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의 눈

북러밀착이 위기 키우지 않도록

2023-09-19 11:06:25 게재
5박6일에 이르는 체류일정으로 러시아를 방문한 북한 김정은은 그의 회담 파트너인 블라디미르 푸틴보다 더 많은 이익을 얻은 것으로 보인다.

푸틴은 북한의 탄약을 확보하고 우크라니아전쟁에 따른 고립을 탈피하기 위한 든든한 우군을 얻었다는 평가가 가능하다. 반면 김정은으로서는 우주기지에서의 정상회담 등 인공위성 기술을 확보할 행보로 정찰위성 개발의 완성도를 높일 기회를 얻었다. 여기에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재진입 기술, 핵잠수함설계 등 군사기술 협력을 전방위로 넓힐 토대를 마련했다.

푸틴은 "유엔 제재 틀 안에서 북한과 협력이 가능하다"고 했지만 1989년 소련 붕괴 이후 냉온탕을 오가며 느슨해졌던 북러관계가 이번 회담을 기점으로 "전략전술적 협동"을 강화하는 '새로운 전성기'로 전환했다는 양측의 판단으로 볼 때, 향후 유엔 제재 흔들기는 물론, 핵확산금지조약(NPT) 무력화도 벌어질 수 있다는 우려마저 나온다. 러시아 외무부장관 세르게이 라브로프는 "북한에 제재를 선언한 건 우리가 아닌 안보리"라며 북한과의 협력을 발전시킬 것이라 공언했다.

한미일 대 북중러의 대치가 날카로워지는 신냉전 구도가 심화될 것임을 예고한다. 북한을 매개로 북중 관계 강화에 이어 북러 관계의 전략화가 더해진 북중러 결속은 외교를 한편에 밀어둔 채 한미일 군사협력 강화에 몰두한 미국의 아시아전략이 자초한 측면이 크다.

미국 바이든정부는 출범 이후 대북정책을 '외교와 제재·압박 병행'으로 공표했지만 외교대화는 립서비스에 그쳤을 뿐이란 평가를 받아왔다.

이번 김정은의 방러와 관련, 미국 내에서조차 현재와 같은 대북정책은 달라져야 한다는 쓴소리가 나온다. 미국 외교 및 국가안보 관련 칼럼니스트인 조시 로긴은 16일(현지시간) 워싱턴포스트에 쓴 글에서 "평양에 대한 바이든정부의 무개입 정책의 결과가 이번 주 러시아 극동지역에서 나타났다"며 "외교가 없을 때 북한은 무기 프로그램을 가속화하고 미국의 적들과 가까워지며 분쟁의 위험도 높아진다"고 경고했다.

당장 북러 간 군사협력에 맞서 한국이 우크라이나에 살상무기를 제공해야 한다는 주장이 고개를 든다. 미중 경쟁·대결에 갇혀있는 한반도가 미러 대결의 동북아 전이 가능성이란 악재까지 떠안게 될 공산이 커졌다는 얘기다.

우리 정부의 신중한 상황관리가 어느 때보다 중요할 듯하다. 북러간 위험한 브로맨스에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있는 중국과의 협력을 끌어내고, 한국의 우크라이나전 개입을 바라지 않는 러시아의 입장을 활용할 전략이 필요한 시점이다.
김상범 기자 clay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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