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13
2025
한국은행이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1.5%에서 0.8%로 대폭 낮췄다. 이는 단순한 수치 조정이 아니라 한국경제의 구조적 문제를 여실히 보여주는 징후다. 1950년 이후 한국이 1% 미만의 성장률을 기록한 해는 단 다섯 번뿐이며 모두 전쟁, 외환위기, 팬데믹 등 외생적 충격이 원인이었다. 그런데 올해는 외부 충격 없이 0%대 성장이라는 초라한 성적표를 받아들게 됐다. 명백한 대내외 위기가 없었어도 0% 성장으로 주저앉았다는 사실이 더 뼈아프다. 그만큼 현재의 성장둔화는 뿌리 깊은 체질적 한계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다. 한은이 밝힌 성장률 하락의 주요 원인은 건설(-0.4%p), 수출(-0.2%p), 소비(-0.15%p) 순이다. 특히 건설 부문의 부진이 압도적이다. 건설이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약 14%에 불과하지만 하락 기여도는 절반에 가깝다. 부진은 하루아침에 온 것이 아니다. 지난 몇 년간 이어진 부동산 호황기 특히 지방 위주의 무리한 주택공급은 부동산 프
05.30
미국은 전 세계에서 자국통화로 이론상 무제한의 국채를 발행할 수 있는 유일한 국가다. 달러가 국제무역의 88%, 글로벌 외환보유고의 59%를 차지하는 기축통화이기 때문이다. 미국 국채는 글로벌 중앙은행과 기관투자자들에게 여전히 ‘안전자산’으로 간주되고 달러는 결제통화와 준비통화로 막강한 영향력을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 국채금리 급등과 미국 신용등급 강등, 연방정부의 재정적자 확대 흐름은 이같은 ‘신화’에 균열을 내고 있다. 이 같은 사태에 가장 어깨가 무거운 사람은 아마도 베선트 미 재무부 장관일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과 함께 임기를 시작한 주요 경제 책사를 꼽으라면 관세정책을 주도한 피터 나바로 백악관 무역·제조업 담당 고문,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부 장관, 정부효율부(DOGE) 수장을 맡은 일론 머스크, 백악관 경제자문위원회(CEA) 스티븐 미란 위원장, 그리고 재무부 장관을 맡은 스콧 베선트를 꼽을 수 있다. 그런데 트럼프의 관세전쟁이 날짜를 더해갈수록 베선트 장관의
05.15
미국과 중국이 12일 제네바에서 공동 발표한 경제 무역 협상 성명은 글로벌 관세전쟁에 중대한 전환점을 시사한다. 미국은 지난 4월 2일 이후 중국 상품에 부과한 추가관세 중 91%를 전격 철회하고 나머지 24%에 대해서는 90일 유예를 결정했다. 결과적으로 미국이 중국산 펜타닐(마약성 진통제) 원료를 문제 삼아 부과한 20% 추가관세 및 전 세계에 일괄 부과한 보편관세 10% 등 30% 관세만 남았다. 이로써 미국의 대중국 관세율은 145%에서 30%로 115%p 내려가게 됐다. 중국도 미국에 부과했던 보복 관세율을 미국과 같은 폭(115%p)으로 내려 기존 125%를 10%로 하향 조정했다. 협상을 앞두고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에 대한 관세율은 80% 수준이 적절하다”고 했고, 일부 미국 언론은 50% 수준 정도로 인하하는 방안을 백악관이 검토 중이라고 보도했는데 예상보다 훨씬 파격적인 결과다. 이번 합의는 트럼프행정부의 관세정책을 둘러싼 불확실성을 크게 완화시켰으며, 예측
