초 윤 대통령은 '이념'이라는 말에 냉소적이었다. 대선후보 때부터 문재인정부를 비난할 때나 쓰곤 했다. 올해 5월 23일 국무회의 때도 그는 "탈이념과 탈정치, 그리고 과학 기반화가 바로 정상화"라고 했다. '공산' 또는 '공산전체주의'도 취임 초에는 6.25전쟁 당시 침략세력을 지칭할 때만 쓰던 역사 속 어휘였다. 그러던 것이 지난 광복절을 전후해서 갑자기 '현재진행형'이 됐다.

철 지난 반공이라는 비판에 대해 대통령실 고위관계자는 "(대통령은) 덮어놓고 반공을 하자는 게 아니라 자유민주주의 체제와 가치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이라고 했다.

맥락을 더듬어본다. 윤 대통령은 이달 1일 국립외교원 60주년 축사에서 "(공산전체주의·추종·반국가 세력은) 반일감정을 선동하고, 캠프데이비드에서 도출된 한미일 협력체계가 대한민국과 국민을 위험에 빠뜨릴 것처럼 호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미일 공조체제에 소금을 뿌리고 있는 중국부터 국내 야권까지 싸잡아 겨냥한 것으로 읽힌다.

이념과 무슨 상관이냐 싶으면서 한편으론 심정을 이해할 것도 같다. 그간 윤 대통령은 야당과 극한대립으로 일관한 결과 내치에서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했다. 대신 외치를 통한 국정동력 확보에 집중했고 핵심은 미국·일본과의 관계 강화였다.

윤 대통령의 구상은 국내 반발을 무릅쓴 '결단', 일본과의 급격한 밀착을 거쳐 지난달 성사된 캠프데이비드 회의에서 정점을 찍었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한국에서 3국 정상이 한 번 더 모일 수도 있는데 분위기를 망치고 싶진 않을 터다.

그러나 윤 대통령의 여정이 내년 4월 국민의 지지로 이어질지는 아직 확신하기 어렵다. 우리가 '가치외교'를 하는 동안 미국은 한국으로부터 천문학적인 투자를 챙겨갔다. 일본은 한국의 암묵적 협조 속에 마음놓고 오염수를 방류하고 있다. 윤 대통령은 "위험은 확실하게 줄어들고 기회는 확실하게 커질 것"이라고 했다. 공감하는 국민이 얼마나 될까. 일상에서 체감할 만한 결과물을 총선 전까지 내놓지 못하면 '공산세력'이 나설 것 없이 국민이 먼저 외면할지도 모를 일이다.
이재걸 기자 claritas@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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