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의 눈

'R&D 카르텔' 가짜뉴스 아닌가

2023-09-21 11:06:05 게재
최근 대학과 정부출연연구기관(출연연)은 벌집을 쑤셔놓은 듯 어수선하다. 정부가 2024년도 예산안에서 연구개발(R&D) 예산 3조4000억원을 삭감하고 과학기술계 출연연 주요사업비를 30% 가까이 줄였기 때문이다.

과학기술단체와 출연연 노동조합 등은 하루가 멀다하고 성명을 내 R&D 예산삭감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어지간한 일에는 목소리를 내지 않는 연구자들도 "연구비 예산 삭감을 철회하라"며 목소리를 높인다. 19일에는 세계적 과학전문지 '사이언스'가 "한국 정부의 과학기술 분야 R&D 예산 삭감에 많은 연구자가 우려하고 있다"는 내용의 기사를 게재했다.

실제 이번 R&D 예산 삭감 과정을 보면 석연치 않은 점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우선 왜 줄였는지 어떻게 줄였는지 알 수가 없다. 분명한 근거가 무엇인지도 알지 못한다. 윤석열 대통령의 'R&D 카르텔' 발언이 있었고, 이에 맞춰 1년여를 준비해온 예산안을 2달 만에 뚝딱 바꿔버린 것이 전부다.

과학계와 언론에서 잇따라 비판적인 의견이 나오자 정부는 '비효율과 낭비요인을 걷어냈다' '나눠먹기식 보조금 성격이 강하고 혁신성이 상대적으로 낮은 사업을 구조조정했다' '소부장·감염병 등 단기적 이슈 등으로 예산이 급증했던 분야는 임무 재설정을 통해 예산을 재구조화했다'는 등의 설명을 내놓았다.

하지만 여전히 '비효율' '낭비요인' '나눠먹기'라는 단어가 지적하는 대상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았다.

R&D예산에 비효율이 있다면 걷어내야 한다. 또 지출 방향에 문제가 있다면 수정해야 한다. 현 정부가 보기에 전 정부가 중점을 두고 추진한 사업에 문제가 있으면 변경할 수도 있다.

하지만 방향을 틀거나 수정하기에 앞서 이유를 분명히 하는 것이 우선이다. 또 방향을 수정하기에 앞서 무엇이 사실인지 확인하는 것이 먼저다. 예산 축소로 영향을 받는 연구단체나 연구자와 충분한 소통을 해야 한다. 아니면 가짜뉴스에 휘둘린 대통령, 정부가 되는 것이다. 가짜뉴스는 진실이 확인되지 않은, 출처가 불분명한 뉴스다.

기자와 만난 기초과학 분야 대학교수는 "대통령이 'R&D 카르텔'이라는 인식을 갖게 된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하다"며 "가장 화나는 것은 정부 예산을 지원받으면 카르텔 구성원이 된 것처럼 보인다는 사실"이라고 불쾌함을 감추지 않았다. 또 다른 대학교수는 "소규모 예산을 지원받는 교수들은 대부분 대학원생이나 박사후 연구원 인건비로 예산을 쓰게 된다"며 "혹여 예산 축소가 이제 막 시작하는 이들의 연구의지를 꺾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고성수 기자 ssgo@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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