04.18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관세전쟁을 본격화한 이후 미국 달러와 국채, 주식 등 3대 자산의 가치가 일제히 급락하는 ‘트리플(triple) 약세’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글로벌 투자자들이 한 나라의 주식과 채권을 동시에 팔고 그 자금을 외화로 바꿔 해외로 빠져나갈 경우 발생하는 현상이다. ‘최후의 안전자산’으로 통하는 달러 표시 자산들이 일제히 약세를 보이는 상황은 매우 이례적이다. 미국 채권시장의 투매 상황은 글로벌 투자자들이 달러 기반의 자산을 기피하기 시작했고, 이는 글로벌 금융 시스템의 근간인 미국 국채의 안정성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기도 하다. 글로벌 투자자들의 미국 선호가 견고하다면 미국 국채 금리상승은 미 국채에 대한 수요를 높여 달러화 강세로 이어져야 하는데 최근 상황은 정반대로 갔다. 미중 관세전쟁 본격화에 미 달러 국채 주식 등 이례적인 ‘트리플약세’ 현상 이 모든 것들은 미국이 기축통화 번영 법치 경제력 국방력 덕분에 ‘최후의 위험 회피처’로
04.04
세계경제는 미국 대통령 한 사람의 관세 결정에 따라 운명이 결정되는 거대한 불확실성에 빠져들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키우는 각종 통상·경제 정책의 불확실성이 세계경제를 어떻게 흔들어 놓을지 상상하기조차 어렵다. 그러나 한 가지 위안 삼을 일이 있다면 우리나라 상호관세율이 25%로 비록 예상보다 높게 나왔지만 기준점은 마련됐다는 점이다. 따라서 경제주체들은 그간의 불확실성에서 벗어나 25% 기준점에서 출발해 다양한 전략과 대응을 짤 수 있을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2일 오후(현지시간) 워싱턴DC 백악관 로즈가든에서 연 ‘미국을 다시 부유하게’(Make America Wealthy Again) 행사에서 전 세계 무역 상대국을 대상으로 최저 10%에서 최고 49%에 이르는 상호관세를 발표했다. 관세 불확실성 정점 지나 지금부터 대응 전략 짜야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을 ‘미국 해방의 날’로 칭하면서 현재 무역 상대국에 비해 낮게 책정돼 있는 미국의 관세율을 상대국이 미국에 부
03.28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26일(현지시간) 철강·알루미늄에 이어 미국에 수입되는 모든 외국산 자동차에 대해 오는 4월 2일부터 25%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공식 발표했다. 관세부과 대상은 모든 수입 자동차이지만 주로 한국 일본 유럽 멕시코 캐나다에서 생산된 자동차가 대상이 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갑작스러운 발표는 예멘 후티 반군 공격 계획을 논의하는 미 국방부 장관 등 정부 핵심 인사들의 민간 모바일 메신저 ‘시그널’ 채팅방에 공습과 관련한 미군의 기밀 사항들이 노출되는 '예멘 챗 스캔들 파장'을 덮기 위한 것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다음 달 2일 전세계 국가를 상대로 상호관세 부과도 예고했다. 상호관세와 관련해서는 모든 나라에 전방위적인 관세 조치를 시행하기보다 무역적자 규모가 큰 국가를 중심으로 ‘더 표적화된' 형태가 될 전망이다. 우리나라는 중국 EU 베트남 아일랜드 독일 대만 일본에 이어 미국이 무역적자를 본 순위 8위(2024년 기준)에 올라
03.19
올해 초부터 밀어닥친 AI 스타트업 딥시크(DeepSeek) 충격의 여진이 아직 가시지 않은 가운데 중국 선전의 스타트업 모니카(Monica)가 지난 5일 스스로 판단하고 일을 수행하는 자율형 AI 서비스 마누스(MANUS)를 내놓아 또 한번 시장을 흔들고 있다. ‘당신의 생각을 행동으로 바꿔주는 AI’라는 슬로건처럼 마누스는 기존 도우미 수준을 넘어선 에이전트(Agent) AI로 주목받고 있다. 공개된 영상에서 마누스는 단순한 대화형 챗봇과 달리 사용자의 개입 없이 여러 단계를 거쳐 자율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이력서 정리, 주가분석, 여행계획 수립, 부동산 검색 등등 이용자가 요청하는 작업을 스스로 수행한다. 마누스는 AI 에이전트 성능평가 기준인 ‘범용인공지능 성능평가(GAIA 벤치마크)’에서 오픈 AI의 딥 리서치를 앞선다는 주장도 하고 있다. 포브스지는 마누스의 등장에 대해 ‘제2의 딥시크 모먼트’라고 평가하며 “자율 AI 에이전트의 시대가 열렸고 중국
