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시론

'매파적 동결' 이후 대비한 미 연준

2023-09-22 11:16:31 게재

20일(현지시간) 미국 중앙은행(Fed)의 9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를 마치고 기자회견장으로 들어온 제롬 파월 연준의장은 단상에 애플의 아이패드를 펼쳐 매우 신중한 어조로 회견문을 읽어나갔다. 이번 기준금리 결정은 시장과 패드워치가 거의 90% 수준으로 동결을 예측했고, 통화정책 성명서도 7월 회의 때보다 겨우 3~4개의 단어를 변경한 데 불과했다. 다만 점도표는 성명서보다 더 매파적인 내용으로 채워졌다.

파월의 기자회견이 대부분 그러했듯 이번에도 매파적인 점도표보다 조금 유연한 비둘기 발언으로 균형을 맞출 것으로 기대했던 기자회견장은 곧 술렁이기 시작했다. 한 기자의 '중립금리(longer run)' 질의에 파월이 "더 올랐을 수 있다"고 답변하면서부터다. 파월의 '중립금리 상승' 발언은 미 중장기 국채금리를 2007~2008년 이후 최고치로 끌어올렸고, 미국 3대지수 급락에 이어 아시아 증시를 강타했다.

파월 의장의 '중립금리' 상향 강펀치, 주식 채권시장 강타

21일 우리 코스피는 1.75%, 코스닥은 2.52% 하락했다. "더 높은 금리를 더 오래 유지하겠다(Higher for Longer)"는 연준의 '매파적 동결' 파장은 상상외로 큰 후폭풍을 몰고 왔다. 중립금리는 '경기를 부양하지 않아도 되고 억제하지 않아도 되는 수준의 금리' 라는 개념인데 실제로 존재하는 금리가 아니라 이론상으로 설정해놓은 금리다.

8월 24~26일(현지시간) 세계 중앙은행 총재들과 경제학자 등이 미국 와이오밍주에 모여 글로벌 통화정책 방향을 논의하는 잭슨홀회의에서 연준의 비공식 대변인으로 통하는 월스트리트저널의 닉티미라오스 기자가 '역사적 저금리시대가 끝났을 수 있는 이유'라는 기사로 이슈를 던졌으나 당시 파월은 이에 적극 답변하지 않았었다.

9월 점도표상 중립금리는 2.5%를 나타내고 있으나 점도표에 3.5% 이상을 찍은 연준위원들이 늘어나고 이번엔 파월의 이를 직접 거론했다. 중립금리가 상향 조정되면 연준이 예상보다 더 오래 높은 금리를 유지하고 금리인하 시기는 더 멀어지게 된다. 결국 이런 변화들은 고금리발 긴축 리스크를 고조시키고 경기와 기업이익 개선 전망을 불투명하게 만든다.

미국의 통화긴축 기조가 예상보다 길어지고 금리인하 시점이 늦춰지면 수출 환율 소비 등 모든 측면에서 우리 경제엔 부담이 커진다. 8월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 의사록에 따르면 금통위원들은 상당한 딜레마에 빠져 있다. 경기는 갈수록 가라앉고 레고랜드 사태 발생 이후 1년이 지나면서 정부 대책으로 미뤄놓은 부실 부동산프로젝트파이낸싱(PF) 차환일정이 돌아와 단기금융시장이 긴장하고 있다.

게다가 정부가 59조원의 역대급 세수펑크에 따른 재정부족분을 메우기 위해 부채비율을 상승시키는 국채발행보다 돌려막기식으로 약 20조원의 외국환평형기금을 끌어오기로 한 것이 머니마켓펀드(MMF)와 단기채 환매를 부추겨 단기금리를 상승시키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은은 고환율과 한미간 금리차를 고려해 금리를 인상할 수도, 불어나는 가계부채와 유가상승 등으로 불안한 물가를 고려하면 내릴 수도 없는 처지다.

레고랜드급 사태 재발하나, 단기자금 시장 긴장 모드

연준은 'Higher for Longer'를 결정하기 이전에 장기적인 금리긴축이 불러올 제2의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과 같은 금융불안정 사태를 막기 위해 8월 말 취약한 금융기관에 대해 단속해둔 것으로 보인다. 기존 재할인 창구에 이어 일종의 유사양적완화(not-QE)인 은행기간대출프로그램(BTFP), 그리고 시스템적으로 중요한 금융회사(SIFI)보다 낮아 스트레스테스트 대상은 아니지만 일정 수준 이상의 대출 규모를 가진 지역 대출기관에 개별적으로 유동성 강화계획을 강화하도록 비공식적인 압박을 가한 것이다.

연준이 지목한 은행들은 파산한 SVB과 동급인 자산 1000억~2500억달러 규모의 시티즌스 파이낸셜 그룹과 피프스서드 뱅크 등이다. 연준이 보낸 경고는 '주의가 필요한 문제(MRA, Matters Requiring Attention)' 단계와 '즉각적인 주의가 필요한 문제(MRIA, Matters Requiring Immediate Attention)'로 나뉜다. 이런 규제 강화 움직임 속에 미국 은행의 전체 현금자산은 3조2600억달러(4350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평가됐다. 한은을 비롯 금융당국은 최근 고금리 속에 조달비용이 상승하면서 경쟁력을 잃은 대부업체와 저축은행 부동산PF에 발이 묶인 상호금융과 여신전문업체, 중소형 증권사 등에 대한 선제적인 조치를 강화할 때다.

안찬수 오피니언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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