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의 눈

종군기자 아닌 정치부기자이고 싶다

2023-09-18 11:00:54 게재
지난 11일 국회의원회관에선 여야가 각각 주최한 언론 관련 토론회와 간담회가 복도 하나를 사이에 두고 나란히 열렸다. 국민의힘 미디어정책조정위원회와 가짜뉴스 괴담 방지 특위가 공동주최한 '가짜뉴스를 통한 선거공작 어떻게 막을 것인가?' 긴급 토론회와 야4당(더불어민주당 정의당 기본소득당 진보당)의 윤석열정권 언론장악 저지 공동대책위원회가 개최한 '윤석열정부 해직 방송기관장' 긴급 간담회였다.

언론과 관련돼 있지만 내용은 전혀 상반된 행사가 같은 시간, 바로 앞에서 개최된 것이다. '선거공작' 토론회에 참석해 축사를 한 박대출 국민의힘 정책위의장도 공교로움을 느꼈던지 "바로 앞에서 저런 행사가 열리고 있다"고 참석자들에게 전하기도 했다.

두 행사는 최근 언론 관련 이슈에 대한 여야의 상반된 시각을 보여준다. 여당은 기존 방송은 물론 언론이 비정상적이었다고 본다. 뉴스타파의 '김만배-신학림 허위 인터뷰' 의혹에서 보듯 가짜뉴스가 생성되면 MBC를 위시한 '친야' 언론이 가짜뉴스를 확산시키는 일종의 유통구조가 지난 정부에서 존재했다는 것이다. 최근 이뤄지고 있는 방송기관장들의 해임이나 언론인 등에 대한 고발 및 검찰수사는 비정상의 정상화, 기울어진 언론 운동장을 바로잡는 과정이라고 말한다.

야권의 시각은 전혀 다르다. 윤석열정부 들어 가짜뉴스 근절이라는 명분으로 언론탄압이 자행되고 있고 이는 결국 권력에 비판적인 언론을 길들이려는 속셈이라고 본다. 윤석열정부 들어 해직된 방송 관련 기관장들-한상혁 전 방송통신위원장, 정연주 전 방송통신심의위원장, 남영진 전 KBS 이사장, 권태선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법원의 결정으로 해임 처분 효력정지)-은 최근 윤석열정부의 언론정책에 대해 '전두환식 언론 쿠데타'라는 표현을 쓰기도 했다. 보도지침과 언론통폐합으로 상징되는 전두환 시대의 언론환경으로 퇴행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이날 양쪽을 오가며 어지러움을 느꼈다. 양 정치세력이 얼굴을 마주볼 생각은 없이 적대적으로 등을 맞대고 있어 타협의 여지라고는 하나도 없다고 느껴졌기 때문이다. 이게 전쟁이 아니면 뭐란 말인가 싶은 생각까지 들었다. 이날의 풍경과 어지러움을 한 지인에게 전했더니 "(네가) 정치부 기자를 하는 줄 알았더니 종군기자를 하고 있구나"고 했다. 헛웃음이 나왔지만 생각해 보니 틀린 말도 아니다.

야권과 싸우라는 대통령, 최근 이뤄진 개각은 전사들을 앞에 내세운 '파이터 개각'이라는 말까지 나오는 상황이니 지금 정치권에 정치는 없고 전쟁만 있는 것 같기 때문이다. 언제쯤 정치권에서 전쟁이 아닌 정치를 볼 수 있을까.
김형선 기자 egoh@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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