03.07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4일(현지시간) 워싱턴 DC 연방의사당에서 열린 상·하원 합동 연설에서 주한미군 문제와 관세, 알래스카 에너지 개발 사업, 반도체지원법을 아우르며 한국에 거액의 청구서를 내밀었다. ‘4배의 관세’를 꺼내들었으니 ‘거래의 기술’이라는 책을 쓴 거래의 달인답게 한국으로부터 최소 ‘2배’ 정도는 받아갈 것으로 보인다. 4% 관세율이라는 것이 사실과 부합하지 않는다는 것을 트럼프도 모를 리 없겠지만 관세전쟁을 관철하기 위한 ‘트럼프식 협상’의 일환일 것이다. 트럼프의 청구서는 추가 방위비 분담이거나, 트럼프가 선호하는 알래스카 액화천연가스(LNG) 구매 또는 파이프라인 사업 참여이거나, 미국 현지 제조시설에 대한 추가 투자이거나, 미국 국내총생산(GDP)의 약 6%에 달하는 막대한 연방 재정적자를 메우기 위한 장기국채를 매입하는 등의 다양한 패키지가 제시될 것이다. 한국정부는 자유무역협정(FTA) 체결국인 미국의 수입품에 부과하는 관세는 이보다 훨씬 낮
02.21
미국 대통령의 임기 첫 100일은 미국 정치에서 각별한 의미를 갖는다. 대통령으로서 정치적 자산이 가장 강력한 이 시기에 무엇을, 어떻게 하느냐가 전체 임기의 성패를 좌우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대통령의 첫 100일’의 연원은 대공황을 극복한 프랭클린 D. 루스벨트 대통령의 100일간 뉴딜정책에서 비롯됐다. 2025년 1월 20일, 도널드 트럼프(Donald J. Trump)가 제45대 대통령 임기를 마친 지 4년 만에 다시 제47대 대통령으로 취임하면서 그의 ‘첫 100일’이 전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첫번째 어젠다는 전세계를 향한 관세전쟁의 선전포고였다. 물론 트럼프의 관세전쟁 선포는 ‘프로젝트 2025’에 의해 예견돼 왔고, 그의 재취임과 동시에 미국의 싱크탱크인 신미국안보센터(CNAS)가 공개한 보고서 ‘첫 100일(The First 100 Days)’을 통해 상세하게 알려져 있다. 이 보고서는 프로젝트 2025와 함께 향후 4년간 미국이 직면할 도전과 기회를 분석하고
02.10
새해 시작부터 밀어닥친 딥시크의(DeepSeek) 기술 충격과 트럼프 관세전쟁 공포는 앞으로 한국경제가 겪을 험난한 길을 예고한다. 특히 인공지능(AI) 세계에서 미국의 기술봉쇄로 실리콘밸리의 추격자 신세이자, 변방으로 치부됐던 중국의 AI스타트업이 이룬 저비용 고효율의 대규모언어모델(LLM) 성과는 우리나라 AI 산업 관계자들에게 더 큰 충격을 안겼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충격을 딛고 일어나 딥시크가 ‘어떻게’ 가능했는지와 딥시크를 ‘왜’ 만들었는지 분석해보면서 ‘왜 우리는 이런 창의적 AI 스타트업을 키우지 못했는지’, '왜 우리는 글로벌 AI 경쟁에서 밀렸는지' 뼈아픈 질문의 시간을 가져야 할 때다. 기존 LLM 시스템의 고비용 문제를 돌파하기 위한 기술 혁신 딥시크의 ‘어떻게’는 이미 많은 분석을 통해 나와 있다. 저사양 칩(H800 GPU)으로 오픈AI의 챗GPT-4o와 비슷한 성능을 냈다는 것, 미국의 기술 봉쇄에도 자체적으로 개발했다는 것, 엔비디아의 G
01.16
윤석열 대통령은 현직 대통령으로는 헌정 사상 최초로 체포돼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의 조사를 받게 됐다. 공수처는 윤 대통령을 조사하고 체포 시한인 48시간 이내에 구속영장을 청구할 방침이다. 그는 12.3 계엄선포 후 15일 체포될 때까지 43일간 대한민국 헌정사에 씻지 못할 오명을 남겼다. 비상식적이고 반헌법적인 비상계엄을 선포한 데 그치지 않고, 수사를 거부하고 체포영장 집행에 저항하며 사법 체계의 근간을 흔들고, 지지자 선동으로 나라의 분열과 혼란을 부추겼다. 43일간 대한민국 헌정사에 씻지 못할 오명 남기고 사법 심판대 선 운석열 12.3 내란이 우리 경제에 끼친 유·무형의 피해는 이루 말할 수 없이 크다. 환율은 실시간 공개되는 나라 경제의 ‘성적표’나 마찬가지인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처럼 세계적인 경제위기 사태 때나 겪었을 법한 원화가치 하락이 내란 사태 이후 발생해 아직까지 1450원대 이하로 내려오지 않고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01.02
2025년 을사년 새해를 맞았지만 한국경제는 녹록지 않은 대내외 도전해 직면해 있다. 곧 출범할 트럼프정부의 미국 예외주의(American exceptionalism)에 따른 보호무역 강화, 우리나라의 최대 수출국인 중국경제의 침체, 지속적인 내수침체에 이어 12.3 내란사태에 따른 정치적 불확실성과 전남 무안의 제주항공 참사까지 겹쳐 복합위기를 맞고 있다. 국제 금융기구와 글로벌 투자은행들의 올해 한국경제에 대한 전망은 단 한곳의 예외도 없이 부정적이다. 한국은행과 아세안+3 거시경제조사기구, 골드만삭스 등 주요 기관들은 우리 경제 성장률을 1%대로 전망한 바 있다. 특히 골드만삭스는 성장률 추가하향조정을 시사하는 보고서를 통해 “한국 성장률 전망치를 시장 평균보다 낮은 1.8%로 유지하지만 하방리스크는 더 커졌다”고 분석했다. 미국의 경제 전문 통신사 블룸버그는 중국 경기둔화와 미국 무역정책의 불확실성으로 인한 외부 역풍에 정치적 불확실성이 더해져 한국경제를 압박하고
12.20
2024
영국 경제지 이코노미스트는 ‘카키스토크라시(Kakistocracy)’를 올해의 단어로 선정했다. “도널드 트럼프가 4년간의 부재 끝에 백악관으로 돌아온 것은 모든 곳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면서 “미국인의 절반을 비롯해 세계의 많은 이들의 두려움을 요약한 단어”라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카키스토크라시는 ‘가장 저열한 자들의 지배(The rule of the worst)’ 정도로 번역된다. 그리스어로 ‘나쁜, 못된’이란 의미인 카코스(Kakos)의 최상급 ‘카키스토(Kakisto)’에 지배·통치를 뜻하는 ‘크라시(Cracy)’를 결합한 용어다.(‘카키스토크라시’ 김명훈 지음. 비아북 2021년 참조) 세계 각국 트럼프발 ‘카키스토크라시’ 파장 우려 트럼프에게 이런 측면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보다 더 다각적으로 살펴봐야 할 필요가 있다. 트럼프 2기 체제를 이끌어갈 행정부 수장들에 대한 인선과 그가 직접 언론 등을 통해 밝힌 정책 구상을 살펴보면 ‘시장(Market)’과 ‘실
12.05
‘155분 천하’ 윤석열발 비상계엄에 시장이 치른 대가는 컸다. 4일 아침 45년 만의 비상계엄 사태에 여의도 금융시장은 긴박하게 돌아갔다. 증시와 환율·채권 가격이 출렁이는 등 혼란이 커지면서 시장이 ‘계엄령 패닉’에 휩싸였다. 정부는 부랴부랴 50조원 규모의 증시·채권안정펀드 가동을 발표했다. 한국은행은 임시 금융통화위원회를 열어 필요시마다 환매조건부채권(RP)을 매입해 시장자금을 융통시키는 시장 안정화 조치를 의결했다. RP란 일정 기간 이후 약정 이자를 보태서 되사는 조건으로 발행하는 채권이다. 한은은 RP를 금융기관으로부터 정례적으로 사들이는 방식으로 시장에 돈을 풀어 유동성을 조절해왔다. 하지만 비상계엄령 탓에 시장에서 돈이 메마를 우려가 커지자 한은이 비정례적으로 RP를 사들이는일종의 ‘긴급처방’을 내린 셈이다. 금융시장 ‘계엄령 패닉’에 50조원 안정펀드, RP매입 등 긴급처방 한은은 또 채권시장과 관련해 국고채 단순 매입과 통안증권 환매를 통해 시장에 돈